ⓒphoto 퓨리나 프로플랜
ⓒphoto 퓨리나 프로플랜

우리 집은 추석 직전에 제사가 하나 있다. 19년을 가족과 함께 살고 4년 전에 떠난 반려견 찡이의 기일(忌日)이다. 이날은 찡이가 좋아하던 음식으로 상을 차리고 결혼한 형제도 와서 부모님과 함께 찡이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눈다. 남은 자들이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제사의 의미에 딱 부합하는 자리. 남의 눈에는 유난해 보이기 십상이지만 형제에게는 막내 동생이고, 부모님에게는 막내아들이라서 우리 집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내가 10년 전쯤 동물 관련 책만 내는 출판사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유별나다며 고개를 저었다. 조언을 듣기 위해 만난 한 출판인은 “짐승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 안 읽으니 바로 망한다”고 했다. 아버지·어머니의 친구들에게 나는 망하기 딱 좋은 일을 하는 유별난 자식이었다.

이런 시선이 10년 사이 많이 바뀌었다. 곧 망할 것 같은 출판사는 끈질기게 생존을 이어가고 있고, 심지어 최근 출판계에는 고양이 책 붐이 일고 있다. 우리 집처럼 떠난 반려동물의 기일을 챙기는 사람도 많아지고, 휴가철에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흔하다. 동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미국의 수의학자 제임스 서펠은 그의 책 ‘동물, 인간의 동반자’ 개정판 서문에서 10년 전인 1980년대 초판을 냈을 때에 비하면 미국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가 굉장히 크다고 적었다. 1980~1990년대 미국이 겪었던 반려동물에 대한 급격한 인식변화를 한국도 최근 10년 동안에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는 다른 집이 그랬듯 마당 한구석에 항상 개가 있었다. 식구들은 동물을 좋아했는데, 나는 특히 개를 아꼈다. 쫑, 나나란 이름을 갖고 있던 개들. 혼자 집을 봐야 하는 날이면 무서움에 마당에 나가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책을 읽었다. 개가 집을 나가서 사라진 날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항상 씩씩하던 아이가 눈이 퉁퉁 부어서 학교에 나타나자 선생님이 나를 붙들고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스럽게 물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개는 집안이 아닌 마당에서 따로 살았고, 묶여 있는 게 불쌍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비로소 함께 사는 개를 삶을 나누는 동반자로 인식하게 된 건 집안에서 함께 살면서였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먹고, 자고, 뒹구니 끼니를 같이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식구(食口)였다. 찡이는 다섯 남매가 학창시절을 보내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가족의 모든 역사와 함께했다. 다섯 남매의 비밀 연애사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동생이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찡이 산책은 언제나 동생 몫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던 동생에게 유일하게 평화로운 시간은 찡이와의 산책 시간이었다. 결혼한 언니는 “엄마 아빠 서운해 하니까 말하지 마. 솔직히 결혼하고 친정 식구 중에서 찡이가 제일 보고 싶은 거 있지”라고 했다.

2012년 9월 21일 ‘찡이’의 제사상. ⓒphoto 김보경
2012년 9월 21일 ‘찡이’의 제사상. ⓒphoto 김보경

부모님에게도 속 깊은 늦둥이 아들 몫을 톡톡히 했다. 다섯 자식이 몰랐던 엄마의 눈물을 혀로 핥아 닦아준 것도 찡이였고, 대개의 집에서 그렇듯 가족 사이 외로운 섬인 아빠의 든든한 후원자도 찡이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여러 면에서 힘을 잃어가는 아빠에게 찡이는 변함없는 애정과 신뢰를 보냈다. 다 큰 자식들이 아빠를 데면데면 대할 때 찡이는 아빠에게 달려가서 몸을 흔들고 비비면서 온기를 나눴다. 찡이가 9살 때 집을 나가서 이틀간 들어오지 않았다. 온 식구가 학교와 생업을 접고 찡이를 찾아나섰다. 사방에 전단지를 붙이고 신문에 전단지를 끼워 넣으며 찾았는데 쉽게 찾아지지 않자 가족들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특히 아빠는 식사도 거르고 찡이를 찾아다녔다.

“이러다가 찡이 찾기도 전에 저 양반이 먼저 쓰러지겠다.”

한여름에 식사도 거르고 동네를 헤매는 아빠를 보면서 엄마가 걱정스럽게 한 말이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가족사를 써가던 찡이가 열 살 즈음에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열 살에 ‘퇴행성’이라니. 찡이보다 늦게 태어난 조카가 세상의 밝은 에너지를 쑥쑥 흡수하며 커가고 있는데. 찡이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개와 인간의 삶의 속도가 다르다는 걸 이때 뼈저리게 깨우쳤다.

찡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지만 찡이의 존재 말고도 우리는 찡이에게 많은 선물을 받았다. 특히 나는 ‘받아들임’이라는 선물을 가장 값지게 생각한다. 찡이는 19년의 짧은 시간 안에 생로병사를 보여주면서 삶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알려줬다. 나이 들어 병이 생기고 거동이 불편해져도 찡이는 자기 연민이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숙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였다. 평생 밥을 먹을 때면 최고의 만찬인 것처럼, 산책을 나갈 때면 마지막 산책인 것처럼, 귀가하는 가족을 반길 때면 몇 년 만에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더니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지혜로웠다.

2004년 생전의 ‘찡이’. ⓒphoto 김보경
2004년 생전의 ‘찡이’. ⓒphoto 김보경

반려동물과 산다는 건 그들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걸 배우는 과정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기쁨·슬픔·연민·두려움 등의 감정을 지니고 있고, 놀이를 즐기고, 싫은 것과 좋은 것이 뚜렷하고, 신뢰와 우정을 알고, 어려운 일에는 협동도 하고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안다. 찡이는 공정하지 못할 때면 화를 내기도 했다. 개 각자는 고유한 개성을 갖고 있는 개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 만나는 길고양이도, 동물원의 동물도, 농장동물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의식의 확장을 겪으면서 출판사를 시작할 때는 계획에 없었던 동물권(權)에 관련된 책을 만들게 되었다. 찡이 덕분에 나도 성장하고, 출판사와 독자도 함께 성장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중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농장동물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내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알량한 채식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동물이고 같은 생명인데 개는 사랑하고, 소·닭·돼지는 먹는 윤리적 딜레마를 끊고 싶었다. 식습관이라는 게 무서워서 덩어리 고기만을 간신히 피하는 비겁한 채식 생활이지만 그래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노력한다. 이렇듯 찡이를 통해서 알게 된 세상 덕분에 나는 조금 불편해졌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반려동물은 덕분에 생긴 불편함도 기쁘게 감수하게 만드는 대단한 힘이 있다.

최근 부모님이 노화로 인한 질병으로 병원 출입이 잦다. 평생 건강하게 우리 곁을 지켜주실 줄 알며 살다가 당황했지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게 되었다. 찡이가 알려준 대로 당황하지 말고 노화의 수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부모님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삶을 사는 아이들 덕분에 늘 죽음일랑 모르는 듯 살았는데 자연스럽게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그러며 생각한다. 천국에 개와 고양이가 없다면 죽어서도 천국에 가지 않으리. 개와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가련다. 그곳이 내게는 천국이니까.

김보경 반려동물출판사 ‘책공장더불어’ 대표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