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부정에 대한 고발은 권력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할 수 있다. 진실로 진실하고자 하면 진실은 행동되어야 한다. 개혁과 혁신은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수의 침묵에 의해서도 실천되는 것이 아니다. 개혁과 혁신은 진실과 양심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비로소 날갯짓을 한다. 이제 황혼녘이 된 것 같다.”

주간조선 2392호 커버스토리에 소개됐던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이 2009년 당시 해군 비리 내부고발을 하며 해군 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입니다. 그는 해군 참모총장까지 연루됐던 계룡대의 군 비리 카르텔과 3년을 투쟁해 31명의 관계자를 입건시켰습니다. 하지만 희생도 컸습니다. 그는 군에서 부적응자로 낙인찍혔고 가족에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군의 조직적인 음해를 받다가 결국은 스스로 군복을 벗었습니다.

그는 비판에 대해 자신을 ‘미네르바의 부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입니다. 미네르바 부엉이는 밤에도 볼 수 있는 ‘혜안’을 상징합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돼서야 그 날개를 편다”는 구절은 원래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먼저 사용했습니다. 이 구절은 ‘진리는 일정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김 소장은 군 비리 관련자들의 혐의가 입증되면서 부정부패가 바로잡히고 그걸로 투쟁이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로소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갯짓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비리 연루자들 대부분은 복직을 했고, 오히려 그 자신이 조직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그는 국민권익위에서 국방 관련 조사관으로 방산비리와 계속 맞섰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행함으로써 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김영수 소장이 군 비리 카르텔과 투쟁하며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 사관생도훈을 들었을 때 저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우리가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있었던가요. 초인적인 지도자가 나타나 썩은 살을 도려내도 그 자리는 다시 곪고 부패했습니다. 국제투명성 기구가 본 2015 한국의 국가청렴도는 100점 만점 중 56점입니다. OECD 국가 중에선 27위로 최하위권입니다. 점수만 보면 한국은 청렴한 기개보다 저열한 처세가 더 어울리는 나라입니다. 김영수 소장의 딜레마도 저열한 처세가 어울리는 국가에서 청렴한 기개를 내세워 비롯됐으니까요.

청렴한 기개가 인정받는 한국,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힘껏 날갯짓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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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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