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일본식 다리가 보이는 ‘물의 정원’(수련 연못).
멀리 일본식 다리가 보이는 ‘물의 정원’(수련 연못).

예술가의 삶은 고단하다. 무엇인가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하는 화가의 삶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수련의 화가’라 불리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의 삶도 그러했다. 순탄치 못한 결혼, 극심한 가난, 아내의 죽음 등은 젊은 시절의 모네를 몹시 힘들게 했다. 하지만 모네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을 향해 더욱 강한 열정을 불태웠다. 실제로 모네가 힘들었던 시기에 그린 그림들에서는 여유로운 중산층의 생활상과 함께 밝고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지베르니(Giverney)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5㎞쯤 떨어져 있다. ‘일 드 프랑스’와 노르망디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지베르니는 파리 근교 여느 마을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파리에서 노르망디의 항구도시 ‘르 하브르’를 잇는 도로를 따라 1시간쯤 달리면 지베르니 입구를 알리는 교통표지판이 나타난다. 이 표지판을 따라 내려가면 넓은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나타난다. 시골길 곳곳에는 모네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포플러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치 오래된 프랑스 영화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다. 물론 자동차를 렌트해서 지베르니를 찾아갈 때 맛볼 수 있는 설렘이다.

지베르니는 프랑스 북부 지방 특유의 우중충한 날이 많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들이 앞다퉈 피어나는 봄이 되면 일순간 활기를 되찾는다. 평소에는 인적이 뜸하던 마을 곳곳의 레스토랑과 카페들도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다. 센강을 따라 리버크루즈 여행을 즐기는 단체 관광객과 일반 여행자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꽃피는 봄날에 이들이 지베르니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지베르니를 세계적 관광 명소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상파 화가 ‘모네의 집’이 이 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모네가 만든 ‘물의 정원’(수련 연못)이 등장한 이후로 지베르니를 찾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 영화로 우디 앨런은 제84회 아카데미영화상(각본상)과 제69회 골든글로브상(각본상)을 수상했다.

침실, 아틀리에, 전시장 등이 있는 주거공간.
침실, 아틀리에, 전시장 등이 있는 주거공간.

모네가 43년 머물던 ‘명화의 산실’

모네는 기차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지베르니에서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머물며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모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수련 연작’(아침, 해질녘, 아침의 버드나무들, 초록 그림자, 구름, 나무 그림자, 버드나무 두 그루,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맑은 아침) 8점도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현재 이 작품들은 파리 시내의 오랑주리미술관에서 상설 전시중이다. 생전의 모네가 기증 조건으로 밝힌 “일반에 공개할 것과 자연광이 들어오는 흰색의 벽에다 작품을 걸 것”을 충실히 따른 채….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하자 그의 화풍을 따르던 미국 화가들도 앞다퉈 지베르니로 모여들었다. 1887년부터 약 30년 동안 100여명의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이 모네의 집(MAISON & JARDINS de CLAUDE MONET) 근처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현재 모네의 집 근처에는 ‘지베르니 인상주의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본래 ‘아메리칸미술관’으로 개관을 했으나 세계 각국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면서 2009년에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미술관 주변에는 모네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양귀비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 입구.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 입구.

자연스러워서 더욱 아름다운 ‘꽃의 정원’

모네가 세상을 떠난 지도 90년. 많은 사람은 모네가 살던 지베르니 곳곳에서 그의 흔적과 숨결을 느끼고 있다. 모네는 떠나고 없지만 편안한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한 장과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그의 사진이 방문객을 맞는다. 방문객들은 사진 속에서 ‘인상주의 거장’ 모네가 아닌 평범한 ‘시골 농부’ 모네의 모습을 발견한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은 크게 아틀리에, 주거공간, 전시공간, 꽃의 정원, 물의 정원, 기념품 판매장 등으로 나뉘어 있다. 매표소와 연결된 기념품 판매장은 본래 모네가 아틀리에로 사용했던 곳이다. 길이 24m, 너비 12m의 이 넓은 공간에서 모네는 오랑주리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련 연작’을 완성했다.

기념품 판매장을 지나면 곧바로 ‘꽃의 정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모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꽃의 정원’은 지금 세계적 관광 명소가 되었다. 모네의 손때가 묻은 ‘꽃의 정원’은 다소 투박한 느낌을 준다. 마치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코티지 가든(Cottage Garden)’을 연상케 한다.

이 정원에서는 계절에 따라 수선화, 튤립, 라일락, 아이리스, 원추리, 다알리아, 양귀비, 아네모네, 샐비어, 히스꽃 등이 끊이지 않고 꽃망울을 터트린다. 꽃의 색깔과 크기, 한 종류의 꽃들이 차지하는 면적, 키가 큰 꽃과 작은 꽃 등이 어쩌면 이렇게도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모네는 화가이면서 훌륭한 정원사였다. 틈이 나는 대로 정원을 거닐며 꽃과 나무들을 가꿨다. 그러다 빛이 주는 영감에 따라 그 자리에서 그림을 완성했다. 모네에게 있어서 ‘꽃의 정원’은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창조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는 창작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꽃의 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는 벽돌로 지은 2층짜리 건물이 들어서 있다. 옅은 분홍색 외벽과 진한 녹색의 창틀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모네의 주거공간으로 아틀리에, 침실, 전시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2층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모습은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마치 잘 그려진 모네의 그림 한 폭을 보는 느낌이다. 특히 5월과 6월에는 장미를 비롯한 많은 꽃이 피어나 정원 전체가 동화 속 꽃동산을 연출한다. 정원 곳곳에는 적당한 크기의 휴식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모네의 집에서 방문객이 다소 의아해 하는 공간은 온통 일본 그림 일색인 2층의 자그마한 전시 공간이다. 이 그림들의 정체는 대략 14세기부터 19세기 무렵까지 일본에서 유행하던 우키요에(목판화) 작품들이다. 모네는 이 그림들을 수집해서 직접 전시할 공간까지 지정할 정도로 우키요에에 깊은 애착을 가졌다. 1876년에는 부인 카미유에게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혀 유화로 그려내기도 했다. 우키요에는 모네 외에도 고흐, 르누아르, 로트렉, 마네, 드가 등 많은 화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모네가 ‘수련 연작’을 완성한 기념품 판매장.
모네가 ‘수련 연작’을 완성한 기념품 판매장.

수련 연작이 탄생한 ‘물의 정원’

‘꽃의 정원’과 ‘물의 정원’(수련 연못)은 지하보도로 연결되어 있다. ‘물의 정원’에는 모네의 그림에서 낯이 익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마치 밀림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숲 한가운데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 주위를 따라 구불구불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연못으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는 일본식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다. 모네는 이 연못을 가꾸는 일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연못의 물을 채우기 위해 인근의 앱튼강 물줄기를 끌어들이고 습지에 어울리는 많은 나무와 꽃을 심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연못가에 앉아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수련과 주위의 사물을 화폭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이른바 ‘수련 연작’이라 불리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모네가 생전에 그리도 끔찍하게 여겼던 아름다운 공간들. 하지만 모네가 세상을 떠난 후 꽤 오랫동안 모네의 집과 정원은 황폐화될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상속자인 둘째 아들 미셸이 이곳을 떠난 이유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거의 돌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미셸이 1966년 모든 공간을 기증했고, 마침내 1980년 9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꽃이 피지 않는 11월부터 3월까지는 개방하지 않는다.

기념품 판매장 한편에 있는 모네의 사진.
기념품 판매장 한편에 있는 모네의 사진.

여행 정보

▲ 가는 길 : 대한항공에서 매일, 아시아나항공에서 주5회(월·수·금·토·일) 인천~파리 구간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2시간10분(대한항공)~12시간20분(아시아나항공)이다. 파리에서는 생 라자르역에서 출발하는 루앙(Rouen) 또는 르 하브르(Le Havre)행 기차를 타고 가다 베르농(Vernon)에서 내린다. 약 50분 소요. 베르농역에서 지베르니까지는 셔틀버스로 약 15분이 소요된다.

▲ 모네와 인상주의 : 1874년의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서 모네를 비롯한 몇몇 무명화가의 전람회가 열렸다. 이 전람회에 참석한 평론가와 기자, 미술 애호가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동안 그들이 익숙하게 접해왔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그림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이자 미술평론가였던 루이 르루와는 ‘제1회 인상파 전람회’라는 기사를 통해 “벽지의 그림도 이보다는 낫겠다”라고 혹평했다. 그리고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주의 화가’라고 비난했다.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라는 명칭은 바로 이 기사에서 비롯되었다. 제1회 인상파 전람회에서 미술평론가들로부터 가장 혹평을 받았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인상, 해돋이’는 모네가 1872년에 그린 작품이다. 인상주의 화풍의 효시로 간주되는 ‘인상, 해돋이’는 일출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일출이 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잘 표현한 수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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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봉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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