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아 계세요?”

화가 이중섭의 아내인 이남덕씨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 간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따르는 질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일본에 살아요?”

‘국민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황소의 작가’ 이중섭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의 일본인 아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중섭과 함께 그의 아내도 과거에 살았던 인물로,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남덕, 일본 이름으로는 야마모토 마사코씨는 1921년생입니다. 기자로서도 이남덕씨를 만나는 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0여년 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자 사망 60주기입니다.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이남덕씨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지난주 주간조선은 커버스토리를 통해 불운의 시대를 살았던 부부의 사랑과 가슴 아픈 이별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인터뷰는 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자택에서 이뤄졌습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둡고 초라한 실내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중섭의 작품은 현재 수십억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서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소’ 작품이 2010년 서울옥션에서 35억원에 낙찰됐습니다. 이중섭은 우리나라에서 평균 그림 값이 가장 비싼 작가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족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이 집에서 본 이중섭의 유일한 그림은 현관에 걸려 있는 엽서 크기의 작품이었습니다. 이중섭이 1953년 그린 ‘부부’라는 작품으로 수탉과 암탉이 재회의 입맞춤을 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림은 진품이 아니라 프린트였습니다. 인쇄 상태도 조악했습니다. 그림에 담은 재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외롭게 죽음을 맞은 이중섭, 남편의 유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프린트 그림으로 사랑을 추억해야 하는 아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빛바랜 액자에 담긴 안타까움이 내내 마음에 얹혔습니다.

이남덕씨는 만나기 전 걱정과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정정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행여 남편에게 누가 될까 대답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했습니다. 무엇보다 위대한 예술가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부부의 사랑이 포장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바라는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랑의 기억만으로 평생을 혼자 살 수 있느냐고요?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씨는 말이 아닌 95년 삶으로 대답해줬습니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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