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술자리에서 종종 언급하는 말 중에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이란 말이 있습니다. ‘군자가 원수를 갚음에 있어서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입니다. ‘원한이 있는데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다’는 ‘유구불보비군자(有仇不報非君子)’란 말도 있습니다. 둘 다 중국 무협지와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말입니다. 성인(聖人)의 전 단계로 유교사회의 이상형이란 군자(君子)를 복수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단어와 결부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중국인의 특질을 설명하는데 ‘복수’ ‘보복’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싶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의 명재상 오자서(伍子胥)는 부친과 형의 복수에 성공한 뒤 이미 죽은 원수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시신이 훼손될 때까지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굴묘편시(掘墓鞭屍)’란 고사성어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인 오왕 부차(夫差)와 월왕 구천(句踐)은 ‘복수’ 하나만을 목표로 땔감 위에서 잠을 청하고, 쓸개를 핥아먹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뒤 각각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유언으로 남겼다는 ‘칼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의 ‘도광양회(韜光養晦)’도 복수와 보복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한·중 관계가 위태위태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상당수 한류(韓流) 스타들이 영문도 모른 채 행사가 취소되고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습니다. 한류 스타들의 프로그램 출연 제한령을 뜻하는 ‘한한령(限韓令)’이 인터넷에서만 떠돌았는데, 홍콩의 유력 시사주간지인 아주주간(亞洲週刊)이 커버스토리로 다룰 정도인 것을 보니 그 여파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중국인들은 국제관계를 대국(大國)과 소국(小國)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인구 1억2000만명의 GDP 세계 3위의 일본마저 비하하는 뜻의 ‘소일본(小日本)’이라고 부를 정도이니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큰 대(大)’ 자가 들어가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국호에 콧방귀를 뀌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대국 옆에 살아야 하는 소국 사람 입장에서는 피곤하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대국 옆에서 소국이 살아가려면 적정한 인구에 더불어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외교적으로 한국보다 북한을 후대(厚待)하는 까닭은 사실상 ‘핵(核) 보유국’이란 지위 탓도 있습니다. 사드는 이에 대항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위적 방어수단에 불과합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성정이 급해진 요즘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군자보구 십년태만(君子報仇 十年太晩)’이란 말도 나옵니다. ‘군자가 원수를 갚음에 있어서 십 년은 너무 늦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보복은 하되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입니다. 중국인들이 빼들 향후 보복카드를 면밀히 예의주시하고 현명하게 대응해야 할 시점입니다.

키워드

#취재 뒷담화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