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27가에 있는 섹스박물관 전경.
맨해튼 27가에 있는 섹스박물관 전경.

NY.COM에 따르면 뉴욕시의 5개 구(맨해튼, 퀸스, 브롱스, 브루클린, 스탠튼아일랜드)에는 총 83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 중 맨해튼에만 32개의 박물관이 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같은 대형 박물관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컬렉션을 전시하는 조그만 전시관, 유대인박물관, 중국박물관과 같은 민족과 관련된 박물관도 있다. 뉴욕을 찾는 수천만 명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장소가 타임스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자유의여신상, 센트럴파크 등이다. 이런 곳들과 함께 순례지처럼 방문하는 곳이 이른바 맨해튼 5대 박물관이다. 규모 면에서도 그렇지만 연간 방문하는 관람객의 숫자에서도 이들 5대 박물관은 다른 곳을 압도한다.

센트럴파크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있고, 서쪽에는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맨해튼의 중심가 핍스 애버뉴(5th Ave)와 80가와 84가 사이, 센트럴파크 안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만개 이상의 작품을 소장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870년, 전 세계의 예술 작품 소장과 미국인들에게 그런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교육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핍스 애버뉴를 따라 82가에서 110가 사이의 거리를 ‘뮤지엄 마일’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대략 1마일(1.6㎞)에 이르는 이 지역에 무려 9개의 박물관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5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구겐하임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매년 6월 뮤지엄 페스티벌이 열리면 이곳에 있는 9개 박물관은 모두 무료로 개방된다. 집계에 따르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연간 600만명, 구겐하임박물관은 연간 100만명 이상이 방문한다고 한다.

센트럴파크 서쪽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뉴욕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도 한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이거니와, 학생들이 야외 현장학습을 위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 측의 스쿨버스 우대 주차는 주차 공간이 매우 열악한 맨해튼에서 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구의 대형 공룡 화석은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하는 어린이들을 쥐라기공원으로 이끌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연간 50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곳으로 입장료 수입만 연간 최소 7500만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이다.

현대미술관(MOMA·Museum of Modern Art·약 300만명)은 아마도 매니아층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박물관일 것이다. 피카소, 달리, 마네, 모네, 마티스, 폴락, 워홀 등 문외한들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거장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는 곳이라 관광객들의 필수코스 중 하나이다. 맨해튼 미드타운, 5가와 6가 사이 53가와 54가의 한 블록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의 박물관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퇴역한 항공모함을 박물관으로 만든 인트레피드 해양 항공우주 박물관(Intrepid Sea, Air and Space Museum·약 100만명)을 포함하여 이렇게 5개의 박물관이 뉴욕의 5대 박물관이다.

‘섹스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들.
‘섹스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들.

18세 이상 성인, 입장료 20달러

그런데 맨해튼에는 이렇게 대규모의 유명한 박물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18세기 건축물들 자체가 맨해튼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만 관심 있게 바라보면 그런 건물들 사이사이에 조그만 박물관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성박물관(Museum of Sex·MoSex)도 그중 하나다. 인류의 역사가 곧 성의 역사이니 성과 관련한 박물관이 하나쯤 있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현대미술관 관람을 마쳤다면 그 길로 내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이정표 삼아 남쪽으로 27가까지 걸어 내려오면 바로 그 모서리에서 ‘뮤지엄 오브 섹스(Museum of Sex)’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정식 오픈 이전부터 수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보인 아주 ‘핫’한 장소였다. 그 이유는 ‘성’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 마침내 뉴욕에 들어선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설립자인 대니얼 글럭(Daniel Gluck)이 박물관을 비영리기관으로 뉴욕시에 신청하였고, 그것이 시의 심사위원회에서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섹스라는 말과 뮤지엄이라는 말이 서로 상관관계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흉내만 낸 엉터리 박물관이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글럭은 와튼스쿨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경영학도였다. 그와 동시에 예술대학원에서 아트를 전공한 예술학도이기도 했다. 1998년 친구와 암스테르담의 개방적 성 문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성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마침내 스스로 섹스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되었다. 그의 경영학 지식과 예술적 감각이 잘 융합되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이미 이때부터 박물관을 영리사업으로 생각하고 사업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과 관련한 긍정적인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비영리기관으로 운영되는 것이 좋겠다는 그를 도운 몇몇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뉴욕시에 비영리기관 지정 신청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심사한 시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당한 것이다. 시로서는 섹스박물관에 예산을 지원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박물관을 통해 오히려 영리사업을 하도록 허가를 받게 된 글럭은 2002년 10월 5일 투자자들과 함께 뉴욕에 최초로 섹스박물관을 열었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만 18세 이상의 성인만 입장할 수 있다. 1층은 기념품 가게로 각종 성과 관련된 기구, 의류, 서적 등을 판매한다. 1층 안쪽에 들어가면 박물관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세금 포함 20달러15센트를 내야 하니 그렇게 싼 값은 아니다. 2층부터는 전시실인데 맨해튼답게 전시 공간이 그렇게 넓지는 않다. 대부분의 박물관이 그러하듯이 이곳도 조명은 매우 침침하다. 전시실에는 각종 그림과 사진, 그리고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에서 한 시간여 머무르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딱히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고 부부가 함께 온 사람도 있고 친구끼리, 애인과 함께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글럭은 이제 15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기업의 사장으로 성장하였다. 문화로서의 성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것을 맨해튼 섹스박물관은 증명하고 있다.

키워드

#뉴욕 통신
황효현 경기텍스타일 뉴욕센터 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