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도지(石塔寺) 3층 석탑 - 아스카 후반 하쿠오(白鳳)시대, 백제 도래인 석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석탑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암이다. 당시 단단한 화강암을 다룰 줄 아는 기술은 한반도 도래인뿐이었다. 일본은 무른 돌, 석회암을 다루는 기술밖에 없었다.
이시도지(石塔寺) 3층 석탑 - 아스카 후반 하쿠오(白鳳)시대, 백제 도래인 석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석탑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암이다. 당시 단단한 화강암을 다룰 줄 아는 기술은 한반도 도래인뿐이었다. 일본은 무른 돌, 석회암을 다루는 기술밖에 없었다.

일본 시가현 가모우군에 있는 이시도지(石塔寺)의 3층 석탑을 보는 순간, 한국 부여군 장하리에서 본 3층 석탑과 겹쳐졌다. 662년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 귀족 기시쓰 슈시(鬼室集斯)가 자리를 잡은 시가현의 곤재산(金勝山) 풍경은 경상남도 김해의 금산 자락과 비슷했다.

일본 속 백제를 찾아나선 후지모토 다쿠미(67)의 눈에 비친 풍경들이다. 그는 46년간 한국의 풍경을 찍어온 데 이어 지난해부터 일본 속에 남아 있는 한반도 도래인의 흔적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그의 발길은 재일동포 작가인 김달수(1919~1997)씨가 ‘일본 속의 조선문화’라는 책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교토시 동쪽에 있는 하쿠사이지(百濟寺), 오사카 시텐노지(四天王寺), 로큐단지(鹿谷寺)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촬영을 나설 때는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운전 때문에 풍경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기사나 주민들로부터 얻어듣는 정보들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사찰들이 대부분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에 있다 보니 수킬로미터를 걷는 것은 기본이다.

그는 일본 사찰과 한국 사찰을 오랫동안 카메라에 담으면서 결정적인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의 절은 ‘복원’을 기본으로 하는 반면, 한국의 절은 ‘재건축’이 많다는 것이다. 복원보다 재건축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겠지만 화려한 단청으로 역사와 세월의 무게를 모두 덮어버리는 한국 사찰의 재건축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내년부터는 간사이지방과 멀리 떨어지는 곳까지 범위를 넓힐 계획”이라면서 “10년 내 일본 전역에 있는 한국 도래문화를 찾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일본 도쿄 갤러리 ‘톰’에서 열린 ‘일본 속 백제촌’이라는 전시회에 걸렸던 그의 사진 일부를 지면에 소개한다.

로큐단지(鹿谷寺) 13층 석탑 - 하쿠오시대부터 나라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의 탑 형태. 한 개의 돌을 깎아 만들었다.
로큐단지(鹿谷寺) 13층 석탑 - 하쿠오시대부터 나라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의 탑 형태. 한 개의 돌을 깎아 만들었다.

오사카 시텐노지의 정원 - 일본 오사카 덴노지구에 있는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 일본 불교 창시자인 쇼토쿠 태자가 불국 염원을 담아 백제 기술자들을 초청, 백제 가람과 비슷한 형식으로 지었다. 자연 샘물을 이용해 ‘극락의 연못’과 ‘유리광의 연못’을 만든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오사카 시텐노지의 정원 - 일본 오사카 덴노지구에 있는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 일본 불교 창시자인 쇼토쿠 태자가 불국 염원을 담아 백제 기술자들을 초청, 백제 가람과 비슷한 형식으로 지었다. 자연 샘물을 이용해 ‘극락의 연못’과 ‘유리광의 연못’을 만든 정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토분 - 로밴과 함께 나라시대의 유명한 승려인 교키(行基·668~749)가 세운 오노데라(大野寺)에 있는 탑이다. 교키는 일본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을 만들다 죽었다. 토탑은 한 변이 53m, 높이가 8.6m에 이르는 거대한 13층 석탑이다. 각층에 기와가 덮여 있다. 현재 12층까지 복원이 됐고 흙을 덮어 놓았다.
토분 - 로밴과 함께 나라시대의 유명한 승려인 교키(行基·668~749)가 세운 오노데라(大野寺)에 있는 탑이다. 교키는 일본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을 만들다 죽었다. 토탑은 한 변이 53m, 높이가 8.6m에 이르는 거대한 13층 석탑이다. 각층에 기와가 덮여 있다. 현재 12층까지 복원이 됐고 흙을 덮어 놓았다.

곤재산(金勝山) 풍경 - 시가현 릿토시(栗東市) 비와호수 근처. 백제 귀족 기시쓰 슈시(鬼室集斯)가 700명의 일족을 데리고 자리를 잡은 가모우(蒲生)군과 인접한 곳이다. 마치 한국인 듯 낯익은 풍광이다.
곤재산(金勝山) 풍경 - 시가현 릿토시(栗東市) 비와호수 근처. 백제 귀족 기시쓰 슈시(鬼室集斯)가 700명의 일족을 데리고 자리를 잡은 가모우(蒲生)군과 인접한 곳이다. 마치 한국인 듯 낯익은 풍광이다.

곤쇼우지 - 나라시대 백제계의 마지막 사람이라고 전해지는 로밴(良弁·687~773) 스님이 곤재산 정상 근처에 지은 절이다. 로밴은 교키 스님의 뒤를 이어 도다이지의 대불을 완성했다. 도다이지의 건설에 필요한 목재를 베면서 산신령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곤쇼우지 - 나라시대 백제계의 마지막 사람이라고 전해지는 로밴(良弁·687~773) 스님이 곤재산 정상 근처에 지은 절이다. 로밴은 교키 스님의 뒤를 이어 도다이지의 대불을 완성했다. 도다이지의 건설에 필요한 목재를 베면서 산신령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쿠사이지(백제사) 참배계단과 인왕문 - 하쿠사이지는 쇼토쿠 태자가 백제인을 위해 백제의 용운사를 본떠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역사를 빛낸 백제 불교 문화의 흔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하쿠사이지의 위치는 백제와 같은 위도상에 위치했다. 방위에 능한 백제 스님 관록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쿠사이지(백제사) 참배계단과 인왕문 - 하쿠사이지는 쇼토쿠 태자가 백제인을 위해 백제의 용운사를 본떠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역사를 빛낸 백제 불교 문화의 흔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하쿠사이지의 위치는 백제와 같은 위도상에 위치했다. 방위에 능한 백제 스님 관록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쿠사이지(백제사) 참배계단과 인왕문 - 하쿠사이지는 쇼토쿠 태자가 백제인을 위해 백제의 용운사를 본떠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역사를 빛낸 백제 불교 문화의 흔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하쿠사이지의 위치는 백제와 같은 위도상에 위치했다. 방위에 능한 백제 스님 관록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쿠사이지(백제사) 참배계단과 인왕문 - 하쿠사이지는 쇼토쿠 태자가 백제인을 위해 백제의 용운사를 본떠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역사를 빛낸 백제 불교 문화의 흔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하쿠사이지의 위치는 백제와 같은 위도상에 위치했다. 방위에 능한 백제 스님 관록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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