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8일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했습니다. 패망 직전 독일 내 철학자, 종교인, 정치인 등이 모여 목숨을 건 토론을 시작합니다. “우리 민족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느냐”란 담론에 답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물이 ‘질서자유주의’입니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지지하되,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옹호하는 철학입니다.

이 토대 위에서 독일의 연정정치가 태동했습니다. 권력을 나눔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는 독일식 정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기독교민주당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야당인 사회민주당과 이른바 ‘좌파·우파’가 공존하는 내각을 구성해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 메르켈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11년간 영국을 이끌었던 마거릿 대처보다 장수하는 여성 총리가 됐습니다.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은 메르켈의 포용정치에서 나왔습니다.

2005년 7월 국내에서도 대연정 시도가 있었습니다. 취임 초부터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정부의 일부 권한과 국무총리직을 내어주겠다면서 ‘대연정’을 제안합니다. 그 대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해달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노선이 달라 함께할 수 없다”면서 노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승부사 기질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이 ‘꼼수’를 품고 있다고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경기침체와 안보문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거대 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야당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고, 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최모씨 관련 의혹을 연일 제기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된 의혹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을 향해 ‘불통의 리더십’이라고 비난합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말이 남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국가 운영에서 정치적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이끄는 경기도는 연정의 좋은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사회통합부지사를 야당에 내주고 ‘협치’를 해나가고 있는데요. 남 지사는 조만간 지방장관제를 신설해 야당에 자리를 더 내어줄 계획입니다. 권력을 나눠 도정을 함께 이끌면서 소모적 논쟁이 줄었다고 합니다. 경기도민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모습은 중앙 정치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1년2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7년 대선. 이제 중앙 정치도 권력을 나누는 협치의 모델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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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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