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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유령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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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431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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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령들의 고향

아일랜드의 해피 핼러윈!

▲ 핼러윈의 상징이 된 ‘잭오랜턴’ 장식.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일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변덕스러운 날씨만 제외하면 거의 천국과 맞먹는다나. 하루에도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면,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이라며 다른 누군가가 반박을 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더블린 시내에서는 모피에 샌들을 신은 사람, 반팔에 털부츠를 신은 이상한 차림의 관광객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일랜드인에게 날씨 이야기는 자신들의 나라를 자랑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곧 아일랜드의 날씨가 궂은 이유는 지상에 천국과 같은 곳이 있으면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오늘날의 아일랜드에서는 1845년부터 7년간 계속됐던 대기근의 흔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영국의 수탈과 감자 마름병으로 심화되었던 기근 때문에 당시 800만이었던 아일랜드 인구는 1851년에 이르러 600만으로 감소했다. 100만이 죽고 100만이 이민을 떠났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2016년 현재, 1인당 GDP가 5만6000달러를 웃도는 아일랜드는 1인당 GDP가 4만달러에 머물러 있는 영국을 앞서면서 당당히 북유럽 복지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현지인들이야 과도한 복지 때문에 본인들이 손해 보는 면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서는 한때 소위 ‘유럽의 흑인’으로 불렸던 예전의 면모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아일랜드는 시민들이 그간 공짜로 제공되던 수돗물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정부를 상대로 거리 행진을 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동료 교사의 결근 시 대신 감독(수업을 한 게 아니라 단지 감독)을 한 데 대해 정당한 수당을 받기 위해 합법적인 수업 거부를 할 수 있는 나라이다. 날씨까지 좋았더라면 정말 불공평했을 테지만, 다행히(?) 음울한 날씨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이들도 많다.
   
   연중 비바람이 불고 흐린 아일랜드지만, 이곳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온다. 이맘때에 현지인들이 도토리 모으는 다람쥐만큼이나 다급해지는 이유는 춥고 황량해지기 전에 계절을 마음껏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나뭇잎들은 노랗고 빨갛게 단풍이 들기 무섭게 바닥에 수북이 깔린다. 그리고 그 낙엽들은 곧 봄여름 내내 마음껏 활개 치지 못했던 바람의 장난에 의해 이리로 쏠리고 저리로 쏠린다. 바람은 그것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대지와 바다와 하늘 전체를 뒤흔들고 다닌다. 전깃줄, 사람들의 옷자락, 머리카락, 그리고 가끔은 대범하게 뜰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람의 춤에 넋을 놓는다.
   
   아일랜드에는 초월적 존재에 관한 이야기들이 유독 많다. 마녀의 옆얼굴을 닮은 바위, 금방이라도 괴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동굴, 광인의 머리카락처럼 늘어진 나뭇가지, 요정들이 산다는 나무 성 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라 더욱 그런 듯하다. 특히 비바람이 부는 겨울 저녁, 폐허가 된 성 주변이나 음산한 바닷가에서 우우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나무들을 본 사람이라면,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결코 우연히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죽은 나무의 몸통에 요정들이 사는 성을 만들었다. 유령 이야기의 고향답다.

   유령들의 본고장
   
   한때 할리우드 영화사가 주목했던 늑대인간, 뱀파이어, 밴시(Banshee) 등은 모두 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피조물들이다. 자신들을 늑대로 변신시킬 수 있었던 고대 오소리(Ossory) 왕국 사람들, 무덤에서 나와 남자들을 유혹해 피를 빨아먹었다는 아름다운 뱀파이어 처녀, 산발을 한 채 통곡을 하거나 비명을 질러 누군가의 죽음을 예고했다는 밴시에 얽힌 이야기는 이 나라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통해 오랜 세월 다양하게 첨삭되고 변주되어 이어져왔다.
   
   재미있는 것은 아일랜드가 이런 유령들의 존재를 그저 이야기로만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을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은 유령, 재혼한 아내를 쫓아다니는 유령, 목이 잘린 채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유령 등이 최근까지도 언제 어디서 몇 명의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는 이야기가 늘 함께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어떤 마을을 방문해도 유령 이야기는 끊이질 않는다.
   
   아일랜드인들의 파티는 보통 해가 지면 시작해서 자정을 넘기고 다음 날까지 이어진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무엇보다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 후 새벽 어스름 길을 나선다.
   
   어둡고 추운 밤에 나누기 좋은 재미있는 ‘유령차’ 이야기가 있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깜깜한 핼러윈 밤, 존 오레어리라는 사내가 도로변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갔지만 차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폭풍이 거세지면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 어디서 나타났는지 차 한 대가 천천히 존에게 다가오더니 멈추었다.
   
   너무나 절박했던 존은 막무가내로 차의 뒷좌석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으며 시동도 꺼져 있었다. 존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운전자도 없고 시동도 꺼진 차가 천천히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굽은 길이 나타났다. 그대로 가면 벽을 들이받고 죽는 상황, 다급해진 존은 공포에 질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창을 통해 손 하나가 쑥 들어오더니 핸들을 잡고 방향을 틀었다.
   
   존은 너무 무서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길 아래로 술집에서 나오는 불빛이 어렴풋이 보이는 게 아닌가! 존은 안간힘을 써 차에서 뛰어내린 후 죽어라 펍을 향해 달렸다. 흠뻑 젖은 채 숨이 턱에까지 닿은 존은 술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방금 전에 겪은 무서운 사건을 털어놓았다.
   
   술집 가득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존이(취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펍의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비바람 몰아치는 어두운 곳에서 나타난 그들은 존과 마찬가지로 비에 흠뻑 젖어 있었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흐느껴 우는 존을 발견한 한 사람이 말했다. “저 녀석이야, 패디. 우리가 퍼진 차를 밀고 있을 때 냉큼 올라탔다가 사라진 멍청한 놈이 바로 저기 있다고.”
   
   수많은 유령들을 양산한 나라답게 핼러윈 역시 아일랜드가 본고장이다. 핼러윈의 풍습은 한국의 동지(冬至) 풍습과 유사하다. 뱀 사(蛇) 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두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보리뿌리로 점을 치며, 귀신이 싫어하는 팥죽을 쑤었던 우리네처럼 아일랜드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식들을 거행했다.
   
▲ 나무에도 핼러윈 장식을 한다.

   아일랜드인의 조상인 켈트족은 곡식의 추수와 가축의 방목이 끝나는 여름의 끝날을 한 해의 끝으로 보았으며, 이를 ‘사윈즈 이브(Samhain’s eve)’라는 이름으로 기념했다. 그들은 새해의 전날이기도 한 이 10월의 마지막 날에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약해진 틈을 타 악령들이 인간들을 찾아온다고 믿었다. 기독교가 전파된 후 이날이 같은 날짜인 ‘모든 성인의 날 전야’로 포섭, ‘모든 성령의 날 전야(All Hallow’s Eve)’로 불리다가 줄여서 ‘핼러이브(Halloweve)’로, 다시 ‘핼러윈(Hallowee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수많은 아일랜드인의 풍습을 지켜본 다른 이민자들이 핼러윈을 독특하고 재미있게 여겨 따라하면서 널리 퍼졌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아일랜드인들은 사윈즈 이브를 맞기 전에 집에 호박등을 달거나 금줄을 치고 무시무시하게 꾸밈으로써, 또한 당일에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변장을 함으로써 악령들을 몰아내거나 속일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10월 말경 집을 장식하는 것은 단순히 축제를 즐기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유리창, 현관, 대문, 담장 등에 매달린 잘린 손, 피 흘리는 손가락, 뼈다귀, 거미줄 장식 등은 지상으로 튀어나온 악령들을 막기 위한 강력한 주술적 도구였다.
   
   아일랜드인들은 이날 가족끼리, 친구끼리, 혹은 회사 동료끼리 다양한 모임을 가진다. 이날 더블린 시내의 최고 번화가인 그라프톤은 오히려 한산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추석 명절과 비슷한 분위기라 가정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기네스와 제임슨 위스키는 여전히 건재하다. 핼러윈 당일 “오늘은 핼러윈이니까!”라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 전날에는 “내일이 핼러윈이니까!”라며 마셨던 이들이고, 다음날에는 “어제가 핼러윈이었으니!”라며 마실 이들이다.
   
   주택가가 밀집한 곳에서의 본격적인 핼러윈 행사는 해가 질 무렵부터 시작된다. 이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바로 동네 공원에 모여 모닥불을 피우는 것.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와 악령과 불운을 쫓기 위해 불을 지핀다. 불이 꺼질 무렵 잉걸불에 머리카락을 잘라 던져 넣으면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의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는 미신이 있다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냥 배우자의 얼굴이 아니라 ‘첫’ 배우자의 얼굴이 보인다는 점이다. 아일랜드의 높은 이혼율을 감안하면 납득이 가는 단어 ‘첫’이기도 하다.
   
   
▲ 아일랜드 슬라이고, 이민선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여인의 동상.

   트릭 오어 트리트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는 과거 아일랜드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일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집집이 돌며 죽은 자를 위해 노래하고 기도하는 대신 음식을 구했던 풍습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애초에 아일랜드에서의 구호는 ‘헬프 더 핼러윈(Help the Halloween)’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즐거운 유희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정도의 뉘앙스를 띤 트릭 오어 트리트로 변화되었다. 한편 켈틱 기원에 의하면, 사윈즈 데이에 변장을 하는 것만으로는 불안했던 사람들이 유령들을 달랠 음식을 준비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행여 그냥 돌아가기 서운한 유령들이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오늘날에도 약간의 다과를 내놓고 공짜로 가져가라는 팻말을 붙인 곳들이 꽤 있다.
   
   한편 가족끼리 핼러윈을 기념하는 저녁 식사에는 반브랙(Barnbrack)이라 불리는 특별한 과일케이크가 나오기도 한다. 빵 속에는 음식이 아닌 것들이 감춰져 있는데 그것들로 빵을 받은 가족 구성원들의 운을 점쳐 보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빵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것들이 모두 좋은 의미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반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머잖아 사랑을 하게 되거나 행복이 지속되고, 동전을 발견하는 사람은 풍족한 한 해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헝겊 조각을 발견하는 사람은 조만간 미덥지 못한 재정적 거래를 할 수 있고, 골무를 발견한 사람은 결코 결혼을 하지 못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핼러윈 의상을 갖춰 입은 아이들이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동네를 돌기 시작한다. 너무 어린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조금 큰 아이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트릭 오어 트리트를 외치며 바구니를 내미는 아이들에게 밋밋하게 먹거리를 내미는 것은 실례다. 심하게 놀란 척을 하는 어른들이 진정한 고수. 이 날을 위해 각종 사탕과 젤리, 초콜릿을 모은 동네 어른들은 온갖 종류의 유령들을 맞이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핼러윈 의상은 1000년 전의 켈트족들이, 악령들이 인간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동물 가죽이나 동물 머리를 뒤집어썼던 데서 유래되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아닌 척을 함으로써 유령들을 속이기 위한 변장이었던 셈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결된 토끼, 곰, 호랑이 등 동물 모양의 옷이 있는가 하면 바나나, 딸기, 포도 등 과일 모양의 귀여운 의상이 있다. 최근에는 유령들을 너끈히 던져버릴 수 있는 배트맨, 슈퍼맨, 어벤저스 수퍼히어로 등의 파워풀한 코스튬도 나오는데, 뭐니뭐니해도 직접적으로 유령들을 흉내 낸 의상들이 가장 많다.
   
▲ 아일랜드의 가을 풍경.

   잭오랜턴(Jack O" Lantern)의 기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고대의 켈트족들이 사윈즈 이브에 모닥불을 피운 후 그 불씨를 각자의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순무에 구멍을 뚫었다는 게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18세기부터 퍼진 것으로 대장장이 잭에 얽힌 이야기이다.
   
   어느 날 잭이 악마를 초대해 술을 대접했다. 악마가 답례를 하고 싶어 하자 잭은 악마가 작은 동전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악마가 흔쾌히 그렇다고 답한 후 동전으로 변하자, 잭은 재빨리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는 잭이 미리 준비한 은 십자가가 들어 있어 악마는 더 이상 주술을 부릴 수가 없었다. 잭은 악마에게서 앞으로 1년간은 자신을 괴롭히지 말 것이며, 잭이 죽어도 결코 그의 영혼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그를 풀어주었다.
   
   다음 해에 잭은 또다시 악마에게 나무에서 과일을 따달라고 졸랐다. 악마가 나무에 올라가자 잭은 기다렸다는 듯 나무 둥치에 십자가를 새겼다. 악마가 나무 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자, 잭은 그가 향후 10년간 자신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한 후 내려 주었다.
   
   잭이 죽었을 때 신은 악마와 교류한 그를 천국에 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악마 역시 결코 그를 지옥에 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잭은 영원히 계속되는 밤을 방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두운 밤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 잭은 악마에게 요구하여 불붙은 석탄을 얻었는데, 이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순무에 구멍을 뚫어 그 안에 석탄을 넣고 다녔다고 한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잭이 들고 다니는 순무등보다 더 무서운 등을 만들어 집 앞에 놓음으로써 잭을 멀리 쫓아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핼러윈이 전파된 미국에서는 이 순무가 흔치 않았으므로 빛깔도 곱고 구하기도 쉬운 호박을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 핼러윈의 장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오렌지색 호박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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