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가 10년에 걸쳐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가 10년에 걸쳐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

셰익스피어를 전공한 노(老)교수의 집념이 한국 번역 출판계의 기념비적인 저작물을 낳았다. 이상섭(79)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는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꼬박 10년에 걸쳐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문학과지성사)을 최근 펴낸 것이다.

보통 책 2배 크기인 국배판에 1808쪽에 이르는 이 책에는 △사극 ‘헨리 5세’ ‘헨리 6세’ 등 10작품 △비극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 10작품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등 10작품 △로맨스극 ‘심벌린’ ‘겨울 이야기’ 등 6작품 △시 ‘루크리스의 겁탈’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 5작품과 ‘소네트’ 등 모두 44편의 작품 번역이 실려 있다.

지금까지 셰익스피어 전집이 없지는 않았지만 희곡을 작품별로 나눠 분권으로 출판하는 형식이었기에, 154수 연작시인 ‘소네트’까지 포함해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한 사람이 번역, 한 권에 실은 경우는 이 교수가 처음이다. 두께 7㎝, 무게가 4.5㎏이나 나가는 방대한 분량이다.

잉글랜드 워릭셔 카운티에 있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1564년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영국문학사는 물론 세계문학사에 기록된 주옥 같은 작품들을 남기고 1616년 52세로 사망했다. 올해가 사망 400주년인 해라 그의 대표작인 ‘햄릿’ 번역만 국내에서 2권이 새로 나왔다. 이상섭 교수의 번역까지 합치면 한국의 대표적 문학 전문 출판사인 창비(설준규 번역), 문학동네(이경식), 문학과지성사, 3곳에서 모두 새로운 ‘햄릿’ 번역이 나온 셈이다.

이상섭 교수의 이번 셰익스피어 번역의 가장 큰 특징은 무대 공연을 상정한 희곡 본래의 취지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우리 무대에서 대사로 쓸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가락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술적 정확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길고도 현학적으로 번역하면 우리말로는 읽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연극의 대사로도 맞지 않는다.”(머리말)

이를 위해 이 교수가 택한 방법은 셰익스피어의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을 우리말의 4.4조와 그 변조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소리의 간결함과 가락이 주는 흥취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하나의 행은 10음절로 구성되어 있고, 이런 음절들이 강약의 2음절 단위로 나눠진다. 즉 희곡의 1행이 5개의 약세 음절과 5개의 강세 음절로 구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덴마크 왕자 햄릿의 독백이자, 셰익스피어 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3막1장의 독백 대사에 강세(고딕체)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문장을 “존재냐, 비존재냐,―그것이 문제다”라고 번역한 데서 보이듯, 1960년대에 대학교육을 받은 세대 특유의 ‘고어(古語)투’가 옥에 티처럼 더러 눈에 띈다.

하지만 노구를 이끌고 10년에 걸쳐 우리말로 옮긴 이 교수의 학문적 열정은, 당연히,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혼자서 만 2년 동안 교정·교열과 편집을 맡은 윤병무 문학과지성사 주간의 노고 또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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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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