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찌개는 서울 토박이인 어머니가 즐겨 끓여주는 음식이다. 들어가는 재료는 새우젓을 기본으로 두부, 돼지고기, 마늘, 참기름, 애호박 정도? 아, 국물은 쌀뜨물로 한다.

만드는 법도 재료만큼 간단하다. 냄비를 불에 올려 달궈지면 참기름을 조금 두르고 다진마늘과 돼지고기를 볶다가 대강 익으면 쌀뜨물을 붓는다. 납작하게 반달 모양으로 썬 애호박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간하게 양념하고 바글바글 끓인다. 애호박이 반투명하게 익은 듯 보이면 도톰하게 썬 두부를 넣고 뚜껑을 덮는다. 풋고추 하나쯤 어슷썰기 해서 넣어도 좋다.

두부가 속까지 따끈하게 데워졌을 때쯤 뚜껑을 열어 그릇에 담는다. 사발이나 냄비째 놓고 나눠 먹기도 했지만, 내가 워낙 새우젓찌개를 좋아하니까 어머니는 국그릇에 내 것만 따로 퍼담아주었다. 그럼 나는 그 새우젓찌개를 국처럼 떠먹다가 나중에는 밥을 말아서 그릇을 비웠다.

해외출장 길에 어머니에게 전화하면 “와서 뭘 먹고 싶어?”라고 항상 물으셨다. 나는 거의 항상 “새우젓찌개”라고 대답했다. 흔히 해외에 나가면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하지만, 내게 김치찌개는 너무 맵고 짜서 그리 입에서 당기지 않았다.

새우젓찌개는 김치찌개보다 심심하지만 새우젓으로 간을 해 간간하고 개운한 것이 외국 음식에 질린 입과 혀를 말끔히 씻어주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김치찌개는 밖에서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새우젓찌개는 파는 식당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외국 나갔을 때 먹고 싶은 ‘엄마 음식’ 제1순위는 항상 새우젓찌개였다.

2010년 1년 동안 이탈리아로 연수를 다녀왔다. 세계 슬로푸드협회에서 만든 미식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UNISG)이란 학교가 있다. 조리법을 가르치는 요리학교나 영양학을 가르치는 식품영양학과가 아닌, 음식을 인문학으로 접근하는 세계 최초의 대학이다. 나는 미식학대학 석사과정 ‘음식 문화와 커뮤니케이션(Food Culture and Communication)’을 졸업했다.

대학원은 파르마(Parma)란 도시에 있었다. 파르마는 흔히 ‘파마잔’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명품(名品) 치즈 파르미자노 레자노와 돼지 뒷다리로 만드는 생햄 프로슈토의 고향이다. 게다가 파르마는 이탈리아에서도 미식(美食)의 지방으로 손꼽히는 에밀리아 로마냐주(州)에 있었다. 워낙 맛난 음식이 많은 데다가, 한국인 입에 잘 맞는 이탈리아 음식의 최상품이 지천이라 딱히 한식이 생각나지도,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탈리아 음식과 음료를 실컷 음미하며 보내다 여름방학에 맞춰 부모님이 이탈리아에 오셨다. 세들어 사는 좁은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돌아와 문을 여는데 익숙한 냄새가 났다. 살짝 쿰쿰하면서 비릿하면서 달큰하고 구수한 냄새, 새우젓찌개였다. 나에게 끓여주려고 서울에서 새우젓을 사들고 온 걸 비밀로 했다고 했다.

그동안 한 번도 김치는커녕 한식이 먹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 비릿한 새우젓 냄새를 맡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어머니가 대접에 새우젓찌개를 가득 담아 내줬다. 숟가락으로 찌개 국물을 떠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한국에서 먹던 모든 음식과 남겨두고 온 모든 이들이 그 국물에 담겨 입으로 들어와 머릿속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찌개와 밥을 순식간에 비우고 한 그릇씩 더 먹었다. 그 순간은 이탈리아 파르마가 아니라 서울 은평구 우리집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했다. 이날의 새우젓찌개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2011년 돌아와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아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아내는 경남 마산 출신이다. 우리집과는 입맛이 전혀 다르다.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와 서울 토박이 어머니가 만나 가정을 이룬 우리집은 고기를 좋아한다. 내 여동생은 “채소는 가축이 먹는 것”이라고 할 정도다. 그중에서도 돼지고기를 특히 즐긴다. 명절에는 직접 빚은 만두로 끓인 만둣국이 꼭 있어야 한다.

처가집은 설날 대구를 넣고 끓인 대구떡국을 별미로 먹는다. 곰탕처럼 뽀얀 국물이 시원하면서도 구수하다. 설날 대구떡국뿐 아니라 언제나 밥상이 생선 따위 해산물로 그득하다. 고기는 잘 먹지 않지만 특히 돼지고기는 즐기지 않는다. 아내는 “멸치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먹어봤지, 돼지고기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결혼하고 처음 먹어봤다”고 할 정도다. 그러니 새우젓찌개는 아내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결혼하고 첫 해외출장을 갔다가 귀국하는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오니 아내가 상을 차리고 있었다. 친숙한 냄새가 주방에서 솔솔 풍겨왔다. 새우젓찌개였다. 아내는 “출장갔다 올 때마다 새우젓찌개를 먹었다길래, 어머님께 물어서 끓여 봤다”고 말했다. 내가 두어 숟갈 입에 대자 아내가 “맛이 괜찮으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수십 년 경력의 어머니가 끓인 새우젓찌개와는 물론 달랐다. 하지만 음식 맛이란 단지 혀로만 느끼는 건 아니지 않던가. 영어로 식사를 ‘다이닝 익스피리언스(dining experience)’라고 한다. 세 치 혀로 단순히 맛만 보는 게 아니라 총체적 경험이란 거다. 그런 의미에서 그날의 식사, 음식의 맛은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나를 위해서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묻고 배워서 처음 끓인 새우젓찌개라니, 맛보지 않아도 이미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이후로 아내는 새우젓찌개가 어린 아들들에게 먹이기 좋은 순한 음식이라며 자주 끓인다. 그리하여 자기 고향 음식만큼 능숙하게 만들게 됐다. 어떨 때는 엄마가 끓인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결혼 후 첫 출장에서 돌아온 날 끓여줬던 그 새우젓찌개만은 못하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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