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거짓말입니다. 12월 22일 현재, 최순실 국정농단 5차 청문회장은 거짓말 배틀장 같습니다. 누가누가 더 거짓말을 많이, 더 정교하게 하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보입니다. 오늘 청문회장의 거짓말 대상 후보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유력해 보입니다. 청문회장의 거짓말은 나날이 진화 중입니다. 재벌총수들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주역이었던 1·2차 청문회장의 거짓말은 차라리 1차원적이었습니다. “아닙니다” “모릅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했지요. 오늘 5차 청문회장에서는 아예 거짓말이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의 ‘위증교사’ 의혹을 두고 ‘맞다 아니다’ 하며 본질을 흐리는 소모적 논쟁이 한 시간이나 이어졌습니다. 이 금쪽 같은 시간에.

청문회장에 들어선 증인들은 선서합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이 맹세 또한 새빨간 거짓말인 셈입니다. 여기저기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의 사기대국이라는 통계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은 일본의 66배, 인구 대비 165배나 많습니다. 반면 위증사범에게 내리는 법원의 판결은 관대합니다. 위증죄로 기소되어도 82%는 집행유예 이하의 선고를 받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이지요. 형량도 약한 편입니다. 일본은 위증사범에게 3개월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을, 독일은 1년 이상 징역을 선고하는 데 반해, 한국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내려집니다.

지난 주 커버스토리에서 ‘거짓말 공화국’을 다뤘습니다. ‘한국인의 거짓말은 타고난 것인가, 길러진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파고들었지요. 취재 결과 후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은 교육의 힘입니다. 누군가가 후천적으로 심어주지 않으면 저절로 깨우치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산업사회의 초고속 경제성장이라는 한국적 특수성도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에 한몫했습니다. 적당한 부정과 부패에 눈감아주고, 그 대가로 부와 명예를 일군 사람들이 인구구조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2016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합니다. 하루 4번, 평생 80만8000번의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지요. 거짓말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군대 가서도 키 커” “대학 가면 다 살 빠져” 같은 뻔한 선의의 거짓말도 있지만, ‘리플리 증후군’ ‘뮌하우젠 증후군’ 같은 병적인 거짓말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거짓말이 위험한 것은 거짓말에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거짓말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남습니다. 독일이나 미국 등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분위기입니다.

‘비정상의 정상화’.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에 내세운 국정운영 어젠다입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관행과 제도를 바로잡아 정상화시킨다’는 뜻도 있지만 ‘비정상적인 관행들이 정상처럼 뿌리를 내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요즘 청문회장을 보면 후자의 의미가 더 와닿습니다. 거짓말이 정상처럼 비쳐지고, 간혹 진실을 곧이곧대로 말하는 증인이 있으면 그가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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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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