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전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나의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그 당시 나는 공부는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공부 이외의 여러 가지 방면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하는 편이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할 때 길 안내잡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반듯하게 길이 나 있지도 않거니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 사람들이 몰려 살지도 않았습니다. 한참을 걸어가야 한 집이 있고, 또 한참을 가야 한 집이 나왔는데, 얼마나 많이 쏘다녔는지 나처럼 동네 전체 훤하게 꿰뚫고 우리 반 학생들 전체의 집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집을 방문하기 때문에 점심때쯤 되어서 방문하게 되는 집에서는 선생님께 꼭 식사를 대접해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길 안내차 따라다니는 나도 덩달아 갈 때마다 점심을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어렸지만, 동네를 다니면서 어느 집 음식이 맛있고 어느 집이 맛이 없는지 구분을 했던 것 같습니다. 또 정성이 들어간 음식과 아닌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은 중국집 짜장면이 가장 고급 접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집에 갔더니 김치국밥을 끓여 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은 비교적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습니다. 외양상 보기에는 별다른 추가 재료도 없이 그저 김칫국과 함께 밥을 끓인 소박한 국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김치국밥을 먹으면서 저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었나?”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천상의 음식을 맛보는 듯한 감동을 받았기에 간단한 국밥이 왜 이렇게 맛이 있는가 호기심이 생겨 자세히 관찰을 하였고, 답은 멸치국물이라는 결론을 냈습니다. 당시는 멸치가 비싸서 사용을 잘 안 했지만 선생님이 오셨다고 비싼 멸치로 진한 국물을 내었고 그 멸치국물이 김치와 혼연일체가 되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맛을 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김치국밥에 중독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김치국밥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파고들었습니다. 김치의 종류는 배추김치, 무김치, 백김치 등 수백 가지도 넘습니다. 이 모든 종류의 김치는 미생물을 통해 발효를 함으로써 고유의 맛과 풍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김치가 맛을 낸다는 사실을 알고는 미생물에 대한 공부를 더욱더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김치국밥 덕분에 미생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미생물을 아시나요’라는 미생물 관련 책도 썼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은 대략 0.5μm의 크기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학창시절 미생물에 대해 배웠던 사람들도 대부분 미생물을 어딘가에 극히 미량으로 존재하는 생물체 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생물은 지구 생물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닷물 1cc에 100만마리의 박테리아가 있을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지요. 사람의 몸속에도 미생물이 많은데 어른 몸속에 사는 미생물들의 무게를 모두 더하면 1㎏이나 됩니다. 미생물의 종류도 수천만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건 그중의 극히 일부입니다. 이렇게 많은 미생물 중에서 오직 1%만이 알려져 있고, 나머지 99%에 해당하는 미생물은 이름도 없는 것들로서 인류가 아직도 모르는 것들입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도 미생물 덕분이며, 생명체가 등장한 그때부터 지구의 주인은 미생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치에도 역시 유익한 미생물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치는 세계 최고의 건강한 미생물 발효음식입니다. 다른 나라의 발효음식들은 단백질을 통해 발효를 시키지만 우리나라의 김치는 식물에서 발효를 하기 때문에 풍부한 섬유질을 함유하고 있어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고추의 캡사이신까지 더해져서 면역력 증진과 항암 등의 다양한 효능이 있는 그야말로 보약덩어리의 미생물 공급원이 되는 것입니다. 김치국밥을 좋아하고 김치를 많이 먹는 사람은 장암에도 잘 걸리지 않습니다. 일본은 김치 맛을 잘 내는 미생물을 집중 연구해서 김치 종주국인 우리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김치뿐만 아니라 김치국밥 같은 다양한 음식을 개발해서 세계에 정식 메뉴로 올릴 때가 왔습니다.

그런데 김치국밥은 끓여 먹는 음식인데도 미생물이 살아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어떤 미생물은 100도가 넘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구 생성 초기의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미생물들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극한미생물’이라고 부릅니다. 고온에서 번식하는 미생물, pH 1~2의 강산성이나 반대로 pH 10~12의 강알칼리성 환경에서 사는 미생물, 햇빛도 없고 압력도 매우 높은 수 천 미터 깊이의 심해에서 사는 미생물, 20~30%의 고염도에서 사는 미생물 등등 다양한 미생물들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방사성 폐기물을 먹는 미생물도 있는 것으로 밝혀져 골치 아픈 핵폐기물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도 합니다.

인간에 의해 병이 든 지구를 치유하는 주치의는 지구의 주인공인 미생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생물을 적절하게 잘 섭취하면 우리 몸의 면역력을 키우고 또한 치유할 수 있는 주치의를 우리 몸 안에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김치국밥을 먹으면서 감탄을 하던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못 했지만, 제가 미생물 연구를 하게 된 계기에는 바로 김치국밥이 있었습니다. 김치국밥은 내 인생의 소울푸드이자 내 인생의 길을 정하게 된 스승님 역할을 했습니다.

이상희 녹색삶지식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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