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
지그문트 바우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사교육 열풍은 가계(家計)를 유린하는 망국병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공적 해결수단(공교육)을 외면하고 개인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투쟁(사교육)에 홀로 나서고 있다. 이 고독한 투쟁에서 개인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화’라는 현대 전반의 특징을 반영한다. 오늘날 어느 사회든 제반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현상에 천착하여 현대의 본질을 꿰뚫어본 우리 시대의 고전이 있다. 바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의 ‘액체 현대’(Liquid Modernity·2000)이다. 본래 ‘모더니티(modernity)’는 근대, 근대성, 현대, 현대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여기서는 ‘현대’로 통일함을 지적해 둔다.

바우만은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는’ 최고의 사회이론가로 일컬어졌다. 하지만 지난 1월 9일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본래 그는 폴란드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난과 차별에 시달렸다. 1939년 나치가 침공하자 가족이 소련으로 도망가 홀로코스트를 모면했다. 거기서 공산당에 가입하고 군인이 되어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전후에 ‘조국’ 폴란드의 군장교가 되었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53년 전역해야 했다. 그는 이듬해부터 바르샤바대학 강단에 서다가 1968년 공산정권의 반유대정책으로 말미암아 교수직은 물론 국적까지 박탈당했다. 부득이 이스라엘로 갔지만 시온주의의 과격성에 실망하고 말았다.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서 어렵사리 리즈대학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처음에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였다. 영국에 가서도 한동안 그러한 입장을 고수했다. 차츰 짐멜, 그람시, 아렌트 등 다양한 지적 전통을 수용하며 사회를 좀 더 다각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현대와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Holocaust·1989)를 통해 뒤늦게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때 이미 64세였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을 지적한 바 있다.(주간조선 2441호 참조) 바우만은 한걸음 더 나아가 ‘현대와 홀로코스트’에서 ‘악의 합리성’을 주장했다. 그는 홀로코스트가 관료제, 산업화, 합리주의 등 현대의 ‘화려한’ 성과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라고 보았다. 그것은 ‘현대문명의 (예외적) 실패가 아니라 그것의 (합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의 차별, 학대, 폭력, 학살 등이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작업을 계기로 그는 ‘현대’에 대해 더욱 깊이 천착하였다. 그의 학문은 은퇴(1990) 이후 오히려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액체 현대’를 비롯해 단독저작 또는 공동저작으로 ‘액체 사랑’ ‘액체 인생’ ‘액체 공포’ ‘액체 시간’ ‘액체 감시’ 등 이른바 ‘액체 시리즈’를 잇따라 발표했다. 그는 ‘액체(liquid)’라는 메타포를 통해 ‘현대(modernity)’의 다양한 특징을 포착하려는 작업에 정력적으로 매달렸다.

‘액체 현대’ 초판 표지
‘액체 현대’ 초판 표지

현대는 전 시대를 파괴하고 ‘녹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유동성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불안도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성과 의지를 앞세워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고 통제하려고 했다. 이런 작업은 근대국민국가를 중심으로 맹렬하게 추진되었다. 한동안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낙관이 팽배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를 만들어낸 ‘집단적 기획’이다.

이러한 기획은 20세기 전반 포드자동차 공장에 상징적으로 구현되었다. 거대한 자본과 노동이 공장이라는 육중한 물리적 공간에서 단단히 결속되었다. 이처럼 전 시대를 ‘녹여’ 시작된 ‘끈적끈적한’ 현대는 다시금 ‘딱딱한’ 체제로 안정화되었다. 한마디로 ‘고체’ 현대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는 이러한 현대가 드러낸 한계의 한 단면이었다. 그것은 결코 우연적 실수가 아니라 현대의 필연적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8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 이와 더불어 소비주의가 극단적으로 만연하고 기성정치 체제가 위기를 맞았다. 조금씩 균열 조짐을 보이던 현대는 빠르게 ‘녹아내렸다’. 오늘의 기준이 내일이면 또다시 바뀌었다. 체제 경쟁도 사라지고 이상적인 목표도 실종되었다. 그 대신 다원성, 다양성, 우발성, 혼돈, 불확실성 등으로 가득 찬 ‘새로운’ 현대가 등장했다. 이것이 다름아닌 ‘액체’ 현대이다.

이제 개인의 선택을 집단적 기획이나 행동에 연결해주던 유대관계들이 모두 소멸되었다. 이로 인해 형식상 개인에게 엄청난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 자유는 개인이 주체적 행위자로서 유익하게 향유할 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유라는 명목으로 개인은 자신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의 두 어깨 위에 짊어지게 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개인은 불안에 시달리고 생존에 급급하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쾌락, 안전을 확보하는 일에 노심초사한다. 그에게 공적인 관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가 직면하는 문제와 고통, 불안은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결코 개인이 홀로 해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개인은 이런 승산 없는 싸움에 홀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형식상 부여된 자유와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기회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이 ‘심연’을 메우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이처럼 ‘공적 영역’과 ‘공적 권력’의 필요성은 오늘날 더욱 요구된다. 그럼에도 ‘액체’ 현대는 ‘체제’를 ‘사회’로, ‘정치’를 ‘개인적 대책’으로 바꾸고, 사회적 공존의 ‘집단적’ 차원을 ‘개인적’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이제 사회 전체를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나 야망을 가진 기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적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바우만은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 권력에 대한 정치의 통제력 회복,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유 등을 제안한다. 특히 그는 ‘모두가 힘을 합치기만 하면 서로를 위해 함께 이루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제안은 지극히 기초적인 전제조건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그것은 전 시대를 녹여 ‘고체’ 현대를 주조한 ‘집단적 기획’만큼이나 거대한 것이다.

‘액체 현대’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모두(冒頭)에 예시한 사교육의 폐해도 결코 ‘액체’ 현대와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제 현대사회에 ‘시민’은 사라지고 ‘개인’만 남았다. 이로 인해 현대인은 총을 들고 홀로 들판을 헤매는 가난한 사냥꾼이 되고 말았다. 바우만은 이러한 현대인의 소외된 처지를 고뇌하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부디 평온한 안식을 누리기 바란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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