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중심 오코넬가의 제임스 조이스 동상. 지나가는 여행자마다 그의 팔짱을 끼고 사진 한 번씩 찍게 되는 곳이다. ⓒphoto 이승원
더블린 중심 오코넬가의 제임스 조이스 동상. 지나가는 여행자마다 그의 팔짱을 끼고 사진 한 번씩 찍게 되는 곳이다. ⓒphoto 이승원

“나는 너를 몰라. 하지만 너를 원해.(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 영화 ‘원스(Once)’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영화 속 한 장면. 연인이 떠나버리고 홀로 남아 아이를 키우는 한 여자는 음악이 너무 듣고 싶어 시디플레이어를 재생하려 하지만 건전지가 없다. 건전지를 살 돈조차 없어 딸아이의 저금통을 몰래 털어 가게로 향한다. 얼빠진 표정으로 건전지를 허겁지겁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는 ‘내 아이의 저금통을 몰래 털었다’는 죄책감조차 잠시 잊은 채 마치 구원의 열쇠를 들고 천국의 대문을 열 듯, 건전지를 시디플레이어에 넣는다. 마침내 그녀는 음악이 주는 위안 속으로 미친 듯이 빠져든다.

그녀가 음악에 푹 빠져 모든 시름을 잊은 채 걷고 또 걸었던 그 골목길, 그녀가 ‘나도 어쩌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도시가 바로 더블린이었다. 음악에 빠진 그 순간 그녀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잊는다. 홀로 남겨졌다는 슬픔도, 벗어날 길 없는 가난도,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현실조차도. 그녀의 음악에는 꾸밈도 기교도 허세도 없었다. 오직 음악 속의 멜로디와 리듬이 자아내는 순정한 울림뿐.

평생 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에 인생을 바쳐온 한 남자와 함께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너를 몰라. 하지만 너를 원해.”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내 가슴에 더블린의 골목골목이 굽이굽이 가슴에 새겨졌다. 언젠가 저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가슴속 불씨가 오래오래 꺼지지 않는 화로처럼 마음속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원스’의 감독 존 카니가 최근에 만든 또 한 편의 음악영화 ‘싱 스트리트’에서도 더블린은 1980년대 음악의 산실이 된 문화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어떻게 1980년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았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더블린은 그 당시와 비교해도 크게 변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살짝 1980년대적 분위기만 양념처럼 얹으면 거리 전체가 금세 훌륭한 영화 세트가 된다고 한다. 내가 오랫동안 더블린을 꿈꾼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도시가 수많은 작가들을 낳은 도시라는 점이었다. 조지 버나드 쇼,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조너선 스위프트, 사뮈엘 베케트 모두가 더블린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한 작가들이다.

더블린 국립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photo 이승원
더블린 국립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 ⓒphoto 이승원

더블린은 런던처럼 거대한 도시는 아니다. 면적 115㎢, 인구 52만의 중소도시 더블린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무려 4명이나 배출되었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이토록 위대한 작가들이 많이 태어나다니’라는 경탄으로 먼저 다가왔던 더블린. 언제 마셔도 놀라운 맛을 자랑하는 맥주 기네스의 도시이기도 하고, 영화 ‘원스’의 주인공이 거리에서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노래를 불러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던 도시이기도 하며, 록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U2의 도시일 뿐만 아니라, ‘더 블로어스 도터(The Blower’s Daughter)’라는 노래로 전 세계 음악팬들을 사로잡은 가수 데미안 라이스의 고향이기도 한 더블린. 나는 글래스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더블린으로 가서 며칠간 머무르며 더블린 구석구석을 알차게 여행할 수 있었다.

더블린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더블린 작가 박물관이었다. 보통 한 도시에 가면 그 도시에서 가장 훌륭한 미술 컬렉션을 갖춘 박물관에 먼저 가곤 했지만, 더블린에서는 미술 작품보다 ‘작가들의 흔적’이 더욱 궁금했다. 작가 박물관에는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윌리엄 예이츠 등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흑백사진이 가득했고,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는 각종 기념품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작품을 집필할 때 썼던 타자기, 만년필이나 잉크 같은 필기도구,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와 엽서들, 꼬불꼬불한 전화선이 달린 옛날 전화기, 표지가 나달나달 닳아가는 희귀한 초판본들, 작가들이 썼던 안경들.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작가 박물관이라면 어디나 있는 평범한 모습들이지만, 이 작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건들이다. 이런 곳에서는 사물들이 사람에게 말을 거는 듯한 따스한 정감이 느껴지곤 한다. 나에게는 제임스 조이스가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가 그랬다. 제임스 조이스의 피아노는 마치 그의 뜨거운 분신처럼 느껴졌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더블린 사람들’에서 보이는 외롭지만 강인한 인물들의 이미지가 그 낡은 피아노 안에 함빡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더블린을 관통하는 리피강. 리피강은 바다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하염없이 강가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다를 향하게 된다. ⓒphoto 이승원
더블린을 관통하는 리피강. 리피강은 바다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하염없이 강가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다를 향하게 된다. ⓒphoto 이승원

버나드 쇼,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예이츠…

론리 플래닛이 선정한 ‘외국인에게 가장 친절한 도시’가 바로 더블린이라는 소식에 나는 내심 ‘더블린 사람들’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올랐다. 특히 택시기사들이 무척 친절했는데, 더블린의 택시기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더블린 사람들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기사님은 휴가철이 되면 어디로 여행을 떠나세요?”라고 물으니 한 기사님은 ‘스페인’이라고 답했고, 다른 기사님은 ‘포르투갈’이라고 했다. 특히 스페인 남부의 해변으로 매년 휴가를 떠난다는 기사는 매년 똑같은 호텔의 똑같은 방에 찾아간다고 말했다.

나처럼 매년 반드시 다른 곳으로 기필코 떠나기 위해 온갖 여행정보 사이트를 뒤지는 ‘머릿속이 복잡한 여행자’와 달리, 그는 휴가란 무릇 편안하고 익숙한 곳으로 떠나는 휴식임을 알고 있었다. 휴가란 익숙한 곳에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 무엇을 향해 찾아가는 영혼의 휴식임을, 나는 잊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것, 뭔가 대단한 것, 뭔가 특별한 것을 향해 항상 목마름을 느끼는 내 호기심의 안테나를 가끔은 꺼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기사에게 “더블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세요?”라고 물어보았다. 기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 더블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나의 침대죠. 저는 우리 집 침대가 가장 좋아요.” 나는 오랜만에 낯선 사람 앞에서 깔깔 웃으며 “저도 집 나온 지 오래돼서 그런지, 정말 우리 집 침대가 그리워요”라고 고백했다. 며칠마다 잠자리가 한 번씩 바뀌는 여행이 처음에는 재미있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잠자리’보다는 ‘익숙한 잠자리’의 포근함이 점점 그리워졌다. 하지만 ‘집 같은 편안함’은 꼭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낯선 장소들이야말로 여행의 진정한 매력이다.

(왼쪽부터) 제임스 조이스 센터. 제임스 조이스의 방을 복원한 전시실.제임스 조이스의 피아노. ⓒphoto 이승원
(왼쪽부터) 제임스 조이스 센터. 제임스 조이스의 방을 복원한 전시실.제임스 조이스의 피아노. ⓒphoto 이승원

파리의 작가들이 되마고나 플로르 같은 카페에서 작품들을 썼다면, 더블린의 작가들은 펍(Pub)에서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템플바는 더블린을 찾는 여행자들이 꼭 한 번은 방문하는 명소다. 택시기사의 친절한 안내로 더블린 템플바(Temple Bar)에 도착한 나는 향기로운 아일랜드 맥주와 아일랜드 민속 음악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맥주 한 잔만 시키면 아름다운 라이브 뮤직을 실컷 들으며 ‘더블린 사람들’의 흥취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그곳에는 언제나 전 세계 관광객들이 붐빈다.

우리 민속 음악의 ‘추임새’처럼 흥겨운 몸짓과 목소리로 아일랜드 전통 민요를 따라부르는 관객들 덕분에 템플바는 취기보다 더 뜨거운 음악의 열기로 가득 찼다. 전통음악의 매력은 그것이 ‘나의 전통’이 아닐지라도 단지 그 지방의 토착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묘한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곳 사람들이 자신의 집과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는 자연스럽게 나의 집과 가족과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 템플바에서 나는 아일랜드 전통음악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흐르던 ‘우리 동네’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발견했다. 그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직하게 우리나라 가요를 흥얼거리며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작가들의 흔적은 작가 박물관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블린 거리나 공원 곳곳에 친근한 동상의 형태로도 남아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동상은 관광객들에게도 친근한 포토존이 되어준다. 더블린의 최고 명소로 불리는 기네스공장은 꼭 한 번 가볼 만하다. 기네스를 만드는 전 과정을 속속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거대한 맥주 체험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낮에 가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입장료가 살짝 비싼 편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그곳에서 다양한 편의시설과 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신선한 기네스의 향취를 마음껏 즐기며 아름다운 라이브 공연을 함께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더블린 사람들’의 가장 밝은 미소를 보았다. 술 익는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과 잃어버린 시간을 향한 그리움도 함께 익어가는 더블린의 밤이었다.

(좌) 기네스 박물관은 더블린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우) 기네스를 따르는 모습. 기네스는 ‘검은색’이 아니라 ‘루비레드’라 불리는 독특한 빛깔이다. ⓒphoto 이승원
(좌) 기네스 박물관은 더블린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우) 기네스를 따르는 모습. 기네스는 ‘검은색’이 아니라 ‘루비레드’라 불리는 독특한 빛깔이다. ⓒphoto 이승원

더블린 사람들

코너 : 우리 형이 그러던데, 위대한 예술가들은 전부 이 나라를 뜰 수밖에 없었다는데.

여기 남은 사람들은 다들 우울해져서 알코올중독자나 됐으니까.

라피나 : 일리 있는 말이구나.

-영화 ‘싱 스트리트’ 중에서

나는 더블린과 작가들의 관계를 알아보다가, 대부분의 작가들이 결국은 더블린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청운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은 결국 비좁은 더블린이 아닌 런던이나 파리 같은 대도시였고, 그들은 가난과 비참으로 얼룩진 조국의 현실 속에서 좀처럼 예술의 활로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토록 더블린에 오고 싶었는데, 내가 찾던 그들은 그토록 더블린을 떠나고 싶었다니. ‘버나드 쇼-지성의 연대기’에는 더블린을 마음의 안식처로 두면서도 결국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할 때는 더블린을 떠나 있었던 버나드 쇼의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다.

“내 인생의 과업은 아일랜드에 국한된 경험을 밑천 삼아 더블린에서 펼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런던에 가야 했다. 내 아버지가 곡물거래소에 가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런던은 영문학의 중심지이자 영어권 예술문화의 중심지였다.”

“문화예술계에서 승부를 보려는 아일랜드인은 누구나 대도시에 살면서 국제 문물을 접해야 한다고 느꼈다. 다시 말해 일단 아일랜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버나드 쇼는 문화의 변방 더블린에서 문화의 중심을 창조했고, 노벨 문학상과 아카데미 각본상을 모두 탄 세계 유일의 작가가 되었다. 버나드 쇼는 ‘더블린 사람들’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보다 더 직접적으로 더블린에 대한 애증을 표현했다.

“더블린에는 고상하고 진지한 것을 비도덕적이고 바보 같은 것과 혼동해서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경박하고 무익한 풍토가 존재하는 듯했다. 나는 실패도 싫고, 가난도 싫고, 비천함도 싫고, 그런 것들과 연결된 배척과 멸시도 싫었다. 그런데 잠재적 야망이 어마어마한 나에게 더블린이 제시하는 거라곤 그런 것들뿐이었다.”

(좌) 아일랜드 국립도서관에서는 예이츠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컬렉션 내용은 제임스 조이스 센터보다 세밀하고 풍부했다. (우) 국립박물관 입구에 있는 버나드 쇼 동상. ⓒphoto 이승원
(좌) 아일랜드 국립도서관에서는 예이츠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컬렉션 내용은 제임스 조이스 센터보다 세밀하고 풍부했다. (우) 국립박물관 입구에 있는 버나드 쇼 동상. ⓒphoto 이승원

더블린의 밤, 하면 먼저 떠오르는 템플바. 음악과 맥주와 사람들의 미소와 세계 여행자들의 ‘떼창’이 함께하는 곳이다. ⓒphoto 이승원
더블린의 밤, 하면 먼저 떠오르는 템플바. 음악과 맥주와 사람들의 미소와 세계 여행자들의 ‘떼창’이 함께하는 곳이다. ⓒphoto 이승원

더블린의 작가들은 그토록 더블린을 떠나고 싶어했지만, 여행자들은 바로 그들이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던 더블린에 매혹된다. 그다지도 더블린을 떠나고 싶어했던 그들이 오늘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더블린을 찾는 이유’가 되다니, 이 또한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임스 조이스는 비록 20대 초반에 더블린을 떠나긴 했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늘 더블린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에게 더블린이라는 도시는 단지 아일랜드의 수도이거나 자신의 고향으로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성을 머금고 있는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했다.

“나는 늘 더블린에 대해 글을 쓴다. 내가 더블린의 심장에 다가간다는 것은 전 세계 모든 도시의 심장에 다가가는 것이다. 부분 속에 전체가 담겨 있으므로.”

그는 ‘더블린 사람들’에서 아름답고 살기 좋은 더블린이 아닌, 가난과 범죄,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가 판을 치는 더블린의 참혹한 혼돈을 그려냈다.

“밤에 유리창을 쳐다볼 때면 나는 으레 ‘마비’라는 단어를 속으로 가만히 되뇌었다.” “마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공포심에 사로잡히면서도, 나는 그 곁에 더 바짝 다가가 그 ‘마비’란 놈이 저질러 놓은 죽음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애가 탔다.”

더블린의 겨울은 춥고 혹독했지만 나는 하루 종일 2만보가 넘게 걷고 또 걸음으로써 추위와 우울을 잊었다. 겨울에는 자칫 따뜻한 실내공간을 찾아다니면서 움츠러들기 쉬운데 그러다 보면 침울한 기분에 빠지기 쉽다. 겨울 여행이 매력적인 것은 끊임없이 움직임으로써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을 상쾌하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고민할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비결이고 “행복하고 행복하지 않고는 기질에 따른 것”이라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욱 불행해지는 사람들에게, 버나드 쇼는 이런 조언을 남겼다. “뭔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움직이며 살아 있을 뿐. 그건 행복보다 기분 좋은 상태다.”

때로는 낯선 도시를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 것이 행복도 불행도 아닌 ‘그것보다 더 좋은 상태’를 느끼게 하는 마음 챙김의 비결이 아닐까. 유럽의 겨울 여행은 비수기라고들 하지만, 내가 떠난 모든 겨울 여행은 하루하루가 빠짐없이 다 좋았다.

책 속에서만 생각하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보기보다는, 신발을 신고, 그 신발에 흙을 묻히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더 부지런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결코 권태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부작용의 위험 또한 전혀 없는 천연의 항우울제가 되어주기에.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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