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겨울에 피는 꽃은 땅이 키우지 않는다. 눈이 나뭇가지에 쌓여 피는 설화(雪花), 수증기와 바람이 만든 상고대,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 피는 빙화(氷花)는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것과 같은 기다림의 꽃이다.

입춘을 맞이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 세 첫사랑을 만나기 위한 조건은 꽤나 까다롭다. 눈이 제법 내리고 습해야 하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야 한다. 하지만 만나기 어렵다고 어찌 그냥 있겠는가. 그리움만 쌓고 지내다가는 봄볕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눈과 함께 또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3월 2일부터는 대부분 국립공원에서 산불조심 기간에 따른 탐방로 통제가 시작되므로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야 한다.

백두대간의 고산들은 해발이 높아 눈이 많이 내리고 오랫동안 쌓여 있어 시샘 한파가 오면 설화와 빙화를 볼 확률이 그만큼 높다. 힘들이지 않고 산행하면서 올겨울 마지막 ‘겨울왕국’에 다가갈 수 있는 백두대간 4대 설산을 소개한다.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3월 초까지 멋진 설국(雪國)을 만들어낸다.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3월 초까지 멋진 설국(雪國)을 만들어낸다.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덕 깊은 부처의 세계 강원도 오대산

고요한 산이다. 키 높은 전나무 숲에 눈이 쌓이면 부처의 옅은 미소가 곳곳에 깃든다. ‘사부작사부작’ 눈길을 걷는 일은 곧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다. 강원도 평창 오대산(五臺山·1563.4m)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산 중에서도 제일의 덕산(德山)으로 꼽힌다.

순하고 부드러운 산세에 월정사와 상원사 외에도 동(동대관음암)·서(서대수정암)·남(남대지장암)·북(북대미륵암)·중앙(중대사자암) 다섯 곳의 명당에 다섯 암자가 내려앉아 있으니 ‘부처의 산’이요, 여느 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거목들이 곳곳에 숲을 이루고 있으니 ‘거목의 산’이다.

오대산은 겨울에 더욱 덕스러워진다. 하늘로 뻗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눈꽃이 피고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나뭇가지엔 칼날 같은 상고대가 날개를 펼친다.

월정사 전나무 숲을 지나 매표소(문화재 구역 입장료 어른 3000원, 승용차 4000원)에서 상원사 입구까지는 8㎞의 제법 먼 길이다. 지금은 자동차도 오가는 길이지만 1960년대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스님과 불자들이 수행하는 마음으로 오가던 길이었다.

이 길은 얼마 전부터 ‘선재길’이란 이름을 얻었다. ‘선재’는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에서 유래했다.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다 53명의 현인을 만나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수행자가 된 기분으로 걸은 후 버스를 타고 되돌아 나와도 좋겠다.

오대산 산행은 대개 상원사에서 출발해 적멸보궁을 거쳐 비로봉에 올랐다가 되돌아온다. 이 왕복 코스가 6.6㎞(약 3시간 소요) 정도 된다. 중대사자암을 지나면 전나무와 참나무 숲이 나타난다. 정상 부근에서는 구상나무 눈꽃도 기대할 수 있다.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은 오대산 숲의 절정이자 ‘상고대의 나라’다. 비로봉에서는 북쪽 설악산에서 남쪽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뿐 아니라 강원 내륙의 고산준령과, 동대산~대관령 너머의 동해바다까지 바라보인다.

교통

승용차로는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으로 빠져나오면 월정사까지 약 15분 정도 거리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공용버스터미널까지 하루24회(첫차06:22, 막차10:05) 운행한다. 요금 1만3100원. 남부터미널에서는 하루 8회(첫차07:00, 막차19:20) 운행한다. 요금 1만2200원.

평창 진부버스터미널에서 상원사까지 왕복운행하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터미널~상원사 3000원. 월정사~상원사 1300원.

선자령의 키 높은 전나무와 자작나무가 자라는 숲은 눈을 밟으며 걷기 좋은 길이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선자령의 키 높은 전나무와 자작나무가 자라는 숲은 눈을 밟으며 걷기 좋은 길이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 눈과 바람의 나라 강원도 선자령

눈이 와야 한다고? 추워야 해? 산행도 해야 한다고?

설화와 빙화를 보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조차 귀찮다면 선자령으로 가보자. 선자령은 봄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눈이 쌓여 있어 늦게까지 겨울을 즐길 수 있다. 해발 1157m인 백두대간의 주능선이지만 해발 860m인 대관령휴게소부터 오르면 표고차가 297m밖에 나지 않고 등산로라기보다는 유유자적 걸을 수 있는 숲길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은 많다. 선자령 정상 부근에 서면 동해바다와 오대산에서 설악산을 향하는 백두대간 등의 풍광을 바라볼 수 있으며 정상까지 가는 길, 내려오는 길에 그림 같은 설화와 빙화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선자령은 바우길 제1구간인 ‘선자령 풍차길’을 이용하면 편하다. ‘풍차길’이란 이름처럼 선자령의 주인은 바람이다. 2006년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면서 선자령은 삼양목장과 어우러진 목가적인 풍광을 갖춘 여행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선자령 트레킹 들머리는 대관령휴게소다. 휴게소 오른쪽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계곡길과 능선길이 갈린다. 어느 곳을 택하든 정상으로 향하지만 겨울에는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주는 계곡 쪽을 택하는 편이 낫다.

계곡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에 오르면 철조망 너머 양떼목장의 절경이 펼쳐진다. 이후 전나무숲과 자작나무숲을 지나면 하얀 풍력발전기가 올려다보이는 언덕 아래에 당도한다. 북서쪽으로는 계방산과 오대산, 황병산이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며 서 있고 북쪽으로는 설악산 대청봉이 멀리 보인다.

광장 같은 선자령 정상엔 ‘백두대간 선자령’이라 적힌 정상석이 있다. 정상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통신시설이 있는 곳 왼쪽에 나무데크로 만든 새봉전망대가 있다. 옹기종기 건물이 모여 있는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대관령상행휴게소에서 선자령 정상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는 총 10.8㎞에 4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영동고속도로 횡계나들목으로 빠져나와 용평스키장 쪽으로 가다가 고속도로 밑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해 5㎞쯤 가면 구대관령휴게소다. 대중교통으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대관령 면소재지인 횡계 경유, 강릉·양양·동해행 버스가 1일 24회(06:30~20:05) 운행. 3시간 소요. 서울강남터미널에서는 15~20분 간격으로 고속버스운행. 강릉종합버스정류장(033-643-6091)에서 횡계버스정류장(033-335-5289)까지 15분간격(07:35~21:40)으로 시외버스가 운행한다.

창옥봉 언저리에서 본 함백산 정상.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창옥봉 언저리에서 본 함백산 정상.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초보자도 가뿐하게 오르는 눈꽃 세상 강원도 함백산

겨울 함백은 곰살맞다. 해발 1572m로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인 함백산(咸白山)은 지리산, 덕유산, 곰배령과 함께 ‘대한민국 4대 야생화 군락지’로 불린다. 이 천상의 화원이 겨울에는 온통 새하얀 눈에 뒤덮여 고요한 눈꽃의 나라로 바뀐다.

함백산은 적설량이 많아 겨울 내내 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눈이 많기로는 태백산이나 두타산과 같은 이웃한 산들도 마찬가지다. 함백산이 더욱 겨울 눈꽃산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초보자라도 산행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함백산은 우리나라 지방도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만항재(1280m)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어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해 고도를 300여m만 올리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경사도 정상 직전 오르막을 제외하면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편이며 등산객이 많아 등산로에 눈도 잘 치워져 있다.

만항재에는 고려 말 두문동 72현(賢)과 연관된 전설이 있다. 조선이 들어서던 때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산 자락으로 들어가 두문불출하던 72명의 고려 유신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그들에게 세상으로 나오길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이에 노한 태조는 이들이 사는 마을에 불을 질렀고 화마를 피해 7명의 유신이 백두대간을 따라 함백산 기슭으로 피신했다. 이들이 개경 쪽을 바라보며 망향제(望鄕祭)를 올린 곳이 바로 만항재이다.

만항재를 들머리로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 함백산~중함백산(1505m)~은대봉(1442m)을 지나 두문동재(싸리재)까지 이르는 코스가 가장 인기가 좋다. 이 코스는 8.7㎞로 5시간쯤 걸린다.

교통

고한읍에서 만항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1일 2회(09:50, 14:10) 운행한다. 만항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2㎞ 정도를 걸어서 올라가야 만항재 들머리에 닿는다. 대개는 만항재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두문동재터널 고한 방향 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만항재로 돌아간다. 택시비는 1만5000~2만원 정도 나온다. 눈이 많이 내려 두문동재 도로가 통제되면 2㎞ 정도 아래인 두문동터널까지 걸어 내려와야 한다. 고한택시 033-592-5050, 591-8181.

덕유산 설천봉의 설화.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덕유산 설천봉의 설화.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 가장 편하게 눈꽃 왕국으로 가는 길 경남·전북 덕유산

이름에서부터 넉넉하고 푸근하다. 남한 내륙 최고의 조망대로 손꼽히는 향적봉의 모습부터 그렇다. 덕유산(德裕山·1614m)은 해발 1600m를 넘지만 어떤 이든 다 받아주고 안아줄 만큼 부드러운 산세를 가졌다.

이런 덕유산의 푸근함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덕유산의 첫 이름은 광여산(匡廬山)이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산으로 숨어들었고 신기하게도 왜병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안개가 자욱하게 껴 산속에 숨어 있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 이후 사람을 지켜준 덕이 많은 산이라 하여 ‘덕 덕(德)’ 자에 ‘넉넉할 유(裕)’ 자를 붙여 덕유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강원도가 아님에도 눈이 많이 내려 그 어느 산보다 눈꽃이 화려하고 아름답거니와 무엇보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향적봉대피소에서 하루를 묵는다면 산정에서의 일출을 맞이할 수도 있다.

무주덕유산리조트에서 운행하는 곤돌라를 타면 설천봉(1470m)까지 15분 정도면 닿는다. 설천봉에는 팔각형 한옥 휴게소인 상제루(上帝樓)가 있다. 이곳에서 20여분만 걸으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닿는다. 나무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옷만 제대로 갖춰 입고 아이젠 하나만 신으면 산책 삼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다. 향적봉에 오르면 남으로 함양 백운산을 지나 지리산이 조망되고 동쪽으로는 오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비롯해 많은 능선이 중첩되며 조망된다.

향적봉에 올랐다가는 곤돌라를 타고 편하게 내려갈 수도 있고, 중봉까지 산행을 이어 구천동계곡의 오수자굴로 하산할 수도 있다.

중봉으로 이어진 능선 길에서 철쭉과 구상나무, 주목 등에 핀 환상적인 눈꽃을 볼 수 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과 중봉을 지나 구천동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총 10.5㎞에 5~6시간 걸린다.

교통

승용차로는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나들목으로나와 19번국도를 따르다가 사산삼거리에서 ‘설천·덕유산국립공원·무주구천동’ 방면으로 좌회전해 가면 무주덕유산리조트에 닿는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무주공용버스터미널까지 하루 5회(첫차 07:40, 막차 14:35) 운행한다. 요금 1만3400원. 터미널 근처 제일의원 앞에서 하루 6회 리조트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곤돌라 요금왕복 1만5000원. 2월 말까지 주말과 공휴일에 상행과 왕복에 한해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문의 063-320-7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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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손수원 월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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