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은 나이에 유년의 아스라한 옛 기억의 물병을 흔들어 보니, 가라앉은 추억의 음식 중에 먼저 떠오른 것이 팥죽과 꽁보리밥이다.

팥죽은 우리에게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의 시작이다. 이들은 픽션이 아닌 생생한 믿음으로 어린 가슴에 새겨진다. 몇 번을 들어도 재미있는 할머니의 바보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졌다. “옛날에 어느 바보와 함께 살던 홀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장례식 날 이웃 아줌마가 쑤어 놓은 팥죽에 그 바보 아들이 흙을 뿌렸다는구나. 풀썩풀썩 팥죽 끓는 소리가 울 어매 욕하는 소리 같아 그랬단다. 더구나 뒷산에 가서 어머니를 묻을 수 있도록 코가 잠길 만큼 땅을 파고 오라는 아저씨들 말을 듣고 삽을 들고 산에 간 불쌍한 바보 아들은 금방 돌아와서, 정말 코가 묻힐 만큼 산에 한 치 구멍을 내고 왔단다.”

초등학교 3학년쯤일까, 휴전 직후이니 1953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동무들과 고향 북지 마을에서 십 리길 봉화(경북) 장날 구경을 갔다. 읍내 입구인 삼계 다리 건너 주막집 토담에 붙은 빛바랜 표어가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洪山(홍산)에 홍수 나고 靑山(청산)에 쌀이 난다’.

“그래, 쌀이 많아야 이밥은 물론 팥죽도 먹지.” 중얼거리며 닿은 장터 골목에는 즐비한 차일 아래 엿·떡·채소는 물론 팥죽 파는 할매도 있었다. 팥죽 할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썩은 동아줄 타고 하늘로 오르다가 떨어지며 수수깡에 항문이 찔려 수숫대 끝머리가 핏빛처럼 붉다는 별순이 달순이 얘긴 고모네 머슴한테 처음 들었는데, 우리네 대표적 설화인 줄은 몰랐었다.

1977년 10월 3일 아침. 그 5년 전에 검은 9월단 테러로 1972년 올림픽을 피로 물들인 뮌헨올림픽 공원에서, 서른한 살 나는 엉뚱하게도 옛날 봉화 장터 팥죽 할매의 광목천 해가리개 차일을 보았다. 2015년, 90세 타계 몇 달 후 프리츠커상을 받은 프라이 오토의 멤브레인(membrane) 건축, 즉 천막으로 지은 첨단 건축을 처음 본 것이다. 마치 아메바처럼 보이는 아크릴 지붕이 석양에 빛나는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종일 올림픽 경기장을 떠날 수 없었다. 그날 깨달은 것은, 아크릴이나 테플론도 개념적으론 광목과 다를 바 없는 천막 재료이며, 지붕을 지탱하는 스틸마스트나 케이블도 소나무 장대나 새끼줄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더구나 하늘을 덮어 비바람과 햇살을 막아 안락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건축적 기능은 뮌헨경기장이나 우리 팥죽 할매의 차일 천막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본 것이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84년 나는 서울올림픽공원에 세계 최초로 ‘케이블돔’ 구조의 멤브레인 건축인 체조경기장을 설계하였다.

잠깐 샛길로 나가 체조경기장 하소연을 해야겠다. 현존하는 세계 하이테크 건축가의 상징인 영국의 노먼 포스터 경(Lord)과 한때 파트너였던 범스테드 풀러. 그가 1954년에 ‘아스펜션돔’이란 혁신적 구조 개념을 발표한 30년 후, 비로소 컴퓨터 시대에 그 이론이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한 데이비드 가이거 박사를 만나러 나는 스승 김수근을 따라 뉴욕에 갔다. 마침내 1988년 서울올림픽공원에 가이거 박사의 ‘케이블돔’인 체조경기장은 역사상 최초의 혁신적 구조로 세계적 관심 속에 완성되었다. 1988년 올림픽의 해가 저무는 12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홍콩의 HSBC은행을 설계한 노만 포스터와 훗날 시드니올림픽 설계를 총괄한 필립 콕스를 은상으로 제치고 나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 권위의 쿼터나리오(‘88Quaternario) 국제건축상 금상을 호주 총리로부터 받았다. 인류 최초의 역사적인 케이블돔 건축이며 세계가 인정하는 올림픽의 유산을 지금 문화부 산하의 체육진흥공단이 바퀴벌레 같은 우주 에일리언 모습으로 개조, 파괴를 하고 있다. 이 반문화적 횡포를 문제 삼는 사람을 언론은 물론 문화·건축계에서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고향 마을에 나보다 여남 살 더 많아도 항렬이 낮아 먼 조카인 류광희가 있었다. 그는 손재주가 좋아 전쟁 이후 유행한 병정놀이의 화약총, 썰매, 팽이 같은 장난감을 아주 잘 만들어주었다. 설날을 지난 이맘때 겨울 어느 날, 나는 부서진 삿갓의 대나무 살과 창호지를 구해 조카네 집에 가서 방패연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직사각형으로 종이를 자르고 대살에 풀을 발라야 하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조카네 집에 풀은 물론 찰기 있는 밥풀도 없었다.

그날 광희 어머니가 차려준 점심이 풀기라곤 없는 시커먼 꽁보리밥이었다. 그 보리밥을 짓이겨 겨우 만든 방패연은 눈밭에 몇 번 곤두박질하더니 곧 종이만 떨어져 바람에 날려갔다. 꼬리 없는 방패연은 일종의 하이테크 연이라 여간해서 띄우기가 쉽지 않다. 꽁보리밥 연으로 시작한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산촌 고향 하늘에 까마득히 띄운 작은 방패연은 지금, 마포나루 황포로 만든 거대한 방패연이 되어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지붕이 되었다.

30여년 전 말쑥한 차림을 한 초로의 신사가 된 광희 조카를 우연히 동대문 근처에서 만났다. “아재는 요즘도 연날리기 좋아하시나?” 얼마 후 그의 부음을 들었을 때는 월드컵 이전이라, 그 조카로부터 배운 저 큰 방패연을 자랑할 수 없었구나!

중국 베이징 뒷산 만리장성을 넘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을 강타하는 허리케인이 될 수 있다는, 이른바 ‘나비효과’라는 카오스(Chaos)이론이 있다. 결과의 예측이 뻔한 선형적 질서보다는 인과(因果)의 사슬이 훨씬 더 비선형적으로 복잡한 소위 프렉탈 구조의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우주적 개념의 진리라고 나는 믿는다. 동지의 새알 넣은 팥죽은 우리 모두의 ‘소울푸드’라도, 팥죽 할매의 차일이 내게는 상주 낙동강 전망대와 체조경기장으로 변신하는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조카네 꽁보리밥으로 실패한 방패연은 IOC 건축상으로 빛나는 서울월드컵경기장 지붕으로 날아올랐으니, 카오스의 인과는 오묘할 따름이다.

류춘수 이공건축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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