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에서 억울하게 숨진 흑인들을 추모하는 벽화.
미국 전역에서 억울하게 숨진 흑인들을 추모하는 벽화.

이탈리아 스포츠 영웅 유리 케키(Jury Chechi)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하자.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당시 체조 링 부문 금메달리스트다. 이탈리아인 모두가 존경하는 스포츠맨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베니스 스포츠센터에서였다. 운동하러 간 스포츠센터 곳곳에서 유리 케키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링에 양팔을 건 채 매달려 있는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모습이다. 35살의 나이에 은메달을 땄을 때의 사진이다. 양다리를 수평으로 한 채 링의 두 팔이 180도 벌어진 모습이다. 체지방 제로 상태가 느껴지는, 어깨 팔 다리에 붙은 근육이 경이롭다. 허공에 뜬 줄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팔 근육의 작은 전율이 피부에 와닿았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눈부신 몸짱이 아니다. 0.1초도 견디기 어려운 고난도 연기를 행하는 유리 케키의 얼굴에 빠져들었다. 극한을 이기려는, 악을 쓰면서 견디는 듯한 모습이 아니다. 너무도 ‘편안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면서 뭔가 골똘히 생각할 때의 얼굴이라고나 할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묵묵하게 총을 쏘고 사라지는 프랑스 액션영화 스타일을 연상시켰다. 땀샘 전부가 열릴 법한 저렇게 힘든 동작에서 어떻게 ‘무위(無爲)’의 표정이 가능할까? 가까운 이탈리아인에게 물어봤다.

“유리 케키가 특별한 인물이긴 하지만, 이탈리아인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표정이다. ‘운동윤리’는 초등학교 체육시간부터 배우는 중요한 내용 중 하나다. 운동장에 나가기 전 교실에서 배우는 스포츠맨십 같은 것이다. 힘이 들수록, 숨이 찰수록 표정에 드러내지 말라는 내용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을 보자. 올림픽 경기장 주변에 설치된 당시 운동선수 조각 중 인상을 쓰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표정은 단 하나도 없다. 복싱 선수, 달리기 선수의 얼굴에서 육체적 고통을 느낄 수가 없다.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삭이면서 평화롭게 표현하는 것이 운동윤리의 기본이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유리 케키의 표정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뉴욕 맨해튼 할렘의 벽화다. 보통 할렘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고통받고 차별받는 흑인, 인간 대접을 못 받는 ‘삼류 인종’의 터전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들이 창조해낸 벽화라고 하면 그 같은 고통이나 슬픔의 총천연색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원(怨)과 한(恨)을 기초로, 칼과 총으로 무장한 분노와 복수의 메시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유리의 표정처럼 담담하고 무표정하다. 고통과 차별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피와 땀으로 얼룩진 분노와는 무관하다. 악을 쓰면서 고함을 지르는 듯한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차분히 자신들의 입장을 모두에게 알리는, 객관적인 기록 같은 것이 할렘 벽화의 특징이다.

심야에 맨해튼에서 총을 맞아 숨진 흑인 청년 릴 리키를 추모하는 벽화.
심야에 맨해튼에서 총을 맞아 숨진 흑인 청년 릴 리키를 추모하는 벽화.

사실 ‘할렘=벽화’라고 하면 금시초문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할렘=재즈, 소울뮤직, 힙합’ 정도가 보통사람들의 인식이다. 음악만이 할렘의 전부는 아니다. 빌딩 사이사이 벽에 그려진 커다란 벽화도 할렘의 캐릭터 중 하나다. 사실 벽화는 맨해튼, 아니 미국과 전 세계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현대판 스트리트 팝아트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어떤 곳에 비해서도 할렘은 특별하다. 역사에 기초한,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깊고, 많고, 넓다. 늘어나는 벽화의 수만이 아니라 벽화의 질적 수준이 대단하다. 장난이나 눈요깃감 정도가 아니라 예술 차원으로 승화된 작품들이 탄생되고 있다. 미국 내 다른 도시 벽화의 경우 대부분 할렘의 영향하에서 출발했거나 진행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벽화를 보기 위해 할렘에 들른 것은 2월 둘째 주 평일 오후 3시쯤이다. 마틴 루터 킹 도로로 불리는 맨해튼 125번가가 할렘의 중심이다. 최근 할렘의 풍경이지만 이슬람 신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할렘 거리 곳곳에서 메카 쪽으로 절을 하는 흑인들이 눈에 띈다. 125번가 노점상들의 상당수는 이슬람 신자들이다. 대부분 미국에 막 정착한 이민1세대들이다. 1달러라도 벌려고 악착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200여년 전 노예로 끌려와 할렘에 정착한 미국 시민권자인 흑인들과는 다르다. 할렘의 흑인들은 일에 대한 의욕은 물론 생존 본능도 상실한 듯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가는 흑인이 절반 이상이다.

맨해튼의 동서 길이는 약 4㎞ 정도다. 할렘 벽화가 가장 많은 곳은 중심지 125번가 주변이다. 할렘을 통하는 메트로 역사(驛舍)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다. 빌딩 벽만이 아니라 가게의 철제문 표면이나 지하철이 지나가는 열차선로 아래의 빈 공간도 크고 작은 그림들도 채워져 있다. 벽화 하나하나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단순한 장난 차원이 아니라 할렘에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세계관에 기초한 작품들이다.

과거에는 길거리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달라졌다. 지금은 전문 예술가들이 주류다. 할렘이란 특수성을 고려해 흑인만이 그린다. 가끔 외국의 벽화 전문 흑인을 초대해 함께 그린다. 개인 차원의 벽화도 있지만, 할렘 지역 공공기관의 지원하에 그려진 벽화들도 많다. 지난해 할렘 종합병원에 그려진 벽화는 뉴욕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통상 할렘은 맨해튼 96번가에서 155번가에 걸친 지역을 의미한다. 할렘 전체를 통틀어 벽화가 몇 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큰 것만이 아니라 작은 벽화도 넘치고, 매일 어딘가에서 새롭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략적인 판단이지만 가로 길이 5m 이상 벽화를 기준으로 할 때 대략 250개 정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교육계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벽화.
교육계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벽화.

할렘 벽화의 5대 테마

벽화의 중심테마는 각자의 논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주관적이지만 필자는 인권·교육·여성·비폭력·정체성 5가지로 나눠 분석한다. 인권은 할렘 벽화의 출발점이 되는 주제다. 케네디 대통령 집권 시기인 1960년대 대두된 것으로 사실 다른 주제의 벽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할렘 벽화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나 암살당한 말콤 엑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벽화들이다.

인권 관련 벽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35번가에 만난 ‘피플 서바이벌 프로그램(People Survival Program)’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촛불을 켠 채 잔잔한 웃음을 머금은 11명의 흑인들 그림이다. 후드 모자를 쓴 마이클 브라운도 있다. 2014년 8월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주리주 퍼거슨시 총격 사망자다. 용의자로 의심한 백인 경찰에 의해 사살된 18세 청년이다. 벽화 속 11명 흑인들은 경찰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난, 폭력적 공권력에 의한 희생자들이다. ‘피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란 다소 코믹한 타이틀의 벽화지만, 각자의 얼굴 속에 드리워진 비장함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할렘 벽화의 기원은 1920년대다. 이때가 할렘 르네상스시대다. 1929년 대공황이 미국을 덮치기 전까지 구가했던 풍요의 시기다. 남부 거주 흑인 600만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기회의 땅 북부로 밀려든다. 할렘은 당시 흑인 문학가와 예술가들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백인으로부터의 차별은 존재했지만 흑인 스스로가 주도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개척한 미국 역사상 초유의 장소이자 시기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풍요를 배경으로 극장과 예술 관련 시설들이 할렘 곳곳에 세워진다. 남부에서만 통하던 블루스와 재즈 같은 음악도 할렘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벽화는 당시 막 등장한 예술의 한 분야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대부분 남부 흑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벽화들이 주류였다. 인권이나 비폭력 같은 현재의 문제와는 무관했다.

맨해튼 125번가 메트로 역사 바로 밑 공간을 활용한 벽화.
맨해튼 125번가 메트로 역사 바로 밑 공간을 활용한 벽화.

정체성을 주제로 한 벽화는 공간적 무대로서의 아프리카, 정신적 배경으로서의 종교와 연결된다. 아프리카와 관련된 것들과, 종교적 열정을 통해 흑인으로서의 자기 확신을 강조한다. 기린, 사자는 물론 고대 이집트를 지배했던 흑인 파라오 누비아(Nubia) 왕조가 벽화로 표현된다. 흑인으로서의 영혼(Soul)과 정신(Spirit)을 간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흑인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정체성의 기준이나 가치를 이념·민족·국가에 둔다. 할렘은 종교야말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기점이라 믿고 있는 동네다. 흥미롭게도 이슬람 신자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이슬람을 통한 흑인 정체성 확보에 주목한 벽화는 없다. 필자가 아는 한, 이슬람 관련 벽화는 아직 할렘에 없다.

벽화라고 하면 밤새 멋대로 그려놓고 도망을 가는 식의, 비겁하고도 치사한 행위로 해석되기 십상이다. 미국은 다르다. 남몰래 페인트를 칠하고 사라지면 불법 낙서로 규정된다. 자본주의 나라답게 엄청난 벌금이 기다리고 있다. 합법적인 벽화는 벽을 제공하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의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 캔버스를 빌려주는 데 따른 금전적 보상도 상상할 수 있다. 더불어 벽화의 내용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벽화에 그려진 내용을 근거로 제3자가 소송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 누드화’ 파문이 한국에서 터져나왔지만, 미국의 경우 이념과 무관하게 다뤄질 간단한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누드로 만들어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문제라면 달라진다. 소송이 가능해진다.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소송을 통해 명예를 회복한다. 이러한 소송은 엄청난 규모의 금전적 배상 또는 보상을 의미한다. 할렘만이 아니라 미국 내 모든 벽화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공공의 상식을 근거로 한다.

할렘 흑인 학교 벽에 학생들이 직접 그린 벽화.
할렘 흑인 학교 벽에 학생들이 직접 그린 벽화.

머리 위에 날개 솟구친 ‘릴 리키’

비폭력을 주제로 한 벽화는 흑인들 간의 폭력이나 마약사건에 관련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은 132번가에서 만날 수 있는 ‘릴 리키(Lil Ricy)’란 이름의 흑인 청년 벽화다. ‘전사(Warrior·戰士)’라는 타이틀과 함께 머리 위에 날개가 달린 청년의 모습이 표현돼 있다. 리키를 추모하는 10여명 친구들의 이름도 함께 쓰여 있다. 최근 추모제를 한 듯, 10여개의 촛불들도 바닥에 굴러다닌다. 숨진 당시의 나이는 없지만 숨진 곳이 심야의 맨해튼 53번가로 표현돼 있다. 전사라는 말이 있는 걸로 봐서 흑인 갱단의 일원인 듯하다. 상대방 갱단과 심야에 총격을 벌이다 사망한 듯하다. 할렘에 거주하는 청년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그린 개인적인 벽화라 볼 수 있다. 물론 비폭력과 총기소유 반대 효과도 벽화를 통해 확산시킬 수 있다.

할렘에는 릴 리키와 같은 흑인 청년을 추모하는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다. 내가 직접 본 것만도 10여개에 이른다. 125번가 주변 할렘 중심가는 예외지만, 밤의 할렘 외곽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1년 전 기억이지만 밤에 할렘 주변을 지나가다가 총소리를 들을 적이 있다. 그때 더 놀랐던 것은 불과 2~3분 만에 경찰차 10여대가 총격 현장으로 달려가는 ‘신속한’ 모습이었다. 밤의 할렘 주변은 거의 군대를 방불케 하는 경찰들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고 있다.

할렘 벽화는 하루가 다르게 번창일로에 있는 팝아트다. 최근 인기를 끄는 할렘 벽화 투어를 보자. 할렘의 역사와 전통을 벽화를 통해 풀이하는 이벤트로, 10여명이 도보로 현장을 순회하는 식이다. 한 번 투어에 8시간 정도 걸리며, 비용은 1인당 최하 30달러 선이다. 할렘 벽화는 교육 현장으로도 활용된다. 할렘만이 아니라 뉴욕을 찾는 지방의 학생들도 견학한다. 그냥 그려놓고 보라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있기에 벽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과 교육에 관한 벽화는 21세기 들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백인에 대한 흑인’이라는 주제가 20세기형이라면 ‘흑인 남성에 대한 흑인 여성’은 21세기형 벽화의 주제다. 흑인 여성으로서의 자각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강조한다. 교육 관련 벽화는 여성은 물론 남성·어린이·청년 등 흑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자기 계발 테마다. ‘백인에 대한 흑인’이라는 구도가 아니라 흑인 스스로의 문제점을 교육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자성론에 근거한 벽화다.

할렘 벽화의 수는 미국 내부의 모순과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탄생 이후 할렘 벽화가 줄어들지 않았듯이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추측도 아직 근거가 없다. 대통령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미국병’의 심각함 정도가 할렘 벽화의 수를 결정하는 근본 요인일 듯하다. 당분간은 다양한 종류의 벽화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키워드

#해외 문화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