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부끄러운 직업이 됐다.”

지난 2월 21일 도청 집무실에서 만난 홍준표 경남지사가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검찰개혁에 대한 생각을 묻자 홍 지사는 자신의 친정이기도 한 검찰과 후배 검사들에 대해 특유의 독설을 쏟아냈습니다. “내가 아들 둘한테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마지막 직업이 무엇이든 신위(神位)에 검사 홍준표로 써달라’고 평소 당부했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한테 아버지가 검사였다고 절대 밝히지 말라고 다시 당부했다.”

그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1년10개월간 큰 마음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1심에서는 유죄가 인정됐지만 2심에서는 무죄 선고를 받고 일단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졌습니다. 과거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며 거악(巨惡)과 싸운 특수통 검사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울화통을 터뜨렸습니다.

“검찰이 작성한 내 공소장을 보면 너무 엉터리다. 나 같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를 동원해야 하는데 고양이를 엮으니 말이 되느냐.”

그는 자신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 ‘양박(양아치 친박)’과 권력을 좇는 해바라기 검사들 탓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의 질타가 아니더라도 검찰과 검사들이 동네북이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권력의 풍향에 따라 얼굴이 달라지는 검찰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 때문일 것입니다.

홍 지사는 2심 재판 최후진술에서 자신이 과거 “잡어족 검사도 못 됐다”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후임지를 6개월 전에 아는 검사가 광어족이라면 도다리족은 3개월쯤 전에 안다. 잡어족은 한 3일 전쯤 알까. 그런데 나는 조선일보 인사란에 내 이름이 난 후에야 내가 어디로 갈지 알았다.”

그는 “과거 YS 정권 때 정덕진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100억원을 줄 테니 사건을 무마해달라는 유혹도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최후진술에 이런 말을 보탰다고 강조했습니다. “나름대로 청렴한 공직생활을 해왔는데도 결국 이런 사건에 휘말리고 보니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검사 시절 억울하게 잡아넣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내가 정치하면서 독설로 마음에 피멍을 들게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했다. 그래서 판사 앞에서 ‘이 정도면 이제 업(業)을 갚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

결국 홍 지사는 검찰 개혁 방안을 묻는 질문에 ‘검사들의 자긍심과 명예’라는 교과서적인 답을 내놓는 데 그쳤습니다. 그는 다른 차기주자들이 앞다퉈 내놓는 여러 검찰 개혁 방안들보다 검사들부터 달라지는 게 검찰 개혁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홍 지사는 마지막 말을 이렇게 보탰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제 정의로운 모래시계 검사가 아니라 부패하고 야비한 검사들을 등장시켜야 사람들이 환호하는 세상이 됐다. 왜 그렇게 됐는지 검사들 스스로 잘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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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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