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의 붕괴 조짐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누구나 고등교육을 누릴 권리가 있다’며 세계 유수의 대학이 무료로 무크(MOOC·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를 오픈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가 공식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학벌 없는 사회’는 명문대 출신 우대문화를 비판하면서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는 교육운동을 하는 곳이었죠. 이 단체를 해체한 이유는 예상과는 좀 다르긴 합니다. 학벌 없는 사회가 이미 실현되어서가 아니라 학벌조차 통용되지 않을 정도로 노동시장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라는군요. 동문이라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풍속조차 사라졌다는 얘기죠.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2년 전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과거 연세대 졸업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거대한 항공모함을 타고 사회로 진출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다. 요즘 졸업생들은 직접 뗏목을 만들어 스스로 험난한 바다를 헤쳐서 사회로 나가야 한다.” 항공모함과 뗏목. 취업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기막힌 비유지요. 한때 명문대만 나오면 대기업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셔가는 황홀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현 40대 후반만 해도 그런 호사를 누린 듯합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학벌이 점점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학벌보다 실력, 다시 말해 취업하자마자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업무 관련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간판뿐인 대졸자보다 알짜배기 고졸자가 환영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청년취업이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고졸취업은 무풍지대인 듯 보입니다. 지난해 고졸취업자 1000만 시대를 열더니 고졸취업률은 점점 높아지는 양상입니다. 대졸취업률과 반비례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말입니다.

지난주 ‘고졸 만세-특성화고 10년이 바꾼 풍경’을 썼습니다. 취재하면서 놀랐습니다. 또 몰랐습니다. 고졸 취업 성적표는 양적인 면은 물론 질적인 면에서도 상전벽해더군요. 고졸 출신의 금융권 고액연봉자와 국가직·지방직 공무원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교육’은 그 어느 분야보다 더디게 변하는 분야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성화고 10년이 가져온 변화는 놀랍습니다. 학생 스스로도 바뀌고 있고 사회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중학교 전교 1등이 소신껏 특성화고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자녀의 소질과 적성을 감안해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진학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부모도 늘고 있습니다.

왜 꼭 대학을 가야 할까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천재 사업가, 청년 재벌, IT계의 신화적 인물…. 또 있습니다. 셋 다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대학 공부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 인생을 어찌 살지 몰랐고, 대학 공부가 도움을 준다는 확신도 없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 평생 저축한 재산만 축내고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대학 중퇴는)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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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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