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49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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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세계 예술의 심장’ 뉴욕 3대 미술관의 선택

김기철  조선일보 문화부장 kichul@chosun.com 

▲ 휘트니미술관은 2015년 5월 1일 맨해튼 첼시 지역으로 옮겨 재개관했다. 미술관에 설치된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Urs Fischer·44)의 작품 ‘스탠딩 줄리안’. 친구인 작가 줄리안 슈나벨의 모습을 담았다. 휘트니미술관은 유리창 밖으로 맨해튼 도심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photo 김기철
지난 2월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MoMA)이 자리 잡은 뉴욕 맨해튼 53번가 주변엔 프랜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1879~1953)전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꼈다. 지난해 11월부터 열리고 있는 프랑스 작가 피카비아의 대규모 회고전을 알리는 홍보물이다.
   
   
   현대미술관, 프랜시스 피카비아의 발견
   
   피카비아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마르셀 뒤샹(1887~1968)과 동시대 작가로 시인, 편집자, 그래픽디자이너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대중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그런데 이 생소한 작가를 위해 MoMA는 6층 특별전시실 전체를 비웠다. 회화 125점을 비롯, 드로잉, 설치작품에 영화까지 200점 넘는 작품으로 채웠다. 미국에서 이런 대규모의 피카비아 회고전은 처음이라고 한다.
   
   피카비아의 삶은 변화무쌍하다. 이 전시를 소개한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이 ‘프랜시스 피카비아, 모더니즘의 플레이보이 말썽꾸러기’이니 알 만하다. 스페인계 쿠바 출신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아래 태어난 피카비아는 어린 시절부터 문제아였다. 10대 때 집안에 있던 미술품을 모사해 벽에 걸어두고, 진품을 팔아 우표수집에 필요한 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얼마나 정교하게 베꼈든지 식구들이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피카비아는 또 유복한 집안형편 덕분에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작품을 팔기 위해 신경 쓸 필요 없이 새로운 변화와 실험을 추구했다고 한다. 자동차와 요트 수집광인 데다, 도박과 여자에 빠져 지낼 정도였으니 20세기 전반 가난한 예술가들과는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피카비아전이 열린 MoMA 6층 전시실은 인상파 풍경화로 시작한다. 빛과 색채가 풍성한 ‘노트르담 성당’(1906) 같은 그림이 걸렸다. 하지만 그는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직접 야외에서 스케치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대신, 우편엽서 속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평론가와 관람객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인상파 풍경화에 이어 걸린 ‘봄(The Spring)’은 1912년 친구와 영국 여행을 다녀온 후 그렸는데, 파리에 추상화 시대를 알린 작품으로 꼽힌다. 이어 마르셀 뒤샹과 함께 다다이즘의 기수가 되는가 하면, 이내 결별을 선언하고 초현실주의에 뛰어든다. 남녀 플라멩코 무용수를 그린 ‘스페인의 밤’(1922)과 ‘동물조련사’(1923) 같은 작품이 나왔다. 2차 대전 때 그린 여성의 누드화를 비롯, 피카비아가 생애에 걸쳐 당대 여러 양식을 흡수하며 남긴 작품들을 보다 보면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변화의 폭이 크다. 보는 이들이 어리둥절할 정도의 변신에 대해 피카비아는 1922년 일찍이 자신을 변호라도 하듯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의 머리는 둥글기 때문에 생각도 어떤 방향으로든 바꿀 수 있다.(Our heads are round, so our thoughts can change direction.)” 이번 피카비아 회고전의 부제(副題)이기도 하다.
   
   현란한 피카비아의 변신 탓에 어지러운 머릿속은 MoMA의 대표작들을 만나면서 가라앉는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과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1907),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1911),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여인’(1897) 같은 익숙한 작품들이다. 피카비아 회고전은 3월 19일까지.
   
   
▲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된 프랜시스 피카비아의 1930년작 ‘Aello’, 169×169㎝. 개인소장. 피카비아는 인상파에서 출발해 입체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화풍을 두루 거친 문제적 작가였다. 2016 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하이라인파크’와 함께 즐기는 휘트니미술관
   
   미국 현대미술 컬렉션으로 이름난 휘트니미술관(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은 2015년 5월 1일 맨해튼 첼시 지역으로 옮겨 재개관했다. 조각가이자 자선가였던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가 1930년 세운 휘트니미술관은 1966년 매디슨가 75번지에 옮겼다가, 50년 만에 다시 첼시에 새 둥지를 찾았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를 만든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렌조 피아노(80)가 설계한 휘트니미술관은 2014년 9월 완공된 ‘하이라인파크’와 함께 뉴욕 여행 때 꼭 찾아야 할 곳이 됐다.
   
   지하철 A·C·E 노선을 타고 14번가와 8번 대로가 교차하는 곳에 내리면 도보 15분 거리. 옛 고가철로를 개조해 만든 2.9㎞ 산책로의 남쪽 끝에 자리 잡았다. 하이라인을 따라 남쪽으로 걸으며 길 양쪽 도심 빌딩과 허드슨강 풍경을 즐기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미술관이다. 9층짜리 미술관은 실내 전시면적만 4600㎡(약 1390평)에 이른다. 공장 지대였던 주변 경관과 어울려 튀지 않는 디자인이다.
   
   휘트니미술관은 6층부터 8층까지 야외 테라스를 개방하고 있다. 또 미술관 안쪽에서 도심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대형 유리창을 설치했다. 창으로 내다본 맨해튼 도시 풍경이 일품이다. 8층에서 열리는 ‘Fast Forward: Painting from the 1980s’(5월 14일까지)는 휘트니미술관 소장품 중에서 1980년대 회화만 모은 특별전. 사진과 비디오, 설치작품의 공세 속에서도 꿋꿋이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작가들의 고민이 담긴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예술의 의미를 천착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에이즈와 페미니즘, 전쟁 같은 정치적 주제를 다룬 것도 함께 모았다. 옛 그림을 패러디한 흑인 화가 로버트 콜스콧(1925~2009)의 ‘The Three Graces: Art, Sex and Death’(1981)는 풍자적이다.
   
   6층과 7층에서 열린 ‘Human Interest’(4월 2일까지)는 사진과 그림 등 휘트니미술관 소장품 200여점을 내걸었다.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인물을 다루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준다. 노란색 바탕에 낙서처럼 끄적이거나 서툰 솜씨의 얼굴이 담긴 장 미셸 바스키야(1960~1988)의 낙서화 ‘할리우드 아프리칸’(1983)에 시선이 멈춘다. 랩 뮤지션과 화가인 친구 둘과 LA를 여행한 바스키야는 자화상과 두 친구의 얼굴을 그려놓고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비판하고 있다. 스물여덟에 요절한 바스키야는 인종주의를 고발한 팝아트 계열의 화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지하철과 거리를 떠돌며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로 꼽힌다.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앤디 워홀(1928~1987)의 ‘에델 스컬의 36회(Ethel Scull 36times)’(1963)도 발길을 붙잡는다. 미술품 수집가였던 에델 스컬의 다양한 얼굴 표정을 담은 워홀의 팝아트 초기 작품. 워홀이 스컬을 타임스퀘어로 데리고 가 즉석 사진기에서 선글라스를 끼거나 벗은 채 표정을 짓게 한 후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작업했다고 한다.
   
   휘트니미술관에는 뉴욕의 레스토랑 업계 거물인 대니 마이어가 낸 레스토랑 ‘Untitled’와 ‘스튜디오 카페’가 각각 1층과 8층에 들어와 있다. 국내에도 상륙한 ‘셰이크’ 버거와 ‘매디슨 일레븐’ ‘그래머시 태번’ 같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거느린 대니 마이어 계열 식당인 만큼 미식(美食) 여행까지 겸할 수 있다.
   
   
▲ 미술관 설립에 기여한 컬렉터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Visionaries: Creating a Modern Guggenheim’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구겐하임미술관 내부.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구겐하임미술관을 만든 6명의 컬렉터전
   
   맨해튼 89번가에 자리 잡은 구겐하임미술관은 우윳빛 달팽이 모양 외관으로 익숙하다. 2월 10일부터 미술관 컬렉션 형성에 크게 기여한 컬렉터 6명의 소장품전을 열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까지 올라간 후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벽에 전시된 작품을 구경했다. 알렉산더 칼더, 마르셀 뒤샹, 파울 클레, 피에트 몬드리안,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크 샤갈,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20세기 현대미술을 빛낸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대표작이 경사로 왼쪽 벽에 걸렸다. 경사로를 따라 빙글빙글 걸어 내려오는 동안, 현대미술이 이룩한 100년간의 성취를 2시간 만에 속보로 경험하는 듯했다. 1937년 구겐하임재단이 탄생하고, 1959년 현 미술관 건물을 개관하면서 근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떠오른 구겐하임미술관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았다.
   
   구겐하임미술관이 이번 전시 대표작으로 내세운 ‘Several Circles’(1927)를 비롯, 칸딘스키 회화만 예닐곱 점 모은 독립 전시실도 눈길을 끌었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화가였던 힐라 리베이는 1929년부터 솔로몬 구겐하임을 설득, 칸딘스키와 샤갈 작품을 사들이게 했다. 1939년 구겐하임미술관 전신(前身)인 비구상미술관(The 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 관장을 맡은 데 이어, 1952년 이름을 바꾼 구겐하임미술관 관장까지 지냈다.
   
   ‘움직이는 미술’을 뜻하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선구자인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도 여럿 보였다. 유카 나무를 형상화한 ‘유카’(1941)와 사람 형상을 닮은 ‘무제’(1942) 등 칼더의 모빌이 회화 위주의 전시장에서 도드라졌다. 1910년 러시아에서 파리로 옮긴 직후의 마르크 샤갈이 그린 ‘술 마시는 병사’(1911~1912), ‘창문을 통해 본 파리’(1913), ‘하늘을 나는 마차’(1913)에서도 한참 발길이 머물렀다. 마네와 모네, 르누아르, 고흐와 세잔, 고갱, 그리고 30점 가까운 피카소 회화와 드로잉 등 독일계 화상 저스틴 탄하우저 컬렉션은 구겐하임을 찾을 때마다 반겨주는 낯익은 친구 같다.
   
   미술관 곳곳에는 단체 견학을 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여러 팀 눈에 띄었다. 몬드리안 그림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지도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질문을 던지거나 스케치하는 장면이 부러웠다. 어릴 때부터 수시로 오리지널 명화를 보고 자란 이곳 아이들과 복사품만 본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이 창의력 경쟁에서 어떤 결과를 빚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구겐하임미술관을 만든 창립자인 솔로몬 구겐하임을 비롯, 화상(畵商) 저스틴 탄하우저와 칼 니렌도르프, 페기 구겐하임, 캐서린 드라이어, 힐라 리베이 6명의 컬렉터들은 미술 애호가이면서 인류애를 실천한 휴머니스트였다. 전시 후반부 내걸린 솔로몬 구겐하임의 선언이 눈에 박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I wished others to share my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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