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건 맛 때문일까 냄새 때문일까. 당연히 냄새가 먼저 아닐까. 어떤 특별한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이 바로 떠오르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냄새는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과거의 기억을 건져 올린다. 냄새를 담당하는 후각은 시상(視床)이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 대뇌로 전달되는 다른 감각과 달리 바로 뇌로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비단 음식 냄새뿐만 아니라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는 숱하게 많다. 시골길 걷다 우연히 맡은 군불 내음, 초봄 가랑비 맞은 숲속의 마른 이파리 향, 낯선 여행지에서 새벽녘 조깅하다 들이마신 도심의 퀴퀴한 고린내, 오래된 책과 종이와 사람 냄새가 뒤섞인 도서관의 묘한 냄새, 비행기에서 막 내렸을 때 훅 불어오는 활주로의 바람 내음 등 끝도 없다. 그 냄새들은 막연한 감정이 아닌 어떤 정확한 한 장면의 기억을 되살려내기 일쑤이다.

냄새 중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한 추억을 선사하는 건 단연 홍어 요리, 그중에서도 홍어앳국이다. 고향이 전라남도 광주인지라 어려서부터 홍어와 함께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남매를 키우던 엄마는 오후 네다섯 시가 되면 시장을 가곤 했는데 막내인 나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나 또한 엄마 따라 시장 가는 걸 좋아해서 대학을 다니러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시장 따라가는 건 주로 내 몫이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건너편 골목길로 접어들면 대인시장 골목이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인시장은 특히 볼거리가 많았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펄펄 살아 있는 생선들이 있는 어물 가게였는데, 홍어만은 때론 웃는 얼굴로 때론 점잖은 표정으로 매달려 있거나 좌판에 누워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생선들을 들여다보느라 엄마를 놓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누문동으로 이사한 후로는 홍어 유통의 중심지인 양동시장으로 엄마 따라 장 보러 가곤 했다.

어쩌다 엄마가 커다란 홍어를 한 마리 사는 날이면, 집안에 큰 잔치나 귀한 손님맞이를 앞두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는 홍어를 사오자마자 배를 갈라 애(간)를 꺼냈다. 와, 홍어애는 내장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홍어의 넓적한 한 면을 완전히 덮고 있을 정도로 컸다. 그 크기에 얼마나 놀랐던지. 엄마는 막 끄집어낸 홍어애를 조금 잘라 기름 소금에 살짝 찍어 먹고, 앞에 앉아 구경하던 나에게도 먹여주었다. 아, 그 뭐라 말할 수 없는, 약간은 비위가 상하는 맛에, 흐물거리며 혀에 닿던 첫 촉감이란. 하지만 먹을수록 고소한 맛을 알게 되면서 중독되어가던 홍어애. 그런 홍어애를 국으로 끓이면 완전 맛이 달라졌다. 날것의 싱그럽고 고소한 맛은 풍미 깊은 진한 맛으로 변했다. 싱거운 걸 좋아했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의 홍어앳국은 맵지도 짜지도 않았다. 보리순을 넣어 끓인 적도 있지만 대체로 시래기나 묵은 김치, 또는 그때그때의 계절 채소를 넣어 된장국으로 끓여주었는데, 그 맛은 여느 된장국과는 완연히 달랐다. 홍어애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독특한 국물 맛을 냈다. 그 맛은, 어린 시절의 서글픔, 쓸쓸함, 외로움 뭐 그런 감정들을 어루만지고 다독여준 맛이라고나 할까.

애와 내장을 뺀 홍어는 항아리 속에 볏짚을 깔고 그 위에 넣고 삭혔는데, 어렸을 적에는 홍어는 바로 먹는 생선이 아니라 으레 그렇게 삭혀 먹는 생선인 줄로만 알았다. 적당히 삭힌 홍어를 신문지를 여러 장 깔고 그 위에 턱 올려놓은 후, 엄마는 무슨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르듯 사뭇 단호한 표정으로 결 따라 썰 곳을 미리 가늠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신중해 보일 수가 없었다. 결 따라 토막을 낸 다음에는 미끈한 껍질을 칼로 살짝살짝 벗긴 후, 설탕 부대의 누렇고 거친 종이로 잡아당기면 죽죽 잘도 벗겨졌다. 토막 낸 홍어는 걀쭉걀쭉 썰어 회 몇 접시, 회무침 몇 접시, 몇 토막은 살짝 건조시켜 고명을 올린 찜으로 몇 접시, 그렇게 잔칫상에 올리곤 했다. 남은 부스러기로는 또 국을 끓였는데 이번엔 삭힌 홍어뼈 등속들이 들어간지라 그 맛은 홍어앳국보다 훨씬 알싸하고 강력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돼지를 울음소리만 빼고 다 먹어치운다고 하는데, 전라도 사람은 예부터 홍어를 코와 날개지느러미, 뼈, 애를 비롯한 내장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빠짐없이 다 먹는다.

무등산을 떠올리면 어렸을 적부터 함께 등산을 다녔던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지듯, 홍어만 떠올리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커진다. 나에게 무등산과 홍어는 고향의 모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마음이 심란해질 때면 새벽행 기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가 무등산을 오른다. 서석대에서 동화사 터 한적한 오솔길로 내려가다 사람주나무를 껴안고 있노라면 “네가 왔구나!” 하는 카랑카랑한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듯 엄마 생각이 사무칠 때면, 꼭두새벽 차를 몰고 영산포로 내려가 온갖 홍어 요리와 홍어앳국을 잔뜩 먹고 올라온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영산포에 가까운 나주 남평에 살았던지라 엄마를 찾아뵐 때마다 들렀던 영산포에 있는 홍어집은 단골이 된 지 오래다. 홍어와 막걸리를 제공한다는 홍보 문구를 보고 주저 없이 영산강 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다. 톡 쏘는 독특한 맛의 홍어, 그중에서도 홍어앳국은 고향 광주와 그곳의 어린 시절과 지금은 흩어져 사는 언니 오빠들에 대한 추억까지 솔솔 불러일으킨다. 엄마가 또 애타게 보고 싶다. 홍어앳국을 먹으러 가야겠다. 그리움이 달래지기는커녕 더 커지는 건 아닐까.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