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52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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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을 찾아 떠나는 고전 여행] 침묵

신(神) 은 왜 침묵만 할까?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 (좌) 엔도 슈사쿠. (우) ‘침묵’ 초판 표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새삼 종교를 돌아본다. 어떤 종교든 인간을 고통이나 죄악에서 건져내는 일, 즉 구원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불의와 부조리가 판을 쳐도 전지전능한 신은 침묵만 한다. 심지어는 오로지 자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죽임을 당해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신(神)은 있기나 한 것일까.
   
   이처럼 순교라는 극단적 순간에도 침묵만 하는 신을 묵상하며,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간절하게 탐색한 고전적 종교소설이 있다. 바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1923~1996)의 ‘침묵’(沈默·1966)이다.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옮겨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올봄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사일런스’가 극장에 걸리기도 했다.
   
   엔도는 이혼한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여 열두 살 때 형과 함께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깊은 종교적 고뇌를 담고 있다. 그는 기독교 신자가 희귀한 일본이 낳은 뛰어난 종교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침묵’은 도쿠가와 막부 초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막부 성립(1603) 무렵 가톨릭은 상당히 활발했다. 한때는 신도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르고 일부 지배층까지 세례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왜장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신부를 대동하고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막부는 사회적 이완을 염려하여 강경한 탄압책을 쓰기 시작했다. 잔인한 고문이 자행되고 수많은 신도가 배교 또는 순교했다.
   
   이때 로마 교황청에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든다.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에 파견한 페레이라 신부가 나가사키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배교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체류한 지 무려 33년이나 된다. 한마디로 일본 가톨릭 신앙의 상징이다. 그의 제자 출신 신부 로드리고·가르페·마르타는 스승의 비보에 충격을 받고 일본행을 결의한다.
   
   그들은 포르투갈령(領) 마카오에 와서 배와 선원을 구한다. 그리고 ‘기치지로’라는 일본 남성을 소개받는다. 그는 술주정뱅이다. 별로 신뢰가 가지 않지만 불가피하게 그를 안내자로 삼는다. 발병한 마르타 신부는 마카오에 남고 로드리고·가르페 두 신부만 일본으로 밀항한다. 선원들은 두 신부와 기치지로를 캄캄한 규슈 해안에 내려놓는다.
   
   사실 기치지로는 신자 전력의 배교자이다. 신부들은 그의 안내로 비밀리에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을 찾는다. 그들은 마을 뒷산 움막에 숨어 마을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이끌며 조심스럽게 다른 마을로도 활동반경을 넓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로 관헌들이 들이닥쳐 기치지로와 신도 두 명을 잡아간다. 기치지로만 석방되고 신도들은 끝내 순교한다.
   
   두 신부는 만약을 위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난다. 로드리고는 길을 가다 기치지로를 만난다. 기치지로가 드나든 마을은 여지없이 관헌의 습격을 받는다. 그는 신도 행세를 하다 붙들리면 배교와 밀고를 되풀이하는 ‘나약한’ 인물이다. 로드리고도 결국 그의 밀고로 붙잡혀 나가사키로 압송된다. 그럼에도 기치지로는 로드리고의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당시 나가사키의 행정책임자는 이노우에(井上)이다. 그는 한때 세례까지 받았지만 이제는 가톨릭 탄압의 최선봉에 서 있다.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를 이끌어낸 것도 바로 그다. 그럼에도 로드리고의 구금생활은 의외로 평온하다. 같이 갇힌 신자들과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허용된다. 제법 평온한 일상이 이어진다.
   
   어느 날 로드리고는 해변가로 끌려 간다. 거기서 놀랍게도 가르페의 순교 장면을 목격한다. 가르페는 그가 배교하면 신도들을 살려주겠다는 회유를 뿌리치고 신도들과 함께 순교를 택한다. 또한 그는 어느 사찰로 끌려가 ‘배교자’ 페레이라와도 만난다. 스승과 제자는 20년 만에 불편한 재회를 한다. 이 모든 것은 이노우에의 치밀한 공작이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 로드리고는 번민의 밤을 보낸다. 어디선가 태평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술 취한 포졸이 곯아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갑자기 감옥의 문이 열린다. 밖에는 페레이라가 와 있다. 알고 보니, 코 고는 소리로 들린 것은 신도들이 ‘구멍매달기’라는 가혹한 고문을 당하면서 코와 입으로 토하는 신음소리이다.
   
   구멍매달기(穴吊り)란, 좁고 깊은 구덩이를 파고 사람을 꽁꽁 묶어 그 속으로 거꾸로 매다는 고문이다. 이때 실신을 막고 고통을 연장하기 위해 관자놀이에 혈(穴)을 뚫어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게 한다. 페레이라도 이 고문을 받다가 배교를 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 이 고문을 받고 있는 신자들은 모두 성화(聖畵)를 밟고 배교를 맹세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로드리고 ‘신부’가 배교를 하면 살려주고 그러지 않으면 저 상태로 놔두겠다는 것이다. 페레이라와 관헌들이 그의 발밑에 때 묻은 성화를 들이댄다. 자신이 성화를 밟아 저들을 살릴 것인가, 끝내 신앙을 지켜 저들을 죽일 것인가.
   
   이때 성화 속의 그분이 말한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순간 그는 발판에 새겨진 성화를 밟고 만다. 유폐된 그에게 ‘배교자’ 기치지로가 찾아와 고해성사를 간청한다. 이미 ‘배교자’ 로드리고가 되었음에도 그는 그의 청을 들어주며 중얼거린다. “나는 그들(교회조직)을 배반했을지 몰라도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일체의 형식을 벗어나 오로지 ‘그분’과의 직접적인 교감뿐이다. 작가 자신도 ‘후기’에서 지적하듯이, 그의 신앙은 이렇듯 다분히 프로테스탄트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는 자신이 ‘신의 말씀과 행위를 따르려고 하는 한 그분이 결코 침묵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고백하며 더 이상 신의 침묵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처럼 ‘침묵’은 고난의 순간에 신을 등지기보다 오히려 그에게 더 다가서려는 인간의 간절한 내면을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거의 30년 동안 ‘사일런스’를 준비했다는 스콜세지 감독의 비평이 역시 압권이다. “믿음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믿음을 풍성하게 한다. 의심에서 촉발된 외로움을 통해 영적 교감을 얻는, 그 고통스러운 역설의 길을 잘 보여주고 있다.”
   
   로드리고도 그냥 모국에 있었더라면 훌륭한 사제로 평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국(異國)의 혹독한 감시 속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가 어떻게 신앙을 지켜나갈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감하게 순교를 택한 사람들보다 로드리고나 기치지로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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