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1년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털게. 대게보다 껍데기가 얇고 속살이 꽉 차 있어 봄에 꼭 한번 먹어 봐야 할 별미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꼬박 1년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털게. 대게보다 껍데기가 얇고 속살이 꽉 차 있어 봄에 꼭 한번 먹어 봐야 할 별미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꽃이 피고 눈이 호강한다. 바라보는 곳곳마다 흐드러진 꽃 대궐, 바야흐로 봄이다. 아름다운 꽃구경에 일분일초가 아까운 짧은 봄에 입이라고 호강하지 아니할 수 없다. 식도락가들에게 봄의 전령은 꽃보다 제철 봄나물과 해산물이 더 반갑다. 남도는 맛있는 봄을 입안 가득히 전해주는 해산물이 제철이다. 입이 호강했다면 근처 산에 올라 흐드러진 철쭉과 드넓은 바다도 구경해 보자.

털게는 비린내가 없어 물만 넣고 쪄도 바다 향이 그대로 입안에 전해진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털게는 비린내가 없어 물만 넣고 쪄도 바다 향이 그대로 입안에 전해진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 남해 털게 & 응봉산~설흘산

남도의 봄은 가장 일찍 찾아온다. 겨우내 웅크렸던 봉우리에서 예쁜 꽃이 피어나듯 남해바다에서 나는 생선과 어패류는 살이 통통하고 기름지게 오른다. 그중에서도 귀하지만 꼭 한번 먹어봐야 할 것이 털게다. 흔히 이즈음 게 하면 영덕 대게나 울진 대게만을 제철로 쳐주지만 식도락 좀 즐겨 봤다 하는 이들은 남해안 털게를 최고로 친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사는 털게는 1월부터 5월 초 정도까지 알과 살이 꽉 찬다.

몸에 털이 나 있어 털게라고 부르는데 남해에서 흔히 먹는 털게는 사실 ‘왕밤송이게’다. 동해에서 잡히는 것이 제대로 된 털게다. 엄밀히 따지면 종류가 다르지만 껍데기에 난 털이 비슷해 모두 털게라고 부른다. 차가운 동해바다의 털게는 살이 달고 은어처럼 수박 향이 난다고 한다. 이에 비해 남해안 털게는 단맛은 조금 덜하지만 보다 담백하다.

털게는 1월부터 4월 하순까지 여수~남해~통영~거제 해역에서 잡힌다. 통발과 저인망으로 잡는 털게는 양식이 되지 않으며 잡히는 양이 들쭉날쭉하고 해마다 줄어 가격은 꽤 비싼 편이다. 보통 어시장에서 1㎏(보통 크기 4~5마리)에 5만~6만원 정도인데 시세는 수시로 바뀐다.

털게는 주로 찜으로 먹는다. 대게를 쪄내는 식당은 많지만 털게만을 내는 식당은 남해안 현지에서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남해군 내에 금호식당(055-867-0207), 촌놈횟집(055-867-4977), 진주횟집(055-862-3535)과 같은 털게찜을 내는 식당이 몇몇 있다. 통영이나 남해의 횟집에 가서 보면 메뉴에는 없지만 어시장에서 털게를 가져와 쪄주기도 한다. 식당에서 먹으면 조금 비싸서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것 1마리에 3만원 정도를 받는다.

털게는 비린내가 나지 않아 물만 넣어 김이 오른 찜통에 털게의 배가 위로 향하도록 놓고 20분간 찌기만 하면 된다. 찐 털게의 배를 가르면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확실히 대게나 홍게보다 살이 알차다. 껍데기가 얇아 다리는 통째로 입에 넣고 씹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몸통의 짭짤한 내장을 쪽쪽 빨아먹은 후에는 등껍데기에 밥을 얹어 비벼먹으면 된다.

털게를 먹으려 통영·남해군으로 갔다면 가천 다랭이마을의 뒷산인 응봉산(472m)~설흘산(482m) 종주산행을 해보자. 이 코스는 남해안 최고의 조망을 만끽하며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알짜배기 당일 산행 코스다.

특히 선구마을에서 응봉산으로 향하는 도중의 칼날능선은 ‘설흘산 공룡능선’으로 불릴 정도로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산행은 대개 선구마을에서 출발해 응봉산~설흘산을 잇고 가천마을로 하산한다. 약 6㎞에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교통

통영중앙시장은 승용차로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나들목으로 나와 ‘통영·한려해상국립공원’ 방면으로 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통영종합버스터미널까지 하루 22회(첫차 06:20, 막차 24:30)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요금 일반 2만1800원, 우등 3만2400원. 통영중앙시장에서 응봉산~설흘산 산행 입구인 선구마을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10분 정도 걸린다. 서울에서 곧장 선구마을로 가려면 남부터미널(하루 11회 운행)이나 동서울터미널(하루 2회 운행)에서 남해시외버스터미널로 가 가천행 버스를 탄다.

남해바다에서 잡은 봄멸을 포를 떠 초고추장에 무쳐내면 봄 바다 향이 가득한 멸치회가 완성된다. photo 조선일보
남해바다에서 잡은 봄멸을 포를 떠 초고추장에 무쳐내면 봄 바다 향이 가득한 멸치회가 완성된다. photo 조선일보

■ 부산·남해 봄멸 & 망운산

‘생선을 생선이라 부르지 못하는’ 멸치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으쓱댈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봄이다. 난류성 어종인 멸치는 3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 산란을 위해 근해로 몰려오는데 이 시기의 ‘봄멸’은 살에 기름기가 가득 올라 고소하고 찰진 맛이 일품이다.

이 무렵 부산 기장 연안을 비롯한 남해안 바다에서는 크기가 10~15㎝에 달하는 ‘대멸’을 맛볼 수 있다. 부산 기장 지역에서는 고깃배들이 멸치떼를 따라다니면서 그물을 내려 조류에 맞춰 흘려보내는 ‘유자망(流刺網)’으로 잡는다.

그물로 잡은 멸치는 항구에서 멸치털이(탈망작업)를 하는데 어부들이 일렬로 늘어서 “어야디야~ 하나둘~” 후리 소리에 맞춰 그물을 털면 은빛 멸치가 공중에서 춤을 춘다. 4월 21일부터 23일까지 대변항에서는 기장멸치축제가 열려 이 멸치털기 체험을 직접 해볼 수 있다.

부산 지역이 유자망 방식을 이용한다면 남해 미조항 지역에서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생선을 가두는 ‘죽방렴(竹防廉)’ 방식으로 멸치를 잡는다. 그물로 잡은 멸치는 금세 죽고 터는 과정에서 몸이 상하지만 죽방렴은 갇힌 멸치를 뜰채로 건져내기만 하면 돼 자연 그대로의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다. 게다가 죽방멸치는 거센 물살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육질이 탄탄하고 쫄깃해 멸치 중 최고급으로 꼽는다.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북항 일원에서는 5월 3~5일에 ‘보물섬 미조항 멸치 & 바다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봄멸치는 멸치쌈밥, 멸치회, 멸치구이 등으로 먹는다. 멸치쌈밥은 통통한 봄멸에 묵은지와 고추장을 넣어 끓인 멸치찌개를 곁들여 쌈을 싸먹는다. 멸치회는 큼지막한 멸치를 포 뜬 후 상추, 미나리 등을 넣고 고추장과 막걸리식초로 팍팍 버무려 소주와 막걸리를 절로 부른다.

평소 때라면 상상할 수 없는 멸치구이도 별미다. 통통한 멸치를 석쇠에 올리고 굵은소금을 뿌려 노릇하게 굽는 멸치구이는 가을 전어구이만큼이나 고소하고 담백하다.

부산 기장 대변항이나 남해 창선대교 근처로 가면 멸치 요리를 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부산 대변항에서는 장군멸치회촌(051-721-2148), 할매횟집(051-721-2483) 등이 있으며, 남해에는 배가네멸치쌈밥(055-867-7337), 바래길멸치쌈밥(055-867-9800), 우리식당(055-867-0074) 등이 유명하다.

미조항에서 승용차로 약 1시간 거리에는 남해군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망운산(785m)이 있다. 망운산은 특히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주능선을 따라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철쭉이 만발해 인기가 좋다. 오름길에 내려다보는 남해바다의 파노라마 조망은 덤이다. 망운산 산행은 고현면의 화방사나 남해읍의 아산저수지, 남해여중을 기점으로 한다. 어느 코스로 오르든지 10㎞ 내외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교통

남해 미조항까지 승용차로는 남해고속도로 사천나들목으로 나와 ‘사천·사천공항’ 방면 3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남부터미널(하루 11회, 2만3700원)이나 동서울터미널(하루 2회, 2만3700원)에서 남해시외버스터미널까지 온 후 ‘남해·미조’ 방면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미조항에서 화방사까지는 승용차로 19번국도를 달려 1시간 정도 걸린다.

장흥의 특산물 ‘삼총사’인 키조개와 한우,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장흥삼합’. ⓒphoto 손수원
장흥의 특산물 ‘삼총사’인 키조개와 한우,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장흥삼합’. ⓒphoto 손수원

■ 전남 장흥 키조개 & 억불산

“이놈 자식, 또 이불에 오줌을 쌌네! 어서 가서 소금 얻어 오니라.”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간밤의 실수’로 졸지에 오줌싸개가 되어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녔던 기억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오줌싸개의 머리에 얹어졌던 키를 닮은 조개가 바로 키조개다. 키조개는 크기가 20~30㎝ 정도로 전복, 백합과 함께 3대 고급 패류로 손꼽힌다.

4~5월이 제철인 키조개는 충남 보령 오천항 부근에서 가장 많이 잡히지만 남해안의 득량만, 여자만에서도 많이 잡힌다. 우리가 흔히 삼합 하면 홍어와 돼지수육, 묵은지의 조합을 떠올리지만 전남 장흥에서는 한우와 키조개, 표고버섯이 ‘삼총사’다

장흥군은 2005년 전통시장을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으로 탈바꿈시키면서 한우식당골목을 조성했고 이때 장흥의 대표 먹거리인 한우, 키조개, 표고버섯을 모아 장흥삼합이란 요리로 개발해 홍보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홍어삼합과는 태생이 조금 다르지만 지금은 ‘삼합계’의 대표로 인정받고 있다.

장흥의 키조개는 득량만에서 잡은 것들이다. 장흥에서 보성~고흥으로 이어지는 득량만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청정해역이다. 바다의 숲 역할을 하는 ‘잘피’가 바닷속과 갯벌의 오염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득량만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키조개 양식에 성공한 바 있다.

키조개는 가리비와 함께 관자를 먹는 조개다. 키조개에서 가장 맛이 뛰어난 부위인 관자는 일본에서는 ‘가이바시(かいばし)’란 이름의 고급 재료로 회나 구이, 볶음의 재료로 인기가 매우 좋다.

장흥삼합에는 키조개의 관자를 사용한다. 이때 관자의 모양대로 둥글게 썰어야 질기지 않다. 한우만 구워 먹어도 육즙이 훌륭한데 여기에 키조개 관자까지 더해지니 그 맛이 환상적이다. 식도락가들은 삼합 재료를 굽는 데도 순서가 있다 말한다. 먼저 한우를 굽고 난 후 키조개와 표고는 살짝만 구워 쌈에 얹는다. 이렇게 순서대로 구워야 한우의 고소함에 키조개의 달콤함, 표고버섯의 향 모두를 잡을 수 있다.

식당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장흥토요시장의 정육점에서 원하는 한우 부위를 사서 식당으로 가면 2인 기본 7000원(3인부터 1인당 3000원씩 추가)의 상차림 비용을 받고 반찬과 불판을 내어준다. 키조개는 150g에 1만원, 표고버섯은 130g에 3000원 정도다.

키조개 관자는 구이로 먹어도 좋지만 레몬즙과 후추, 올리브유를 조금씩 넣고 버무리면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관자 초회로 먹을 수 있다. 관자에 버터를 발라 구워 먹어도 별미다. 장흥군 안양면 수문항에서는 5월 3~7일까지 ‘정남진 장흥키조개축제’가 열린다.

수문항에서 가까운 곳에 억불산(517m)이 있다. 억불산은 주변에 정남진 편백숲우드랜드와 정남진 천문과학관, 100년 이상 된 배롱나무 군락지인 송백정(松百井), 고영완 가옥, 귀족호도박물관, 1000년 전통차 청태전(靑苔錢) 평화다원 등 볼거리가 많아 산행을 하면서 둘러볼 수 있다. 정상 부근엔 철쭉도 지천으로 핀다.

우드랜드에서 출발하면 3.8㎞의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말레길’을 따라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우목제 주차장이나 평화리 고영완 가옥이 있는 평화리 들머리도 인기가 좋다. 정상에 서면 장흥읍내와 주변 산들이 훤히 보인다. 어느 코스로 가든 7㎞ 내외의 거리다.

교통

승용차로는 남해고속도로 장흥나들목으로 나와 ‘보성·장흥’ 방면으로 가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장흥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하루 6회(08:00, 09:00, 10:30, 14:40, 15:30. 16:50) 운행한다. 요금 일반 2만3200원, 우등 2만6700원. 5시간 정도 걸린다. 장흥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예양교를 이용, 탐진강을 건너면 바로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이다. 시장에서 정남진 편백숲우드랜드까지는 3.7㎞ 정도 거리다.

키워드

#여행
손수원 월간산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