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큰 길가에 하얀 김이 펄펄 솟아나는 가게가 보인다. 이 집은 찐빵과 각종 고기만두를 만들고 있다. 나는 이 집 앞을 자동차로 지나며 항상 갈등을 겪는다. 잠깐 세우고 들어가서 찐빵을 좀 사야지. 하지만 그 집 앞은 주차가 금지되어 있는 대로변이다. 어느 날 나는 기어코 근처의 골목에 차를 세우고 그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한 팩의 찐빵을 사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나에게는 고기만두보다 찐빵이 단연코 우선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피란지에서 막 서울로 돌아왔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당시의 어린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예배당에 다니곤 하였다. 예배당에 가면 ‘구제품’을 나누어주었다. 전쟁으로 피폐한 한국인들의 삶을 돕자고 미국인들이 보내준 각종 물품이었다. 우리에게 잘 맞지도 않는 큰 사이즈의 헌옷, 담요, 신발을 그래도 좋다고 받아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내달리곤 하였다. 이 당시에 구제물품의 배급처는 교회와 동회(지금의 동사무소)였다.

운이 좋은 날은 우유가루도 배급을 받았다. 하얀 우유가루를 받아든 할머니들이 쌀가루인 양 물에 개어 시루떡 모양의 ‘우유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그래도 당시에는 배가 고프니 잘들 먹었다. 그리고 불쌍한 뱃속이 우유의 지방을 견디지 못하고 설사를 하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이 왜 빵보다 밥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미국인들은 자기들에게 친숙한 밀가루를 엄청나게 실어다주었다. 밀가루는 동회에서 배급을 받았던 것 같다. 집에서 밀가루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은? 찐빵, 만두, 칼국수, 수제비 등일 것이다. 칼국수에는 반죽 만들기와 고르게 썰 수 있는 솜씨가 필요하다. 만두는 소를 준비하는 것이 좀 번거롭다. 명절이 아니면 주부들이 한가하게 만두를 빚고 있을 여유가 없다. 찐빵은 팥으로 소를 만들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수제비는 당시에 우리 집에서 물릴 정도로 엄청 먹었다. 만들어 먹기가 간단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1914년에 태어나셨다. 여학교를 졸업하신 후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도 일본 유학을 하셨고 귀국하여 모 여대에서 교편을 잡으신 ‘신식여성’이셨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이 잘나가셨다. 아버지와 결혼하시기 전까지는. 지엄한 시어머니인 나의 할머니께서 “무릇 여자는 남편 뒤에서 남편이 빛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로 하여금 마음껏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그러나 사랑스러운 장애물은 바로 3남1녀의 자식들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돌보시기 위하여 7년간 휴직을 하시고 전업주부의 사명을 다하셨다.

부농이셨던 나의 외할아버지가 사주신 자그마한 한옥에서 우리 4남매는 자라났다. 어머니는 모든 가정 살림을 직접 맡아 하셨다. 우리가 하도 자주 먹어 질려버린 수제비를 보고 싫은 표정이라도 지으면 어머니는 가끔 찐빵을 만들어주셨다. 시루떡이 아니라 찐빵을 만드신 것은 아마도 어머니가 받으신 신식 교육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베이킹파우더가 없던 시절이라 막걸리로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셨다. 이렇게 만든 찐빵은 약간 노란색을 띠면서도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걸치고 앉으셔서 왼손으로는 반죽을 알맞은 크기로 떼어내시고 오른손으로는 미리 만들어놓은 팥소를 숟가락으로 퍼서 반죽에 눌러 담고 두 손으로 어루만져 둥근 모양을 만드셨다. 좀 넉넉하게 만드시기를 바라며 나는 옆에서 괜히 서성거렸다. 그 다음에는 커다란 솥에 물을 담고 하얀 천을 씌운 찜통받침을 넣은 후 팥소가 든 찐빵 반죽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뚜껑을 덮으면 된다. 이윽고 부엌에서 찐빵을 만드는 하얀 김이 마당으로 퍼져나오면 나는 침을 삼키며 기대에 부풀었다. 마침내 찐빵이 완성되어 그 뜨거운 한입을 베어 물면 매우 황홀한 기분에 잠기곤 하였다.

요즈음도 나는 슈퍼에 가면 호빵이 진열된 곳에서 머뭇거린다. 그 옛날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찐빵은 아니지만 그래도 둥그런 모양의 호빵을 보면 옛 추억을 못 이겨 한 봉지를 슬쩍 집어 담게 된다. 호만두보다 역시 호찐빵이다. 그러나 집에 와서 데워 먹으면 언제나 조금 실망을 하게 된다. 우리 어머니의 손맛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찐빵에 꽂혔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찐빵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첫째가 팥으로 만든 흔히 ‘앙꼬’라고 불렸던 단맛이 나는 팥소이다. 팥은 우리의 식생활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먹기에 부드러운 팥밥, 팥이 듬뿍 올라앉은 시루떡, 동짓날에 먹는 팥죽, 그리고 요즈음 인기짱인 팥빙수 등을 통하여 나의 입맛은 팥과는 매우 친화적이다. 빵집에서 요란한 최신 스타일의 빵도 맛을 보지만 나는 슬그머니 전통적인 단팥빵을 몇 개 집어넣곤 한다. 옛날에는 단팥빵, 크림빵, 곰보빵뿐이었다. 두 번째는 팥소를 둘러싼 잔뜩 부푼 밀가루이다. 워낙에 잔치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밀가루에 대한 친숙감이 크고, 거기에 찐빵을 부풀리기 위해 들어가 구수한 맛을 주는 막걸리의 역할이 더해진다. 찐빵의 색깔도 약간 노리끼리해져 더욱 정겹게 보이기도 한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를 휴직하고 육아에 전념하시면서 그래도 자식들에게 맛있는 찐빵을 해주려는 어머니의 정성, 즉 모성애이다. 어머니가 얼마나 다시 교편을 잡고 싶으셨을까 하는 것은 내가 성장하여 내 스스로가 교편을 잡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엄마가 언제 맛있는 찐빵을 해주나 하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으니.

신국조 울산과기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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