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덕씨가 한국 어린이들에게 쓴 345통의 엽서.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남덕씨가 한국 어린이들에게 쓴 345통의 엽서.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18일 국제우편으로 온 소포를 받았다. A4 크기의 박스 안에는 345통의 엽서와 한 통의 편지가 정갈하게 들어 있었다. 엽서는 네 뭉치로 나뉘어 1~345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었다. 한국 대표화가 이중섭(1916~1956)의 부인 이남덕(95·야마모토 마사코)씨가 일본에서 보낸 엽서였다. 이씨는 현재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둘째 아들인 이태성(67·야마모토 야스나리)씨와 함께 살고 있다. 엽서에는 한 장 한 장 번호와 이름이 쓰여 있었다.

36. 정해인씨

저한테도 해인씨와 같은 나이 손자가 있습니다. 글자가 너무 예뻐서 놀랐어요. 해인씨 그림과 한글을 보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편지 고맙습니다.

85. 김진오씨

아고리는 턱이 긴 특징이 있고 착한 웃음을 잊을 수가 없네요. 여러분의 따뜻한 편지들은 인생의 보물로 잘 가지고 있을 겁니다. 편지 고맙습니다.

151. 정가희씨

정말 아고리가 보내준 편지 같아서 기쁩니다. 특히 ‘가슴 가득한 기쁨으로 기다려줘요’라는 표현이 아고리 같네요. 63년 전에 편지를 기다렸던 시간이 생각났습니다. 편지 고맙습니다.

330. 정원준씨

원준씨 말대로 아고리는 많은 사랑을 남겨줬습니다. 그리고 그 추억들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아들들의 마음속에 살고 있습니다. 편지 고마워요.

341. 정윤수씨

아고리의 행복은 저와 두 아들들, 4명이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는데요. 저는 남겨준 아들들과 살 수 있었지만 아고리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편지 고맙습니다.

이씨가 보낸 엽서의 내용들이다. 짧은 글이지만 감사의 마음과 아고리에 대한 사랑이 행간에 넘친다. 아고리는 이씨가 남편 이중섭을 부를 때 쓰던 애칭이다. 이씨가 보낸 345통의 편지는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이씨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받은 편지의 번호대로 답을 쓴 것이다. 엽서마다 ‘山本方子(야마모토 마사코)’ ‘泰成(야스나리)’라고 친필 사인이 돼 있다. 이씨가 주간조선으로 답장을 보내게 된 사연은 이렇다.

주간조선은 2016년 5월 23일자(2408호)에 이남덕씨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도쿄 자택을 찾아 진행한 특별 인터뷰였다. 6월 말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생각하는 박물관’ 측에서 기사를 읽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생각하는 박물관은 어린이 문화예술교육 사설기관으로 전시 등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박물관 측은 ‘이남덕씨에게 보내는 편지쓰기를 하고 싶다.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으로 큰 의미가 있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어린이들이 쓴 편지를 이남덕씨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가’를 물어왔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주간조선 기사를 들려주고, 전시를 관람한 후 이남덕씨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들이 쓴 그림엽서 345통이 이남덕씨의 손에 도착했다. 10월 12일, 우연찮게도 이씨의 생일날이었다. 이씨에게는 최고의 생일선물이 됐다.

편지는 하나같이 이씨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엽서 한 면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의 대표작품 ‘황소’ ‘길 떠나는 가족’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전시장에서 본 이씨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이중섭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전거를 사가지고 가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끝내 못 지킨 것이 안타까웠던지 자전거를 그린 어린이도 있었다. 이씨의 손에 이중섭의 그림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들의 그림으로나마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 사연은 주간조선 2426호에 실렸다.

이남덕씨에게 어린이들이 편지를 보낸 사연을 실은 2016년 10월 3일자 주간조선 지면(2426호).
이남덕씨에게 어린이들이 편지를 보낸 사연을 실은 2016년 10월 3일자 주간조선 지면(2426호).

“천국에 가서 아고리에게 전해주겠습니다”

이씨는 주간조선에 이메일을 통해 “어린이들의 편지를 읽고 굉장히 감격해서 읽고 또 읽었다. 따뜻한 편지 덕분에 기운이 많이 났다. 힘을 내서 아고리 몫까지 잘 살겠다”고 말했다. 아들 태성씨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예술성과 인격을 높이 평가해준 것에 대해 놀랍다. 한국인들의 넓은 마음과 깊은 정에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왔다.

이씨의 답장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답장을 쓰는 와중에 이씨는 후두암을 앓던 첫째 아들 태현씨를 떠나보냈다. 지난해 12월 29일, 아들을 이중섭의 곁으로 보내고 이씨는 아팠다고 한다. 답장을 쓰는 작업도 한동안 손을 놓아야 했다. 최근 몸을 추스르고 다시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이씨는 “현재 회복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해왔다. 월요일이면 미용실에도 가고 화·수요일은 개호시설의 돌봄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편지 작업은 둘째인 태성씨와 함께 했다. 이씨가 편지를 한 장 한 장 읽고 감상을 전하면 태성씨가 받아적은 후 다시 한국어로 번역을 맡겼다. 번역은 태성씨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야마나카 리나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태성씨는 도쿄 시내에서 액자점을 하고 있다. 퇴근 후 저녁에 한두 시간씩 작업을 했다. 태성씨는 “가능한 내용이 안 겹치려고 노력했다. 편지를 보낸 아이들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썼다”고 전했다.

이씨가 보낸 엽서에는 이중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여전하다. ‘너무너무 그리웠다’ ‘아고리가 남겨준 사랑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계속 살고 있다’ ‘아고리가 사랑을 많이 남겨줘서 외롭지 않았다’는 말이 여러 번 쓰여 있다. 요즘에도 이중섭의 꿈을 자주 꾼다고 한다. 꿈속에서 이씨는 네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제주도 시절로 돌아간다고 한다. 꿈속 이중섭의 모습은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이씨는 이메일을 통해 “전쟁을 피해 겨우 작은 평화를 찾은 시간과 장소라서 제주도 생활이 꿈에 자주 나타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7년에 불과했다. 짧았지만 그 추억이 이씨로 하여금 60년을 견디게 했다. 1953년 이씨는 일본으로 건너간 후 이중섭이 보내준 편지의 힘으로 살았다. 이씨는 이제 아이들이 보내준 편지의 힘으로 남은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천국에 가서 아고리를 꼭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전해주겠습니다. 한국 아이들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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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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