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중구 순화동 빌딩숲 사이에 새로운 문화 아지트가 생겼다. 순화동 재개발로 들어선 덕수궁롯데캐슬 컬처센터에 문을 연 ‘순화동천(巡和洞天)’이다. 지명인 순화동과 노장사상에 나오는 이상향 ‘동천’을 결합한 문패다. 순화동천은 한길사가 처음으로 시도한 신개념 복합문화공간이다. 서점을 확장시켜 책 박물관, 갤러리, 인문학당이 한 공간에 들어갔다. 도심 속에 인문과 예술이 꽃피는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한길사의 꿈이 담겼다.

지난 4월 24일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한 순화동천은 전용면적 1155㎡(350평) 규모로 꽤 넓었다. 점심시간,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번잡한 길에서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건물 안은 딴 세상 같았다. 입구에서부터 60m의 복도를 따라 ‘책의 길’이 펼쳐졌다. 복도 한쪽은 서가로, 한쪽은 갤러리로 만들었다. 서가에는 한길사에서 출판한 3000종 3만여권의 책이 꽂혀 있다. 현재 유통되는 한길사의 책은 전부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복도를 따라 전시실, 강의실, 회의실 등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공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서점은 한 도시를 밝히는 별빛입니다. 세계의 서점을 돌면서 서점이 도시를 혁신시키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선진사회는 종이책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미술, 담론, 음악 모든 것은 책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책을 들고 인문적 대안을 논의할 수 있는 책 놀이터라고 보면 됩니다.”

공간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다는 김언호(72) 한길사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파주출판도시에도 책방, 갤러리 등 한길사의 공간이 있지만 거리가 멀어 독자와의 소통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책이 독자를 찾아온 겁니다. 좋은 책도 좋은 저자도 독자들이 만듭니다. 이곳은 독자가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일 겁니다. 이곳이 성공해서 다른 출판사들도 동네 곳곳에 만들면 좋겠습니다.”

영국의 책 예술가인 윌리엄 모리스, 프랑스의 전설적인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다목적 공간.
영국의 책 예술가인 윌리엄 모리스, 프랑스의 전설적인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다목적 공간.

출판계의 아이디어뱅크 김 대표는 의욕이 넘쳤다.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으로 이름을 붙인 방에서 인문학 강의, 작은 음악회 등 사람들을 불러모을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다. 현재 개관 기념으로 19세기 영국의 책 예술가인 윌리엄 모리스, 프랑스의 전설적인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4인의 작품전 ‘권력과 풍자’전이 열리고 있다. 수천만원짜리 삽화책, 19세기 장서 등 책의 역사를 보여주는 희귀본을 볼 수 있다. 서점 공간 한편에는 목판화가 김억의 ‘국토진경’전, 이화여대 최은경 교수의 책 조각전도 열리고 있다. 김 대표가 전 세계 16개 도시 책방 순례를 하면서 찍은 사진 ‘탐서여행’도 전시 중이다. 5월 25일부터는 ‘이이화의 한국사 특강’을 10주에 걸쳐서 진행한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직접 세계 서점을 돌며 찍은 ‘탐서여행’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직접 세계 서점을 돌며 찍은 ‘탐서여행’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김 대표가 신날수록 스태프들은 고민이 많다. 백은숙 한길사 주간은 “공간 운영비가 만만치 않은데 돈 안되는 일만 계획하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순화동은 41년 전 한길사가 출발한 곳이다. 비가 오면 책이 젖을 만큼 열악한 시절이었다. 순화동천 앞에 있는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신교육의 발상지이다. 처음 시작한 곳에서 ‘다시 책을!’이라고 외치는 김 대표의 실험이 또 시작됐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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