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 8경 중 제1경인 월류봉. 가파른 여섯 봉우리 아래로 초강천 물줄기가 휘감아 돌고 있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천 8경 중 제1경인 월류봉. 가파른 여섯 봉우리 아래로 초강천 물줄기가 휘감아 돌고 있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오는 봄날은 반가워도 가는 봄날은 슬프다. 1953년에 발표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처럼 말이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으로 시작하는 가수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역시 애잔하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봄은 화려하지만, 짧아서였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화려하고 찬란했던 봄꽃 대신 낮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초록이 있지 않은가. 화려하진 않지만 애기 손톱만 한 이파리가 돋아 점점 초록을 향해 치닫는 색감은 보기만 해도 짜릿하다.

황간의 관문은 황간역이다. 인구의 감소로 폐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황간역에는 하루 15편의 상하행선 열차가 정차한다.
황간의 관문은 황간역이다. 인구의 감소로 폐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황간역에는 하루 15편의 상하행선 열차가 정차한다.

느린 기차 타고 만나는 물길 여행, 황간

충북 영동의 황간(黃磵)이란 지명은 ‘물이 채워진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동서남북 방향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황간에서 하나가 된다. 삼도봉에서 발원한 장교천과 동쪽에서 흘러오는 추풍령천, 상주의 석천이 만나 황간에서 초강천이 되어 금강으로 합류한다.

조선시대에는 생활의 중심지요 교통의 요충지였다. 황간에서 추풍령을 넘어 김천·성주로 연결되었고 오도치(吾道峙)는 상주, 정치(井峙)는 청산, 종치(鐘峙)를 넘어 영동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경부선 철도가 지나고 경부고속도로와 4번 국도가 황간면 소재지를 지난다. 예나 지금이나 황간은 물자와 사람이 빈번히 오가는 중심에 위치해 있다.

황간의 관문은 황간역이다. 상하행선 모두 합쳐 15편이 정차하고 하루 평균 300명 남짓한 승객이 오가는 간이역에 불과하지만 역사(驛舍)는 화려하다. 즐비하게 늘어선 전통 옹기에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비롯해 시와 그림으로 치장돼 있다. 무료로 이용하라는 문구와 함께 노랑자전거도 일렬로 서 있고, 어렸을 적 한 번쯤 해봤을 땅따먹기 같은 전통놀이판도 역 광장에 그려져 있다. 황간역은 1905년 1월 1일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12년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황간 여행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도 가장 느린 무궁화를 타고.

황간역은 총길이 444.5㎞의 경부선 중간지점(227㎞)에 있는 기차역으로 영동역과 추풍령역 사이에 있다. 하지만 이용객과 화물의 감소하자 몇 해 전 오직 경제적 논리에 의해 존폐위기에 놓였었다. 지역주민들에게까지 외면받는 상황에서 역을 살려보자고 맨몸으로 뛰어든 이가 있다. 2013년 부임한 강병규(59) 전 황간역장이다. “인구는 줄고, 대체 교통수단의 발달로 열차 이용객이 자꾸 줄어드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였어요. 황간 사람들의 열차 이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외부에서 열차를 타고 황간으로 오게 하자는 것이었죠.”

강병규 전 역장은 “황간역은 수많은 시골역 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100년의 세월 동안 지역민들에게는 추억과 애환이 서린 소중한 유산”이라 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역을 만들자는 생각이 가능했던 것은 황간역을 중심으로 한 풍부한 관광자원에 있었다. 먼저 지역주민들과 함께 ‘고향역 가꾸기’를 시작했다. ‘고향의 푸근한 정취와 문화가 있는 시골역’을 콘셉트로 영동지역 문인들의 시와 그림을 전시하고 작은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황간역 2층에는 무인카페를 열었다. 카페는 50대 초반인 황간중학교 36회 졸업생들과 귀농귀촌인들이 출자해 만든 ‘황간마실협동조합’에서 운영 관리한다.

강병규 전 역장은 지난해 12월 퇴임했다. 하지만 2년 연장근무를 신청해서 ‘역무운용원’이란 이름표를 달고 여전히 황간역을 지킨다. 역 광장에 세워진 무료자전거를 손보고 여행자들을 안내한다. 손수 제작한 황간 여행지도를 건네받았다. 역을 기준으로 한나절 코스로 돌아볼 수 있는 곳들이 꼼꼼히 소개돼 있다. “반야사 쪽 석천을 따라 올라가 보세요. 요즘 연둣빛 풍경이 참 예쁘답니다”라며 손을 흔드는 강병규 전 역장을 뒤로하고 황간 여행에 나선다.

황간역 광장에서 맞은편 골목 계단으로 내려서면 곧바로 상가지역이다. 올 초에 개통된 4번 국도가 면소재지 외곽으로 지나면서 편도 1차선의 옛 국도는 평소보다는 한산해졌지만 여전히 복잡하다. 이유는 소문난 맛집들 때문이다. ‘황간’ 하면 오래전부터 올뱅이국밥으로 유명하다. 올뱅이는 다슬기의 영동지역 방언으로 옛 4번국도변에는 ‘3대 60년 전통’이란 간판부터 ‘올뱅이 전문’ 식당이 여럿 있다.

황간이 올뱅이로 이름을 날리게 된 이유는 다슬기가 많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물줄기가 하나가 되고 다시 큰 강을 만나기까지 황간 지역을 지나는 강이 많고 물도 맑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다슬기국이지만 올뱅이라 부르는 황간의 다슬기국 맛은 전혀 다르다. 집집마다 특징이 있고 주로 근대, 아욱, 부추, 애기배춧잎, 그리고 수제비가 들어간다. 국물은 얼큰하다. 매운맛과 보통 매운맛 두 가지를 낸다. 최근 방송을 통해 입소문을 탄 짜장면집도 있다. 원래부터 근동에서는 맛 좋기로 이미 소문이 나 있었는데 방송을 타면서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이 되었다. 맛은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딱 옛날 짜장면 맛이다.

시와 그림으로 치장한 전통 옹기가 황간역 광장에 전시되어 여행자들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시와 그림으로 치장한 전통 옹기가 황간역 광장에 전시되어 여행자들의 볼거리가 되고 있다.

면소재지에서 도보나 자전거로도 이동이 가능한 3㎞ 거리에 있는 황간 제1경이라는 월류봉(月留峰)으로 향한다. 월류봉은 석천과 초강천이 만나는 원촌리에 있다. 이 일대 여덟 경승지를 일컬어 ‘한천 8경’이라 했다. 해발 약 400m의 월류봉을 중심으로 1경 월류봉, 2경 산양벽, 3경 청학굴, 4경 용연대, 5경 냉천정, 6경 법존암, 7경 사군봉, 8경 화헌악의 절벽과 암봉, 바위들이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월류봉. 가파른 여섯 봉우리 아래로 초강천 물줄기가 휘감아 돌고 있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월류봉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우천리를 출발해 상봉, 평봉, 월류봉을 거쳐 원촌리로 하산하는 3시간 코스의 등산을 하거나 초강천을 따라 산책을 즐겨도 좋겠다.

강을 거슬러 오르기로 했다. 초강천 상류 석천을 따라간다. 강변에는 한껏 물이 오른 버드나무에 초록빛이 짙게 물들고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신라시대 고찰 반야사가 있다. 일주문에 이르면 보로 막혀 있는 초록빛 호수가 발길을 붙잡는다. 버드나무가 가지 하나쯤을 호수에 담그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가 물빛이고 어디가 초록빛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적당히 자리 잡고 앉으면 그때서야 비로소 물소리가 들린다. 늦은 오후 호수에 드리운 볕이 눈부시다. 반야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도 있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요사채 뒤편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돌 무더기다. 누가 봐도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이다.

반야사의 진면목은 계곡을 끼고 난 오솔길을 따라 200m쯤 거리에 있는 문수전이다. 말이 200m지 깎아지르는 벼랑에 돌계단을 밟고 오르는 길이라 운동화 정도는 신어야 고생을 덜 한다. 문수전에는 조선 세조 임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독한 피부병에 시달렸다고 알려진 세조가 반야사를 들러 법회를 마친 후 아이에게 이끌려 강가에서 몸을 씻었더니 그토록 애를 먹이던 부스럼이 치유되었고 아이가 사라진 절벽 위로 문수전이 서 있었다는 얘기다.

문수전에서 내려다보는 석천 풍경이 장관이다.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도보여행자들이 지난다. ‘구수천 천년 옛길’이다. 구수천(龜水川)으로도 불리는 석천은 경북 상주 땅 옥동서원까지 6㎞에 이르는 물길로 상주 사람들은 이 구수천 옛길을 따라 충청도로 넘어 다녔다. 작정하고 왔다면 모를까 준비 없이 완주하는 것은 무리다. 반야사 주차장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 편백나무 숲길 산책을 추천한다. 왕복 1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편안한 길로 쉬어가기 좋은 평상과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다.

여행 Tip

경부선 황간역에는 서울과 부산·대구·대전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15편 정차한다. 여행안내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2층 무인카페에 여행지도가 비치되어 있고 광장의 노랑자전거는 역무원을 통해 문의하면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카페 휴무일은 월요일이고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황간은 올뱅이국밥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황간역 앞 도로변에 안성식당(043-742-4203)과 동해식당(043-742-4024), 해송식당(043-745-8253)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담백한 옛날 짜장면을 맛보고 싶다면 황간터미널 근처에 있는 ‘덕승관’(043-742-4122)을 찾아가면 된다. 바삭하고 쫀득한 맛이 일품인 탕수육도 별미다. 영동군 문화관광 http://tour.yd21.go.kr

영강이 흐르는 구랑리 강변에서 부자가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있다.
영강이 흐르는 구랑리 강변에서 부자가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있다.

폐광의 역사를 간직한 산촌, 가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加恩邑). 이렇게 설명해야 이해가 쉽다. 문경은 알아도 가은 하면 잘 모른다. 문경의 최서북단에 위치하고 충북 괴산 땅과 접해 있으며 소백산맥 줄기를 따라 형성된 장성봉(915m)·대야산(911m)·둔덕산(969m)·희양산(998m)·뇌정산(991m) 등 1000m 고봉이 즐비하다. 전 면적의 84%가 산지인 덕분에 문경8경 중 3경(봉암사 백운대, 대야산 용추계곡, 선유동계곡)이 가은읍에 있다. 또한 양산천과 영강이 가은 땅을 촉촉이 적시며 흐르는 덕분에 생각보다 논경지가 많으며 근래 들어서는 사과밭이 많아졌다. 하지만 ‘가은’ 하면 한때는 무연탄 산지였다. 그런 이유로 문경석탄박물관이 가은읍에 있다.

한때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석탄산업의 활황기 시절 얘기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었던 광산이 1960년대부터 1994년에 폐광되기까지 가은읍은 잘나갔다. 1973년 인구 2만2000여명으로 면에서 읍으로 승격한 가은읍은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광업소가 문을 닫은 1994년에 인구가 8000여명으로 감소했고 지금 현재는 3300명 정도다. 1970년대 가은초등학교 전교생이 4000명에 달할 정도로 현재 인구보다 더 많았으니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은탄광으로 몰려들었는지 수치상으로도 알 수 있다. 가은역 맞은편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박종태(57)씨는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광산이 호황이던 시절, 당시 광산에서 가은역을 지나 사거리까지 술집과 고깃집이 즐비했어요. 석탄가루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 고기를 먹으면 좋다고들 하잖아요. 거리에서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다녔으니 그때는 살 만했죠.”

읍내에는 목욕탕이 네 개나 있었고 전기도 근동(近洞)에서 제일 먼저 들어왔다. 광산 덕분에 문화적 혜택을 비교적 빨리 누릴 수 있었다. “1970년대 광부들 월급이 30만원이었는데, 읍사무소 직원은 9만원 받을 때거든요. 실제로 공무원 그만두고 광산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어요.” 박종태씨는 부산에서 30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하다 아내 강금희(50)씨와 함께 3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은역 앞에 다시 빵집을 열고 ‘아자개빵’을 만든다. 달달한 고구마와 고소한 땅콩, 달콤한 팥소가 듬뿍 들어가 부드럽고 촉촉한 맛이다.

가은읍 왕릉리에 있는 가은역 역시 광산과 함께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다. 가은선의 종착역으로 개업 당시에는 은성탄광의 이름을 따서 은성역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1959년에 가은역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2004년에는 가은선 폐선으로 폐역이 되었다. 지은 지 60년이 넘은 가은역은 현재 등록문화재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박공지붕 형태의 출입구와 긴 창문 등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4년 가은선 폐선으로 폐역이 된 가은역. 지은 지 60년이 넘은 가은역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등록문화재 제30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좌) 옛 탄광에서 채탄 작업을 하는 광부의 조형물이 가은역 광장에 설치돼 있다.(우)
2004년 가은선 폐선으로 폐역이 된 가은역. 지은 지 60년이 넘은 가은역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등록문화재 제304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좌) 옛 탄광에서 채탄 작업을 하는 광부의 조형물이 가은역 광장에 설치돼 있다.(우)

가은역에 여객열차는 운행하지 않지만 그 자리에 레일바이크라 불리는 철로자전거를 운행한다. 주로 석탄과 시멘트 같은 물자를 수송하는 데 활용한 경북선의 지선 문경선 22.3㎞를 문경시가 레일바이크 코스로 운영하고 있다. 가은역에서 출발하는 레일바이크는 먹뱅이 구간까지 왕복 6.4㎞를 운행한다.

가은역에서 터미널 방향으로 400m가량 내려오면 아자개장터다. 가은읍 출신으로 알려진 아자개(阿慈介)는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로 장터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전국에 150여개가 있는 문화관광형 시장 중 하나로 새롭게 단장했다. 4일과 9일 열리는 장날과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주말(토·일)에는 할머니 장터가 열린다. 생활한복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장터를 뒤로하고 아자개의 장남 견훤의 흔적을 찾아간다.

장터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가은읍 갈전리 아차마을이 견훤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견훤은 지렁이의 자식으로 전해져 온다. 지금도 아차마을엔 견훤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금하굴이 남아 있다. 거대한 동굴을 상상하고 갔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가기도 힘들어 보이는 작은 바위굴 주변으로 대나무 몇 그루가 전부다.

가은읍의 역사를 만나기 위해 문경 석탄박물관으로 향한다. 가은역 뒤 양산천 건너에 있다. 옛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가 있던 자리에 1999년 개관했다. 연탄 모양의 건물 외관이 인상적이다. 당시 국가 기간산업의 원동력이었던 석탄의 역할과 그 역사적 사실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다. 1〜2층 중앙전시실과 갱내전시실·야외전시장 등이 있고 광산장비 및 광물 787종 4571점이 전시되어 있다. 실제 갱도 230m도 전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야외전시장과 갱도전시장, 광원사택전시관 등 당시 광산과 광부들의 생활상도 만날 수 있다. 석탄박물관 바로 뒤로는 가은 촬영장도 함께 있다. TV 드라마 촬영장으로 고구려궁, 고구려마을, 평양성, 신라마을, 안시성 및 성내마을, 요동성 및 성내마을이 실제 모습과 흡사하게 조성되어 있다.

아자개 장터는 가은읍 출신으로 알려진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로부터 유래했다. 4일과 9일 열리는 장날과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주말(토·일)에는 할머니 장터가 열린다. 생활한복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아자개 장터는 가은읍 출신으로 알려진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로부터 유래했다. 4일과 9일 열리는 장날과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주말(토·일)에는 할머니 장터가 열린다. 생활한복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옛 가은초등학교 문양분교의 잉카·마야박물관. 잉카와 마야문명의 발상지인 과테말라와 볼리비아 대사 등 28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김홍락 전 대사와 부인 주미영 잉카·마야박물관장 부부가 2014년에 문을 열었다.
옛 가은초등학교 문양분교의 잉카·마야박물관. 잉카와 마야문명의 발상지인 과테말라와 볼리비아 대사 등 28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김홍락 전 대사와 부인 주미영 잉카·마야박물관장 부부가 2014년에 문을 열었다.

레일바이크가 지나는 철로를 따라 영강으로 달렸다. 조령천과 만나는 진남유원지까지 드문드문 강마을이 이어진다. 이미 여름으로 치닫는 날씨 때문인지 강바람이 시원하다. 모래톱과 적당히 쉬어가기 좋은 솔숲도 만난다. 구랑리에 이르면 강변에 넓은 백사장과 자갈밭이 펼쳐진다. 매운탕집과 펜션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니 모르긴 해도 여름이면 강수욕장으로 꽤나 인기 있는 장소일 것 같다. 아빠와 아들이 한가롭게 낚시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가쁘게 여울을 지난 강물이 잠시 숨고르기라도 하는 듯 잔잔해진다. 마을에서 구랑리역까지 강변길이 이어진다. 굳이 이름 붙은 ‘걷기 길’은 아니지만 잠시 산책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아 보인다.

구랑리 마을에서 강변 옛길을 타고 상류로 오르면 하내리 마을이다. 백화산(1063.5m) 자락으로 인근에서는 가장 긴 골짜기다. 마을 입구 강변에서 상내리 마을 끝 차가 갈 수 있는 도로 길이만 해도 장장 6㎞에 이른다. 전형적인 산촌마을로 4월 중순에 만났던 봄꽃 흐드러지게 핀 숨 막힐 듯 아름다웠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같은 시기에 보기 힘든 산수유꽃과 배꽃, 살구꽃, 조팝나무꽃이 돌담 아래 나란히 피어 있고, 산자락에는 산벚꽃과 막 틔운 연둣빛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배경이 되어 주었다.

산촌을 뒤로하고 다시 영강 상류를 거슬러 오른다. 가은읍 전곡리의 옛 가은초등학교 문양분교에는 이 지역과 어울리지 않는 잉카·마야박물관이 있다. 잉카와 마야문명의 발상지인 과테말라와 볼리비아 대사 등 28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김홍락 전 대사와 부인 주미영 잉카·마야박물관장 부부가 2014년에 문을 열었다. 20년 이상 중남미 국가에서 보내면서 수집한 토기·조각 등 2000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잉카관·마야관·유추관 등으로 구성했고,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보관해온 ‘외교사료’도 전시돼 있어 방문객들은 외교관 체험도 할 수 있다. 사전에 정보 없이 찾았다면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잉카·마야문명과 가은이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우연한 발걸음으로 방문하게 된다면 적잖이 놀라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방대한 자료뿐만이 아니라 김홍락·주미영 부부의 해박한 잉카·마야문명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듣다 보면 고대 유적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교실을 이용해 만든 카페와 게스트룸, 운동장에는 캠핑장도 갖추고 있다.

여행 Tip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를 이용하면 가은읍까지는 영강을 따라가는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진다. 아자개장터는 4일과 9일 열리는 오일장이지만 주말이면 할머니 장터를 비롯해 농특산물 판매장이 선다. 매주 토요일에는 골동품 경매시장도 열린다.

문경의 대표 먹거리로는 가은역 맞은편 ‘자유베이커리’(054-571-5730)의 아자개빵이 있다. 광부들이 가장 즐겨 먹었다는 석쇠불고기 맛을 보려면 가은터미널 맞은편 ‘대복 순대국밥’(054-571-9991)으로 가면 된다. 부드러운 삼겹살을 갖은 양념으로 잰 다음 석쇠에 구워 나온다. 이 집은 본래 순대국밥으로 더 유명한데 부산 출신이라 그런지 돼지국밥에 더 가까운 맛으로 약초를 우려낸 육수에 쫄깃한 식감의 머릿고기가 들어간다.

문경시 문화관광 http://tour.gbmg.go.kr, 잉카·마야박물관 http://www.잉카마야.kr, 문경 석탄박물관 http://coal.gbmg.go.kr

눌산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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