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존 스튜어트 밀. (우) ‘자유론’ 초판 표지.
(좌) 존 스튜어트 밀. (우) ‘자유론’ 초판 표지.

우리는 치열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 자유를 쟁취했다. 이제 우리를 짓누르던 권력의 억압은 대부분 소멸되었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다. 오늘날 누구도 이처럼 평안한 현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권력의 횡포보다 민주주의가 오히려 자유를 더욱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기념비적 고전이 있다. 바로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자유론’(On Liberty·1859)이다. 이 책은 ‘자유’에 대해 최초로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를 논하려면 우리는 어김없이 이 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밀은 아버지 제임스 밀로부터 철저한 영재교육을 받았다. 세 살부터 그리스어를, 여덟 살부터 라틴어를 배웠다. 10대 초반에 이미 웬만한 고전이나 경제학 서적을 독파했다. 그의 아버지는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동료이자 제자였다. 밀 역시 공리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그는 20대의 방황기를 거치며 점차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켰다.

19세기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의 치세였다. 그는 무엇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확립했다. 자본주의는 화려한 번영을 구가하고, 정치적으로는 양당정치가 틀을 잡았다. 당시는 영국 역사상 괄목할 정도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한껏 고양되던 시기였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자유론’이 쓰여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에 이미 국민은 선거를 통해 임기제 공직자를 선출했다. 이로 인해 지배자의 압제는 상당 부분 종식되고 마치 자유가 제법 충족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국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은 것이 아니다. 국민의 의지란, 실제로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 또는 가장 활동적인 일부 사람들의 의지’에 불과하다.

이로 말미암아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 가운데 일부를 억누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다수의 횡포(tyranny of majority)’이다. “(이러한) 횡포는 다른 어떤 형태의 정치적 탄압보다 훨씬 더 가공할 만한 것이 된다.… 개인의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단순히 정치적 횡포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감정이 부리는 횡포나, 통설과 다른 생각이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윽박질러 통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경향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다수의 횡포’는 그 어떤 개별성(또는 개성·individuality)도 용납하지 않고 사회의 표준에 맞는 획일화를 강요한다.

따라서 밀은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기준은 간단하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자유가 ‘절대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설사 당사자에게 이로운 일이라도 결코 강제하거나 위협을 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 곧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 각자가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자유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 것이 바로 생각과 토론의 자유이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실제로는 진리일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이 틀렸더라도 그것을 통설이 합리적이라는 근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전혀 틀렸다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로도 다른 의견을 갖거나 표현할 자유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의 이견(異見)이라도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호시탐탐 개인의 개별성을 위협한다. 거기서는 관습과 인습이 지배하고, 천재와 기행이 난색의 대상이 되고, ‘집단적 평범’이 고귀함이나 탁월함의 추구보다 더 선호된다. 과거의 정치적 억압보다 오늘날 검열이나 눈치 보기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획일주의 또는 ‘관습의 독재’에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한다.

어느 사회든 정체를 벗어나려면 독창성이 필요하다. 독창성이야말로 개별성이 존중되는 풍토에서만 자라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 개별성을 추구해 스스로를 가꾸고 발전시킴에 따라 독창성을 발휘하고, 그로 인해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밀의 시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고 밀이 무조건 개별성만 옹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이 타고난 사회적 감정(social feeling)을 바탕으로 타인과 일체감을 느끼며, 협력을 통해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자유론’에서 그는 인간의 사회성보다 개별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심지어 술이나 도박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호인 바, 강제적으로 사회가 개입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개별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현실에 적용해 보면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술이나 도박을 단순히 개인의 기호로 간주할 것인가, 또는 타인에게 미치는 해악에 주목할 것인가. 이는 그의 사상의 두 축인 자유와 공리의 충돌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충분히 자격이 있는 사람이나 사회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여 ‘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그는 정부가 시민들에게 보호 차원을 넘어 재화와 편의의 주요 공급자가 되는 것은 단연코 반대한다. 정부와 관료가 그런 일을 떠맡으면 권력이 집중되고 창의가 질식당하고 종속성이 심화된다. 따라서 민간이 자신들의 필요를 스스로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이 자유의 신장을 주창하는 보수주의가 ‘큰 정부’를 반대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밀은 개인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옹호한 인물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개별성 못지않게 사회성에도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사회 전체의 복리를 고려하는 공리주의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개별성이 불허되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비추어 개인의 자유를 강력하게 지지한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론’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도리어 자유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위협의 실체가 바로 ‘다수의 횡포’이다. 여기서 밀은 ‘다수’를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 또는 가장 활동적인 일부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다수의 횡포’가 ‘다수’는 물론, ‘일부’에 의해서도 자행될 수 있다는 그의 지적은 전율적이다. 그는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가 실제로는 자유에 대해 얼마나 둔감한지 새삼 일깨워준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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