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57호]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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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행] 가장 사치스러운 예술을 경험하고 싶다면 ‘오페라 帝國’

뉴욕 메트로폴리탄으로 가라!

김기철  조선일보 문화부장 kichul@chosun.com 

▲ Ken Howard / Metropolitan Opera 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 타이틀롤을 맡은 라트비아 출신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골 마을에 살던 열여섯 살 줄루족 소녀의 삶이 2001년 TV에서 흘러나온 영국항공(British Airways) 광고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프랑스 작곡가 레오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에 나오는 ‘꽃의 이중창’에 빠져버린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소녀는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고, 10년 뒤인 2011년 세계적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도밍고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다. 남아공 출신 흑인 소프라노로 미국과 유럽에서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는 프리티 옌데(32) 얘기다.
   
   옌데의 동화 같은 성공 스토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2년 뒤 로시니 오페라 ‘오리 백작’에서 스타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상대역인 아델레 백작부인 역으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 데뷔, 호평을 받았다. 2016년 파리 국립오페라에서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여주인공 로지나로 데뷔했다. 작년 말, 세계적 음반사 소니 클래시컬에서 독집 앨범 ‘A journey: Pretty Yende’도 냈다. 앨범 첫 곡이 ‘세비야의 이발사’ 1막에서 로지나가 부르는 첫 아리아 ‘방금 들린 그대 목소리’였다. 로지나는 꽤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함께 사는 후견인인 의사 바르톨로가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로지나와 결혼하려고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로지나는 린도르라는 청년(실은 알마비바 백작)을 마음에 두고, 그를 떠올리며 이 아리아를 부른다. 옌데의 화려하면서도 풍부한 성량을 맘껏 과시한 이 아리아를 듣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졌다.
   
   지난 2월 뉴욕 맨해튼 66번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옌데의 ‘세비야의 이발사’를 만났다. 메트 오페라하우스는 성악가들을 시험에 빠트리는 무대다. 객석 숫자가 유럽의 웬만한 오페라 극장보다 두 배 정도 큰 3800석이다. 메트에 자주 서는 베이스 연광철은 “일단 무대에 오르면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노래해야 한다”고 말한다. 객석 뒤편까지 소리를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옌데는 조금도 떨지 않았다. 1막의 아리아 ‘방금 들린 그대 목소리’를 시원시원한 고음으로 사랑에 빠진 처녀의 감성을 노래하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답했다. ‘디바(Diva)’의 탄생이었다.
   
   옌데는 이번 시즌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과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 여주인공 엘비라까지 맡아 메트의 주역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5월 7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링컨센터에 들어온 지 5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콘서트에도 섰다.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오페라의 별들과 함께였다. 메트 오페라에선 옌데 같은 샛별들이 지금도 탄생하고 있다.
   
   
   매일 다른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곳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오페라 제국(帝國)’이다. 안나 네트렙코(러시아), 르네 플레밍(미국), 니나 스템(스웨덴), 디아나 담라우(독일),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라트비아), 올가 페레차트코(러시아·이상 소프라노), 엘리나 가란차(라트비아), 조이스 디도나토(미국·이상 메조소프라노), 라몬 바르가스(멕시코),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페루), 롤란도 비아존(멕시코), 표트르 베찰라(폴란드), 비토리오 그리골로(이탈리아·이상 테너), 르네 파페(독일·베이스) 등 스타 성악가들이 매 시즌 무대에 선다. 1976년부터 메트 음악감독을 지내다 작년 명예감독으로 물러난 제임스 레바인, 베를린필하모닉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 영국 맨체스터의 할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마크 엘더 등 지휘자군(群)도 화려하다.
   
   오페라는 지상(地上)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예술에 속한다. 우선 정상급 성악가들이 필요하고, 지휘자, 오케스트라, 합창단, 무용단에 무대 디자인과 의상, 조명 등 최소 300~400명 넘는 인원이 필요하다. 연습 기간은 보통 두 달인데, 정작 공연은 세계 메이저 오페라 극장도 많아야 10번 정도다.(참고로 한국 국립오페라단의 경우, 두 달 연습에 공연 횟수는 대개 4번 정도다. 관객 동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티켓 값이 비싼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비싼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베를린 필이나 빈 필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는 종종 내한 공연을 갖지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런던 로열 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빈 국립오페라 같은 오페라 극장이 내한 공연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클래식 애호가층이 두꺼운 일본 정도가 서구의 주요 오페라 극장들을 대략 3년에서 5년에 한 번 순회 공연을 유치하는 정도다. 일본 공연 티켓 최고가(最高價)가 우리 돈으로 100만원까지 치솟는 것도 그만큼 많은 인원이 움직이면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서구 주요 도시를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그 도시의 대표적 오페라 극장을 구경하는 게 이문이 남는 일이다.
   
   ‘오페라 제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이렇게 ‘비싼’ 오페라를 매일 다른 작품으로 바꿔 올린다. 2016~2017 시즌에 올리는 오페라만 26편(225회 공연)이다. 이렇게 매일 다른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곳은 런던 로열오페라, 파리 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베를린 국립오페라, 뮌헨 바이에른 오페라 정도다. 최근 작품성 논란과 흥행 부진 때문에 객석이 듬성듬성 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메트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무대다. 1880년 설립된 메트 오페라는 정부에서 예산 지원을 받는 유럽 오페라 극장과 달리 민간단체다. 연 예산(2015년)은 약 3550억원으로 티켓 수입은 전체 29%인 1027억원. 기부 수입이 전체 예산의 48%를 차지하는 1710억원이다.
   
   지난 2월 뉴욕 메트 극장에서 일주일간 다섯 편의 오페라를 봤다. 낮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뉴욕행 비행기의 현지 도착 시각은 오전 10시. 입국 수속 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은 JFK공항을 빠져나와 맨해튼 도심의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 주말 오후 1시에 시작하는 메트의 마티네 공연을 보기란 쉽지 않다. 운 좋게 30분 만에 입국 수속장을 빠져나와 우버택시로 호텔에 도착하니 공연 시간 1시간30분 전. JFK공항에서 호텔 체크인까지 최단 시간 기록이었다. 도보로 10분 남짓 걸리는 어퍼웨스트 66번가 메트 극장까지 느긋하게 걸었다. ‘리골레토’ 여주인공 질다로 나선 소프라노 올가 페레차트코(37)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 올 시즌 신작 ‘루살카’를 공연 중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photo 김기철

   최고의 배역들이 만든 벨리니 ‘청교도’
   
   유럽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페레차트코의 실력은 2015년 2월 빈 국립오페라의 ‘청교도’에서 일찌감치 확인했다. 여주인공 엘비라로 나선 페레차트코는 명(名)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를 모델로 삼은 듯, 연인의 배신으로 절망한 엘비라가 광란에 빠지는 2막에서 변화무쌍하게 돌변하는 감정을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담아냈다. 이미 2014년 메트 ‘청교도’에 나섰던 페레차트코의 올 시즌 배역은 ‘리골레토’의 질다. 1960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로 무대를 옮긴 메트판 ‘리골레토’는 바람기 많은 만토바 공작이 카지노 주인으로 나왔다. 이탈리아 지휘자 피에르 조르조 모란디가 이끈 메트 오케스트라는 서곡부터 불안정했다. 만토바 공작으로 나선 미국 테너 스테판 코스텔로까지 초반 들릴 듯 말 듯 약한 성량으로 실망을 안겼다. 그나마 리골레토로 나선 세르비아 바리톤 제리코 루치치(49)가 안정적인 목소리와 연기로 중심을 잡아나갔다. 페레차트코의 질다는 ‘리골레토’의 비극성을 도드라지게 만들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였다.
   
   2월 가장 화제를 모았던 작품은 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 ‘청교도’였다. 오페라가 ‘목소리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멕시코 출신 테너 하비에르 카마레나(41)와 독일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46), 이탈리아 베이스 바리톤 루카 피사로니(42)는 17세기 청교도혁명 와중의 잉글랜드를 무대 삼아 엘비라와 아르투로의 사랑을 그려냈다. 메트에 자주 서는 카마레나는 2014년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만난 적이 있다. 실은, 스타 성악가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나온다기에 간 공연이었다. 로시니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 남자 주역을 맡은 카마레나는 까다로운 기교와 높은 음역(音域)을 요구하는 라미로 왕자를 너무나 편안하게 소화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성기에 접어든 카마레나는 메트 ‘청교도’에서도 테너의 최고 음역인 하이 C를 웃도는 고음(高音)을 능란하게 넘나들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뉴욕타임스가 “메트는 카마레나를 위해 ‘청교도’ 새 프로덕션을 만들 때가 왔다”고 썼을 만큼 압도적 절창이었다.
   
   디아나 담라우도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함께 대표적 ‘광란의 장면(Mad Scene)’으로 꼽히는 2막에서 아리아뿐 아니라 몸을 던지는 적극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담라우는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메이저 극장이 앞다퉈 구애하는 정상급 소프라노. ‘담라우는 작년에도 메트에서 비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주역인 실론 섬의 여사제(司祭) 레일라로 나서 호평을 받았다.’ 모차르트 오페라가 특기인 베이스 바리톤 피사로니는 2015년 7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피가로의 결혼’ 주역 알마비바 백작으로 만났다. 안정감 있는 목소리에 노련한 연기가 볼 만했는데, ‘청교도’에선 의외로 특색 없이 평범한 연기를 펼쳐 약간 실망스러웠다.
   
   
▲ Marty Sohl / Metropolitan Opera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로지나 역으로 나선 남아공 소프라노 프리티 옌데.

   올 시즌 신작 ‘루살카’
   
   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는 토니상 수상자인 연출가 메리 짐머만과 무대 디자이너 다니엘 오스트링이 손잡고 만든 야심작. 올 시즌 신작(新作·New Production) 오페라 여섯 편 중 하나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작년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 ‘루살카’는 ‘물의 요정’ 루살카가 왕자와 사랑에 빠져 인간으로 변신했다가 실연하는 체코판 ‘인어공주’ 이야기. 짐머만은 요정들의 푸르른 녹색 세계(1막)에 이어 인간 세계의 궁전(2막)에 들어온 루살카의 혼란을 음습한 붉은 색조로 대비시켰다. 녹색과 붉은색을 번갈아 배치한 짐머만과 오스트링의 합작은 체육관 같은 대극장을 오밀조밀한 동화의 세계로 가득 채웠다. 1막 초반 ‘달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38)는 목소리까지 잃어가며 사랑에 몸을 던지는 루살카를 절절하게 연기했다. 노래와 대사 한마디 없는 2막에서도 왕자의 배신에 불안해 하는 연인(戀人)의 심정을 담아냈다. 영국 지휘자 마크 엘더 경(卿)이 이끈 메트 오케스트라는 바그너처럼 장중한 ‘루살카’ 음악을 탄탄하게 채워줬다.
   
   메트 오페라는 한국 성악가들과도 인연이 깊다. 소프라노 홍혜경(58)을 비롯, 신영옥·캐서린 김이 메트 무대에 정기적으로 섰다. 1984년 ‘티토 황제의 자비’로 데뷔한 이래, 메트 간판 소프라노로 성장한 홍혜경은 ‘라 보엠’ 미미 역을 단골로 맡았다. 홍혜경은 올 시즌인 2016년 12월에도 미미를 불렀고, 올 9월 개막하는 2017~2018 시즌에도 ‘투란도트’에 캐스팅됐다. 2007년 ‘피가로의 결혼’ 바르바리나 역으로 데뷔한 캐서린 김도 거의 매 시즌 메트에 서왔다. 올 시즌 ‘후궁으로터의 탈출’ ‘장미의 기사’에 나섰고, 다음 시즌에도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의 ‘신데렐라’에 출연한다.
   
   최근 부쩍 출연 횟수가 늘어난 성악가는 테너 이용훈과 베이스 연광철이다. 테너 이용훈은 2010년 베르디 ‘돈 카를로’ 타이틀롤로 데뷔한 이래 ‘나부코’ 이스마엘레, ‘카르멘’ 돈호세, ‘일 트로바트레’ 만리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투리두 역으로 매 시즌 무대에 섰다. 올 시즌은 건너뛰고 2017~2018 시즌에 ‘일 트로바트레’ 만리코로 돌아온다. 2004년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자라스트로로 메트에 데뷔한 연광철도 매 시즌 초청받는 단골이다. 지난 시즌인 2016년 2월 ‘일 트로바트레’와 ‘마리아 스투아르다’에 출연하면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나선 이용훈과 엇갈리며 무대에 섰다. 올 시즌에는 ‘돈 조반니’와 ‘윌리엄 텔’에 나섰고, 다음 시즌에도 ‘일 트로바트레’ 페란도에 캐스팅되면서 만리코 역의 이용훈과 한 무대에 서는 모습이 기대된다.
   
   ‘메트 오페라의 전설’로 통하는 제임스 레바인은 1976년부터 이 오페라단 음악감독을 40년간 맡아왔는데 작년 건강 문제로 사임하고 명예감독으로 물러났다. 야닉 네제-세갱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 차기 음악감독(2020년 취임)으로 지명됐다. 네제-세갱은 5월 7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링컨센터에 입주한 지 50년을 기념하는 갈라콘서트에서 스타 성악가들을 이끌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노장(老將) 제임스 레바인은 올 시즌에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지휘했고, 다음 시즌인 오는 11월 베르디 ‘레퀴엠’을 네 차례 지휘한다. 메트 오페라는 올 가을 9월 25일 개막하는 2017~2018 시즌엔 푸치니의 ‘토스카’, 벨리니 ‘노르마’ 등 신작 5편을 포함, 오페라 26편(220회)을 공연한다. 지상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예술을 경험하고 싶다면, 메트 오페라는 절대 놓칠 수 없는 1순위 후보지다. 웹사이트 www.metoper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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