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58호]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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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人] 이불집 옆 미술관 동네를 바꾸다

올해의 자랑스러운 ‘젊은’ 박물관인상 헬로우뮤지움 김이삭 관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헬로우뮤지움’을 찾아나선 길이었다. 어린이미술관을 표방하는 헬로우뮤지움은 산동네 고층아파트를 배경으로 도로변 상가 틈새, 이런 곳에 미술관이 있을까 싶은 곳에 있었다. 번듯한 건물에 화려한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동네미술관’을 내세운 헬로우뮤지움은 미술관에 대한 일반적인 예상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헬로우뮤지움의 김이삭(41) 관장이 한국박물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자랑스러운 ‘젊은’ 박물관인상을 수상했다. 한국박물관협회는 매년 원로·중진·젊은 박물관인 3개 부문에 걸쳐 박물관·미술관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이 상을 주고 있다. 올해는 김 관장과 함께 고(故)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 배기동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 명예위원장(한양대 교수),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 등이 선정됐다. 한국박물관협회에는 국내 박물관, 미술관 741개가 속해 있다.
   
   수상자 명단이 막 발표된 지난 5월 16일 헬로우뮤지움을 찾았다. 1층 전면을 유리창으로 만들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미술관 안에서 크레파스를 들고 유리창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놀란 직원들이 달려와 말렸을 법한 일이지만 이곳에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더 있다. 일단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미술관 전체가 마룻바닥으로 돼 있어 마음대로 뒹굴고 떠들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놀이터 같다. 화장실엔 출입문 옆으로 ‘개구멍’처럼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았다. 아이들은 주로 이곳으로 드나든다고 한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 보인다. 옥상정원은 온 벽이 그림, 글씨들로 도배가 돼 있다. 누구든 마음대로 벽을 도화지로 이용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페인트칠로 새로운 도화지를 만들어준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제 집처럼 미술과 노는 사이, 한쪽에선 아이를 데리고 온 아빠들이 코를 골고 잠을 자는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김이삭 관장의 말이다.
   
   
   강남에서 금호동으로 옮긴 이유
   
   헬로우뮤지움은 2007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시작했다. 사립 어린이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였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금호동으로 옮긴 것이 2년이 채 안됐다. 문화시설이 가장 부족한 동네를 찾기 위해 6개월 서울 시내를 훑고 다녔다. 삶 속으로 들어가 예술이 놀이가 되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동네미술관’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예술놀이터를 만들려는 김 관장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이 그 증거다.
   
   우리나라에서 사립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김 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5월 18일은 ‘세계 박물관의 날’이기도 하다. 김 관장은 미국 파세데나에서 5월 3~5일까지 열린 ‘세계어린이박물관협회’ 포럼에 다녀왔다고 했다. 20여개국 200여개가 참여한 행사에서 김 관장은 작가와 미술관의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 사례로 선정돼 발표자로 나섰다. 포럼은 놀이, 관객, 박물관 운영 등에 대한 현장 사례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매년 미국에서 열리고 있다. 개관 노하우부터 시작해서 성소수자를 위한 중성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다양한 문제가 토론에 올랐다고 한다. 진정한 놀이는 어른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연구 발표가 있었고, 가족해체가 심화되면서 조부모·조력자의 손에 크는 아이들의 문제가 화두였다고 한다. 나라마다 환경은 다르지만 고민은 비슷한 모양이다. 어린이미술관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역시 미국, 유럽이다. “미국의 경우 어린이미술관만 400~500개에 이릅니다. 동네마다 어린이미술관이 있고 지자체, 기업, 재단뿐만 아니라 개인 기부가 일상화돼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일이죠.” 김 관장의 말이다.
   
   헬로우뮤지움은 비영리기관이다. 수익은 입장료(어른 5000원, 어린이 4000원)와 체험교육 프로그램(2만원)이 전부다. 학예사 등 직원은 11명이다. 인건비, 임대료를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는 구조다. 운영비의 50%까지 자립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입장료 등 자체 수익은 10%를 갓 넘은 수준이다. 아트상품, 멤버십 제도 등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고민 중이다. 다행히 헬로우뮤지움은 벤처기부펀드인 ‘C Program’의 지원을 받고 있다. ‘C Program’은 ‘놀이를 통한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목표로 김범수(카카오), 김정주(넥슨), 김택진(엔씨소프트), 이재웅(다음), 이해진(네이버컴) 등 성공한 벤처 1세대들이 2014년 설립한 기구이다. ‘동네미술관’의 가치를 알아보고 금호동 설립을 도와주고 프로젝트의 진행을 함께하고 있다. 1호인 ‘동네미술관 금호동’이 성공하면 2호, 3호로 이어갈 계획이다. 김 관장은 동네미술관을 희망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개관 운영을 도와줄 계획이다. ‘동네미술관’이 문화 소외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김 관장과 ‘C Program’의 목표이다.
   
   
▲ 아파트 숲 사이에 있는 ‘헬로우뮤지움’.

   전국 곳곳에 동네미술관을!
   
   헬로우뮤지움은 동네 분위기와 사람들을 바꾸고 있다. 미술관이 들어선 곳은 1970년대 세워진 병원건물이다. 동네 분위기마저 칙칙하게 만들던 낡은 건물이 미술관으로 산뜻하게 옷을 갈아입자 인근 상가 주민들이 우선 환영했다. 떡집, 꽃집, 이불집에서 선물이 답지했다. 주민들에게는 미술관이 있는 동네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다. 성동구는 아파트 주민이 70%에 이르지만 산동네를 따라 조성된 다세대주택도 여전히 많다. 미술관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문화소외계층이 의외로 많은 곳이다.
   
   “처음엔 ‘미술관이 뭐예요’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미술학원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답니다. 미술관 안내 팸플릿에 ‘미술학원이 아니다’ ‘도서관이 아니다’는 안내문구를 넣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요즘엔 아이들 손 잡고 오는 할머니도 있고 청소년, 대학생 관객도 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전시뿐만 아니라 아이들 손 잡고 오는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턱 하나 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이곳 주민들이 그 문턱을 이제 넘기 시작했습니다.”
   
   김 관장이 현장에서 느끼는 어린이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미술관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가한 어린이는 ‘친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래미안’이라고 적어놓았더란다. 래미안에 살면서 단지 내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이 모두 래미안에 살다 보니 ‘친구=래미안’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파트 밖에 사는 주택의 아이들은 친구가 아니다. 아픈 햄스터를 안고 와 “햄스터가 고장났다”고 말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동물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생명이 아니라 대형마트에서 구입하고 고장나면 환불할 수 있는 상품이었던 것이다.
   
   김 관장이 지금까지 기획한 전시들은 이 지점에서 만들어졌다. ‘친구관계의 발견’전은 미술 작품을 공동으로 만들면서 친구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고 배운 아이들에게 예술은 통한 관계 맺기는 새로운 경험이다. ‘놀이시작’전은 교육·인지 과잉의 시대에 정작 놀 줄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놀이’에 관한 사유를 확장시키는 전시였다. 현재는 ‘숨은 미술관 찾기’가 진행 중이다.
   
   
▲ 신발 벗고 들어가 편하게 미술과 놀 수 있는 미술관 내부.

   1세대 미술관 교육 전문가
   
   김 관장은 미술관 교육 전문가 1세대이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부터 시작해 우리나라 국립·시립 어린이미술관의 틀을 잡는 역할을 했다. 김 관장은 동양화를 전공하고 ‘전시기획’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박물관 교육’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박물관 교육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뮤지엄 커뮤니케이션’으로 전공을 바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이화여대에서 시각디자인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유학을 끝내고 들어오니 국립중앙박물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건립추진기획단에 들어가 어린이박물관 개관 준비를 하다 국립전주박물관에 파견돼 국내 처음으로 체험학습실을 만들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히트상품인 ‘미술과 놀이’도 김 관장이 외부기획자로 참여한 전시이다. 주5일제가 시작되면서 학교 단위 단체관람객 중심에서 가족 관람객으로 바뀌던 시기, 변화에 맞춘 기획이 대박이 났다. 동물들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 ‘미술관 사파리’는 전국 순회까지 하며 관객 11만명을 기록했다. 전시가 히트를 치면서 비슷한 전시가 잇따랐다. 미꾸라지 잡기, 토끼 잡기 등 동물학대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김 관장에게 미술관 교육에 대한 책임감을 깨우치게 만든 전시였다. 그때 고민이 오늘로 이어진 것이다.
   
   미술관 운영의 어려움을 물었다. 운영비 지원 문제가 먼저 나올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미술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영리기관으로 등록이 돼 있다 보니 제약이 너무 많습니다. 하다못해 현수막 걸고 온라인에 배너광고 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교육청을 통한 홍보를 요청하면 입장료를 받고 있어 곤란하다고 합니다. 구청시설에서 돈 내는 상업전시는 홍보해주면서 공공재 성격을 띤 미술관에 대해서는 오히려 엄격한 잣대를 댑니다. 시민의 문화향유 기관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 관장은 인식이 바뀌면 제도적 지원도 따를 것으로 믿고 있다.
   
   미술관 벽 한쪽에 ‘헬로우뮤지움 O, 헬로뮤지엄 X’라는 안내문구가 눈에 띄었다. 새로 생긴 어린이미술관이 유사 이름을 사용하는 바람에 재판 중이라고 했다. 관람객 중 잘못 알고 유사 미술관에 갔다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힘든 일이 많지만 그가 믿는 것은 예술의 힘이다. 어린이에게 예술은 가장 좋은 놀이다. 미술을 통해 아이들이 바뀌고 부모가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이 김 관장을 움직이는 에너지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헬로우뮤지움’도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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