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영등포입니다. 하지만 주로 성장한 곳은 인천입니다. 인천에서도 자유공원 남쪽 기슭입니다. 부모님이 황해도에서 피란 나와 고향 사람들 곁으로 찾아온 곳이 바로 중국인 마을 차이나타운과 가장 가까운 동네인 해안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짜장면, 우동, 만두, 찐빵, 공갈빵 등의 중국 음식에 익숙했습니다. 우리 집 길 건너편에는 왕씨 성을 가진 중국인이 운영하는 ‘태화관’이 있었습니다. 벽에는 중화민국 국기와 우리나라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고 그 밑에는 장제스 총통과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사이좋게 있었습니다. 짜장면을 시키면 주인은 주방에 뭐라고 중국말로 큰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잠시 후에 작고 둥근 배식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이 나왔습니다. 각종 요리들이 줄줄이 나오는 그 작고 둥근 배식구는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즈음 윗동네에 ‘진흥각’이란 새로운 중국집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55년 전이 됩니다. 그 주인 역시 왕씨 성이었는데 새롭게 요릿집을 차린 것입니다. 그 중국집에서 사람들은 정말 맛있게 ‘우동 같은 것’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은 우동하고는 국물 색깔이 달랐습니다.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그 음식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얀 짬뽕(炒馬麵)’이라 대답했습니다. 초(炒)는 ‘볶는다’는 뜻이고 마(馬)는 ‘각종 재료’를 뜻하므로 결국 각종 재료를 넣고 볶은 면이 하얀 짬뽕인 것입니다. 이 하얀 짬뽕이 맛있다고 동네에 소문이 다 났습니다. 그래서 그 맛있다는 하얀 짬뽕을 나도 먹어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자유공원 너머에 있어서 집으로 올 때는 홍예문을 지나 이 중국집 앞길을 거쳐 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 까까머리 소년은 ‘용기를 내어’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용기를 냈다는 말은 당시 모범학생(?)은 교복을 입고 혼자서 중국집에 가질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고량주인 ‘빼갈’을 마시고 담배를 몰래 피우는 불량학생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하얀 짬뽕 한 그릇 주세요.”

이렇게 주문을 했더니 역시 홀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하얀 짬뽕은 배가 불룩하고 길쭉한 그릇에 담겨 나왔습니다. 양손으로 그릇을 들고 우선 국물부터 들이마셨습니다. 그 국물 맛은 참으로 오묘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었습니다. 마치 옥황상제가 먹는 음식 같았습니다. 그 오묘한 국물 맛의 비밀은 조갯살과 닭고기, 그리고 다양한 야채를 한데 볶아 우려내는 기술에 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바로 그 국물 맛에 중독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인천에 갈 일이 생겨 그 중국집으로 갔습니다. 하얀 짬뽕을 주문하고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메뉴판에는 하얀 짬뽕이란 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리 이름이 메뉴판에 없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젊은 주인(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 형제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음)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얀 짬뽕은 별도로 요리해야 해서 시간과 노력이 적잖이 드는 음식이며 단골들만 드시기 때문에 별도로 메뉴판에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주인은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하얀 짬뽕은 전통적으로 본토 중국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짬뽕이라고 하면 전부 빨간 국물의 짬뽕을 말하지만 오리지널은 하얀 국물의 짬뽕입니다.

드디어 하얀 짬뽕이 나왔습니다. 하얀 짬뽕을 담은 그릇은 무척이나 무거웠습니다. 그릇은 마치 중국 청나라 시대의 청화백자같이 기품이 있었습니다. 그릇은 중국 남쪽 도예촌에서 제작하여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릇 속에선 면이 하얗고 뽀얀 국물을 머금고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그 위엔 가늘게 썬 돼지 살코기, 통통한 조갯살, 잘게 썬 오징어, 그리고 흰색 양파, 주홍색 당근, 녹색 호박, 하얀 마늘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우선 국물부터 들이마셨습니다.

놀라워라! 고등학교 때 맛보았던 ‘그 맛’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반갑고 기뻤습니다. 그 하얀 짬뽕 맛은 나를 타임머신에 태우고 까까머리 소년 시절로 데려갑니다. 펑펑 내리던 함박눈을 맞아가며 율목동 찐빵 집을 찾아가던 모습도 보이고, 한여름 땡볕에 월미도 갯벌에서 망둥이를 잡던 모습도 보이고, 곱게 물든 단풍잎의 홍예문을 지나던 모습도 보이고, 동인천역 사거리 별제과점에서 나를 기다리던 소녀의 모습도 보입니다. 젊은 날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마치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유명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추억의 흑백필름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웃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하얀 짬뽕에는 내 젊은 날의 추억들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뽀얀 국물을 들이켜며 그 아련한 추억들이 ‘온 에어(On Air)’가 됩니다. 불현듯 고교 시절에 불렀던 ‘은발’이란 노래가 생각납니다. “젊은 날의 추억들은 한갓 헛된 꿈이랴 윤기 흐르던 머리 이제 자취 없어라 오 내 사랑하는 님, 내 님 그대 사랑 변찮아 지난날을 더듬어 은발 내게 남으리.”

요즘 나는 연어가 된 기분입니다. 자꾸 지난날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연어는 치어(稚魚) 때 자기를 낳아준 고향의 물 냄새를 기억합니다. 그러곤 태평양을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성어가 되면 알을 낳으러 다시 모천(母川)을 찾아옵니다. 나 역시 그 어린 시절의 하얀 짬뽕 맛을 기억하며 발길이 그 중국집으로 향합니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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