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가 다녀온 뒤에는 ‘왜 이 도시를 이제야 갔을까’라고 후회하게 만드는 곳들이 있다. 예컨대 알프스를 품어 안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 그런 곳이었다. 도시 구석구석 숨은 매력이 많은 곳은 다시 또 찾아가도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는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은 도시다. ‘왜 진작 가지 않았을까’ 하고 뒤늦게 후회하게 된 도시, 좀 더 일찍 가지 못해 안타까운 도시이기도 하다. ‘다음에 가자, 시간 많을 때 여유 있게 가지 뭐!’라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뒤늦게 가 본 것이 못내 아쉽다. 여행책자에는 대부분 ‘프랑스에서 치안이 가장 안 좋은 도시,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함’이라는 식으로 악평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기에 자꾸만 ‘다음에 가자’고 미뤄왔다. 하지만 큰맘 먹고 막상 가 보니, 내게는 파리 못지않게 흥미롭고 매혹적인 도시가 되었다. 다음에 가기엔 너무 아까운 도시, 가 보면 사진이나 여행책자의 이미지보다 백배 좋은 도시가 바로 마르세유다.
남부 유럽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
리옹에서 며칠 머무르다가 마르세유로 가는 기차를 탔다. 테제베를 타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테제베를 타고 가면 파리에서 리옹까지가 2시간, 리옹에서 마르세유까지가 1시간40분 정도 걸린다.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직행하는 테제베로는 3시간30분 정도, 완행열차로는 5시간16분이 소요된다.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승용차를 이용하면 무려 7시간이 넘게 걸린다.
한밤중에 마르세유 기차역에 도착하면 초행길인 데다가 파리처럼 불야성의 도시는 아니라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지만, 낮에 도착하면 전혀 위험한 도시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치안이 나쁜 도시, 급격한 슬럼화가 진행되는 도시’라는 오명은 마르세유의 과거를 향한 것이다. 지금 마르세유는 그야말로 남부 유럽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유로-지중해 프로젝트(Euro-Mediterranean Project), 즉 마르세유를 유럽과 지중해의 중심도시로 만들려는 대대적인 도시계획이 성공하면서 마르세유는 ‘쇠락한 옛 항구도시’의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벗고 여러 국제기구와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으며 건축가들의 다양한 실험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마르세유는 일대 변신을 꾀했다. 과거의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치안이 좋지 않은 항구도시’의 이미지로부터 탈피하여 남부 유럽의 새로운 문화적 중심이자 신구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흥미로운 도시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인구의 4분의 1이 이주민이나 외국인 출신이라는 것이 과거에는 불화와 위험의 신호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변화와 다양성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랑스 본토 출신이 아닌 이주민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바로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사람들이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폴란드, 터키, 루마니아,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마르세유. 그에 따라 가톨릭, 이슬람교, 유대교, 개신교, 힌두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마르세유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어우러져 더욱 변화무쌍한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풍요로운 문화접변의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