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닐 때 자원봉사활동 삼아 탈(脫)학교 청소년에게 공부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친해진 은미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은미를 18살부터 쭉 지켜봤습니다. 은미는 저를 만나기 전에 이미 한 번 임신을 했다가 낙태했습니다. 저를 만나고 나서도 두 번 더 아이를 가졌습니다. 한 번은 유럽 어딘가로 입양 보내고, 한 번은 지웠습니다.

“피임 좀 하지.” 야단을 친 적이 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신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는 겁니다. 은미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마다 “이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함께 기르자”는 얘기만 들었다면 당장 낳아 길렀을 거랍니다. 세 번째 임신을 했을 때에는 혼자서 아이를 길러 보겠다는 결심도 했다고 합니다.

은미가 그 당시 저에게 보낸 메일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쌤, 저희 엄마는 저를 낳아서 후회한다고 만날 얘기했어요. 저는 아이를 낳으면 사랑으로 키워주겠다고 어릴 때부터 다짐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겼는데 낳을 수가 없어요. XX 언니 말로는 배 불러지면 회사에서 잘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번에는 제 아이를 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제가 너무 어리석은 것 같아요.’

지금은 은미의 나이도 20대 후반이 넘었습니다.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오래된 소망대로 2년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없습니다. 두 번의 낙태가 은미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는 게 의사의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지난주 주간조선 기사 ‘모든 아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를 쓰면서 내내 은미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은미는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길러 볼 기회를 세 번이나 놓치게 됐는지, 은미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지 말입니다. 만약 은미에게 “실수로 생긴 아이라도 낳기만 하면 잘 기를 수 있게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은미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은미 같은 ‘일탈적’인 사례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혼인 건수는 줄어들고 결혼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꼭 출산은 결혼 후에 벌어져야 하는 일일까요?

지난주 기사와 함께 실린 프랑스 전 법무장관 라시다 다티의 사진이 대신 대답합니다. 라시다 다티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장관 재임 시절에 아이를 가져 낳았습니다. 지금도 혼자서 아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한 프랑스의 슬로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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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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