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교보문고 합정점의 만화책 코너.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교보문고 합정점의 만화책 코너.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27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인근에 새로 문을 연 교보문고 합정점. 주말을 맞아 서점으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한번씩 꼭 들러 보는 코너가 있었다. 서점 한구석에 자리 잡은 만화책 코너다.

이곳에서 사이좋게 만화책을 살펴보던 30대 직장인 커플 김정혁·한희영씨는 오후에는 만화카페에 가서 만화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최근 몇 년 사이 만화책을 사는 일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만화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생 돼서 거의 안 읽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다시 만화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김씨가 주로 읽는 만화는 웹툰. 좋아하는 웹툰이 만화책으로 출간되면 구입하기도 한다.

한동안 한국 만화책시장이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곤 했다. 그러나 요 몇 년 새 분위기가 달라졌다. 교보문고가 지난 5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만화책 판매량은 판매량이 집계된 이후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지난해 교보문고가 판매한 만화책은 130만여권에 달했다. 2009년에 120만권이 팔린 뒤로 만화책시장은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던 것이 2015년에 반등하기 시작해 2016년에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만화책을 가장 많이 구입한 계층은 20~30대 젊은층이었다. 만화책을 구입한 사람 중 20대는 30%, 30대는 31%를 차지했는데 30대의 증가 폭이 눈에 띈다. 10년 전인 2007년만 하더라도 만화책을 사는 30대는 25%가 채 되지 않았는데 10년 사이 30대의 만화책 구매량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전통적으로 만화책을 많이 사 읽는다고 여겨지던 10대의 만화책 구매량은 확 줄었다. 2007년만 하더라도 전체 만화책 구매자 중에 17%가 10대였는데 지난해에는 6.5%에 그쳤다. 만화책 구매자의 연령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얘기다.

어떤 만화책이 많이 팔렸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2016년 한 해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일본의 만화가 오다 에이치로가 그린 ‘원피스’ 80권이다. ‘원피스’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만화책이다. 2위는 일본 만화가 아즈마 기요히코가 그린 ‘요츠바랑’ 13권, 3위는 일본 만화가 ONE이 쓴 ‘원펀맨’ 10권이다. 1, 2, 3위 모두 만화책시장에서 원래 강세를 보이던 일본 만화책이 차지했다.

만화책 장르의 다양화

그러나 만화책 판매량이 역대 최고를 달성한 데는 전통적으로 많이 팔리던 일본 만화책보다 다른 데 이유가 있다. 웹툰, 그래픽노블 같은 새 장르의 만화책이 많이 팔렸고 영화, 드라마와 관계가 있는 만화책이 많이 팔렸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순위 5위는 한국 웹툰작가 시니가 쓴 ‘죽음에 관하여’ 1권이다. 9위는 미국 그래픽노블 작가 마크 밀러가 쓴 ‘시빌 워’다. 웹툰과 그래픽노블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만화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어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집계된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자.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만화화된 책이 5월 한 달간 제일 많이 팔린 만화책으로 기록됐다. ‘너의 이름은。’은 일본 국내에서만 흥행 수입 248억엔(2500억원)을 벌어들여 역대 전체 영화 흥행 수입 4위를 기록한 히트작이다. 8위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원작으로 하는 만화책이 차지했다.

한마디로 말해 만화책시장이 다양화됐다. 만화평론가인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전통적인 출판 만화 시장이 쇠퇴하는 대신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진입하면서 만화 시장 전체의 크기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웹툰이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고 다시 만화책으로 출간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리고 웹툰이 만화화된 책이 잘 팔린다.

2015년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 중 하나는 웹툰작가 최규석의 ‘송곳’이었다. 2014년에는 아예 베스트셀러 1위에 웹툰작가 윤태호의 ‘미생’이 자리 잡았다. 박 교수는 “웹툰의 성장은 ‘만화의 일상화’ 현상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웹툰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만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웹툰 독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만화가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는 얘기가 된다.

웹툰은 전통적인 만화책시장의 출간 방식도 깨트렸다. 전통적으로 만화책시장은 일본 만화책시장에서 유래됐듯 ‘잡지 연재→출간’ 형태를 유지했다. 만화가들은 잡지 연재의 벽부터 뚫어야 했다. 그러나 웹툰시장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인기를 얻기만 하면 만화책 출간은 어렵지 않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늘어나니 자연히 만화책 판매량도 늘어났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한국 만화책시장에 유입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우선 그래픽노블의 성장이 눈에 띈다. 그래픽노블이란 소설과 만화를 결합한 장르로 북미 지역에서 인기를 얻는 만화 장르다. 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가 그래픽노블 작품들을 원작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 작품들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래픽노블 장르가 알려졌고, 수퍼히어로 장르 외에도 다른 장르의 그래픽노블이 출간돼 전체 만화책 판매량을 증가시키는 데 일조했다.

무엇보다 만화와 영화, 드라마 간 장르의 벽이 깨지고 서로 도움을 주고 있는 현재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상황이 만화책 판매량을 늘렸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얻거나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만화책으로 출간되면 금세 베스트셀러에 오르곤 한다. 올해 들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너의 이름은。’은 인기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만화책이다. 애니메이션을 본 팬들이 만화책도 읽으며 작품의 감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원작인데 영화로 개봉한 ‘공각기동대’ 같은 경우도 만화책으로 재출간돼 인기를 얻었다. 영화 ‘로건’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울버린: 올드맨 로건’도 같은 맥락에서 많이 팔렸다. 교보문고 구환회 MD는 “다양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만화책시장의 성장을 견인한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최근 만화책시장은 단순히 판매량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장르가 다양해졌고, 다양한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다. 곳곳에 생기는 만화카페는 만화 읽는 것이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적 취미활동이 됐다는 증거다. 만화책시장이 커지니 다양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작가 데뷔 기회를 가지기 어려운 만화가들이 독자들의 후원을 받아 책을 펴내기도 한다. 앞으로 만화책시장이 더 커지고 다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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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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