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62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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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도시 이야기] 베를린

한 달쯤 살아 보면 더 좋은 ‘휘게’의 도시

정여울  정여울 작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저자  

▲ 베를린 박물관섬의 중앙에 자리 잡은 베를린 돔(Berliner Dom)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베를린 시민들에게 이 건물 광장은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을 즐기기에 좋은 휴식의 공간이다.
최근 ‘욜로족’이라든지 ‘휘게 라이프’라는 낯선 용어가 자주 들린다. 욜로(Yolo)란 한 번뿐인 당신의 삶(You only live once)을 가리키고, 덴마크어로 웰빙을 뜻하는 휘게(Hygge)는 무언가 아늑하게 감싸주는 듯한 행복감, 성취감보다는 느릿느릿하고 소박한 만족감을 가리킨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를 외치던 행복의 기준점이 이제 ‘더 느리게, 더 적게, 더 느슨하게’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욜로와 휘게는 일맥상통한다. ‘한 번뿐인 삶’이니 굳이 아등바등하며 성취에 집착하지 말고, 먼 훗날의 막연한 행복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작은 행복을 만들어가자는 뜻으로 들린다. 아기자기한 북유럽풍 인테리어 소품을 방안에 가득 채워놓음으로써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명품이나 유행하는 상품들이 전혀 없어도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요소들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청춘을 반납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의 휘청거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업무의 결과물이나 성취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디마디를 한 올 한 올 즐기고 곱씹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 그것이 ‘휘게’가 아닐까.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게 ‘휘게 라이프’를 나도 모르게 실천하도록 만들었던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베를린에서 나는 한 번도 서두르거나 긴장하거나 허둥대지 않았다.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이런 한가로운 의태어가 의외로 잘 어울리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었다. 당시에는 직항이 없어 네덜란드 스키폴공항을 경유하여 베를린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그 한산함과 여유로움에 오히려 당황했다. 여기가 과연 국제공항 맞나 싶었다. 런던이나 뉴욕의 공항에서 겪는 까다로운 입국수속에 비하면 베를린의 공항은 그야말로 심플하기 이를 데 없었다.
   
   
▲ 베를린의 상징 포츠담 광장. 이곳에서는 다양한 무료 전시가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탄압한 예술가들을 추모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 베를린 구박물관(Altes Museum) 모습. 고대 그리스의 유물 컬렉션이 특히 볼 만하다.

   베를린 박물관 투어
   
   뉴욕의 존에프케네디공항에서 나는 1시간 넘게 기다란 ‘외국인 전용 입국 수속’ 라인에 서서 기다려야 했고, 런던의 히드로공항에서는 ‘런던에 도대체 왜 왔냐, 같이 온 사람과는 어떤 사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공항 직원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기까지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누구도 불친절하지 않았고, 어떤 불필요한 질문도 없었다.
   
   세상 모든 공항이 그렇다면 우리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훨씬 가볍고 자유로울 텐데. 그렇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나의 베를린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여유롭고 편안했다. 베를린도 런던이나 뉴욕처럼 분명 대도시인데 전혀 복잡하거나 바쁘거나 빡빡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물론 베를린을 ‘며칠 안에 다 훑어보자’라는 야심찬 계획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몇 다리 건너 알게 된 독일 유학생의 하숙집을 빌려 무려 5주나 베를린에 머물기로 했다. 무거운 짐을 끌고 숙소를 계속 옮겨다니는 여행에 지쳐 일단 베를린의 저렴한 하숙집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주말마다 조금씩 다른 도시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여행방식을 택했다. 5주간의 하숙비가 딱 60만원인 데다가 방도 매우 커서 한국의 웬만한 원룸보다도 훨씬 싼 가격이었다.
   
   나는 우선 ‘베를린 박물관 투어’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첫 유럽 여행 때 급하게 단체여행으로 다녀온 터라 ‘여기 조금 더 천천히 구경하고 싶은데’라는 아쉬움을 가득 남긴 곳, 바로 베를린의 ‘박물관섬(Museumsinsel)’이었다. 동서양의 고대 유적이 가득한 페르가몬박물관, 박물관 건축 자체가 그리스 양식으로 지어진 구박물관, 고색창연한 이집트 유물로 가득한 신박물관, 서양회화의 걸작들이 모여 있는 국립회화관, 비잔틴미술의 절정기를 감상해 볼 수 있는 보데미술관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이다.
   
   베를린의 운터덴 린덴 지역에 있는 박물관섬의 하이라이트는 페르가몬박물관이다. 중앙 홀의 거대한 신전과 페르시아 유적은 세계의 다른 어떤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페르가몬박물관의 그리스 신전 계단에 앉아 생각에 잠기면 5분도 채 되지 않아 수천 년 전의 신화적 시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탄 듯한 환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박물관섬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클레오파트라 못지않게 이집트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왕비, 네페르티티의 흉상이다. 베를린 신박물관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마치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러 달려가듯이 네페르티티 흉상을 향해 직진한다.
   
   베를린 최고의 역사적 기념물은 브란덴부르크문이다. 건축가 카를 랑하우스가 그리스의 아테네 신전을 본떠 만들었지만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거리의 탁 트인 전망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베를린의 둘도 없는 상징물이 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한때 분열된 독일의 상처를 간직한 아픈 상징물이었다. 과거에는 프로이센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역사를 상징하던 브란덴부르크문이 독일 분열 당시에는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던 것이다. 브란덴부르크문은 프로이센제국의 승리의 상징에서 분열된 독일의 상징을 거쳐 이제는 통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역사적 의미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주변에 몰려드는 다채로운 사람살이의 풍경이다. 인력거를 끄는 사람, 쌍두마차를 타는 사람, 온몸에 페인트를 칠하고 행위예술을 하며 여행자들과 사진을 찍는 사람, 서커스를 하는 사람 등 수많은 인간군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브란덴부르크 광장은 언제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베를린에 갈 때마다 꼭 방문하게 되는 곳이 바로 홀로코스트 추모비다. 이 추모비의 정식 명칭은 ‘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 추모비’이다. 거대한 추모비 아래로 이어지는 지하계단 저편에는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반성하는 박물관이 이어져 있다. 석관들의 높이는 저마다 다른데 어떤 석관들은 여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토론을 해도 좋을 만큼 나지막하다.
   
   이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 역사의 트라우마를 성찰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철없는 아이들은 이 슬픈 상징물의 의미를 모르는지 징검다리 건너듯 석관에서 석관으로 폴짝폴짝 뛰어다니지만, 언젠가 저 아이들도 알게 되지 않을까. 베를린의 최고 알짜배기 땅에 일부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인의 뼈아픈 역사적 상처를 추모하는 거대한 공간을 만든 이유를.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기가 바로 베를린이구나’ 싶은 느낌을 강렬하게 전해주는 곳이 바로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이다. 한쪽에선 각종 집회가 열리고 있고, 한쪽에선 옛 동독의 가상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주는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곳. 이제는 사라진 나라 동독의 여권 스탬프를 찍어주며 ‘1유로’를 받는 동독 군인 복장의 배우들이 무너진 베를린장벽의 한 귀퉁이를 떼어낸 조형물 아래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 무슨 표어를 들고 있어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곳이다. 독일 분단 당시에는 쇠락한 광장이었지만 지금은 파리의 퐁피두센터로 유명한 렌조 피아노의 혁신적인 건축디자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베를린의 최고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제는 온갖 예술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는 ‘거리의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옛 베를린장벽도 베를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 베를린 필하모니.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연중 내내 볼 수 있고, 주변의 쿨투어포럼(Kulturforum)이라는 회화박물관에는 베르메르의 그림도 전시돼 있다.

▲ 베를린 국립회화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소녀.

   내 마음의 랜드마크는?
   
   물론 이런 거대한 랜드마크들도 좋지만, 유명한 장소는 아니더라도 베를린에는 내 마음의 랜드마크가 세 곳이나 있다. 아무리 정신없는 대도시라도 대자연의 위대한 숨결을 담아낼 수 있음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공원 틸파크(Thielpark), 내가 머물렀던 베를린 북쪽 외곽의 작은 마을 말로(Mahlow), 그리고 브레히트의 묘지다. 베를린자유대학 근처의 틸파크에는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다. 베를린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틸파크는 공원이라는 느낌보다 ‘숲’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순간 드넓게 펼쳐지는 거대한 숲의 청신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충동적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말로는 분명 행정구역상 베를린인데도 대도시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그림 같은 전원주택과 울창한 숲, 게다가 조랑말들이 뛰어노는 목장까지 펼쳐져 있는 신기한 곳이다. 나는 매일 베를린 시내에서 이곳저곳 쏘다니다가 밤이 되면 마치 한적한 시골길 같은 말로의 하숙집으로 돌아오며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묘지.

   브레히트의 묘지는 베를린 미테(Berlin-Mitte) 구역에 위치해 있다. 베를린에서 ‘이제 중요한 곳들은 다 봤다’고 느꼈을 때쯤, 지도 한구석에 정말 조그맣게 브레히트 묘지가 보였다. 위대한 극작가의 묘지라 화려한 묘비나 떠들썩한 꽃다발의 행렬을 상상했지만 너무나도 검소하고 소박하게 그냥 ‘베르톨트 브레히트’만 적혀 있는 비석이 오롯이 서 있었다. 아내와 함께 영면한 브레히트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무덤의 화려한 장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소. 당신이 머나먼 한국에서 여기까지 찾아와주니 나는 그저 반갑소.”
   
   베를린에서 내가 ‘휘게 라이프’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빨리빨리’의 습관을 자연스럽게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듯 보이는 대도시에서도 그런 느릿느릿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베를린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휘게’라는 느리고 여유로운 행복의 의미를 나는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베를린에 있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휘게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다. ‘이 도시를 며칠 안에 다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못 보면 내일 보면 되고, 내일 못 보면 다음주에 봐도 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산책하듯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를린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에는 단지 장소 자체에 대한 매혹을 넘어 ‘그때 그곳에 마치 동네 주민처럼 살았던 나 자신’에 대한 애착이 묻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휘게’의 핵심은 물질적인 넉넉함이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이다.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만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무엇이 없어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베를린에 있을 때 내가 그랬다. 경비도 넉넉하지 않았고 오히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을 때였지만,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나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이 아니라 목적이 없음에도 내 삶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충만함을 느끼는 것. 대단한 것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이 없어도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완벽하다고 느끼는 순간들.
   
   틸파크의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훌훌 벗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오리들과 함께 수영을 하던 사람들의 천진무구한 미소, 박물관에서 한 그림 앞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 없이 앉아 그림을 감상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나 자신의 모습, 하루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베를린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빛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며 걷고 또 걷던 시간들. 그 속에서 나는 내 마음 속에 이미 오래전에 싹을 틔운 또 하나의 월든을 발견했다.
   
   
▲ 베를린 장벽의 벽화 앞에서 그림과 똑같은 포즈를 장난스럽게 취하는 여행자들.

▲ 거리에서 연주하는 젊은 버스커들. 베를린은 젊은 예술가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도시다.

▲ 베를린 벼룩시장은 워낙 규모도 크고 유명해서 빈티지 제품이나 골동품뿐 아니라 다양한 신상품들까지 함께 구경할 수 있는 거대한 마켓이 되었다.

   주말엔 빈, 프라하, 드레스덴으로
   
   여행조차도 마치 모범생이 기말고사 시험준비 하듯 철저히 계획을 짜던 내가 베를린에서는 왜 그토록 여유를 부렸을까. 그것은 항상 ‘목적’과 ‘결과’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내 삶의 방식을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지쳐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스케줄표를 먼저 세워놓고 어떻게든 그것에 내 몸을 끼워맞추려 했던 과거와 달리, 베를린에서 나는 내 몸과 마음에 스케줄을 맞췄다. 사실 스케줄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오늘은 여길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숙소를 나와 하염없이 걸어 다닌 적도 많았다. 나는 끊임없이 무리한 계획을 짜고 ‘그 계획과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내 삶’을 질책해왔던 것이다. 베를린에 다녀온 뒤 나는 일정표를 짜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냥 최소한의 약속과 원고 마감일자만 휴대전화 달력에 표시해놓고, 나머지 시간은 그날그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고 마음먹었다.
   
   베를린의 뜻하지 않은 휘게 라이프는 내 삶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먼저 철저히 계획하고 그 계획에 내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먼저 듣고 그것에 따라 내 스케줄을 바꾸는 삶. 나는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고 ‘도시 속에서도 가끔은 내 마음의 월든을 즐길 수 있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말로 사람들처럼 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수는 없지만 내 방안에 나만의 작은 식물들을 가꾸게 되었다.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과감히 스케줄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직도 덴마크 사람들이 말하는 휘게 라이프의 이상향에 다다르려면 한참 멀었지만, 더 이상 ‘바쁨’ 때문에 삶의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바쁘다는 것은 외부의 스케줄에 내 삶을 저당 잡힌 상태이며 지나친 분주함은 결국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난생처음 ‘외국에서 오래 살아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한국 음식이고, 외국어 실력도 시원찮지만, 베를린은 나처럼 외국에 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도 활짝 열려 있는 도시였다.
   
   한 달 넘게 베를린에 살았음에도 별다른 위험 상황이나 불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살림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단 장바구니 물가가 워낙 싸서 최고급 치즈나 수제햄, 밀맥주 등을 원하는 만큼 잔뜩 사도 30~40유로면 충분했다. 한 번 장을 봐두면 사나흘치 식사는 거뜬히 마련할 수 있었다. 주말에 빈, 프라하, 드레스덴 등으로 잠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에도 좋았다. 마치 액자소설처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베를린이라는 커다란 여행 속에 또 다른 미니어처 여행을 소중하게 끼워 넣는 느낌이 참 좋았다.
   
   사람들도 하나같이 친절했다.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집이 아닌 곳을 ‘집처럼’ 느꼈다.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처럼 살았다. 이방인의 눈으로 허둥지둥 돌아다니기보다는 마치 익숙한 마을주민처럼 골목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우리 동네 산책하듯 베를린 곳곳을 쏘다니던 그 느낌이 참으로 아늑했다. ‘내가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던 때였지만, 베를린에서 생각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지내 보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 더 욕심을 줄이고, 느리지만 담대하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삶이 문득 힘겹게 느껴질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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