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官이 낳은 버블 한국에만 있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산업·경제·경영 전문가들을 접촉했습니다. 그들에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대답은 대부분 엇비슷했습니다. 2016년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던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통해 알게 됐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산업구조가 재편될 것이라는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고 있습니다. 세계 주요 국가들도 속속 대응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미국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일본의 ‘소사이어티 5.0’ 등입니다. 모두 초연결사회의 도래, 즉 현실과 가상의 융합을 골자로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에 빠져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자문을 구한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개념과 내용을 긴급 수입한 겁니다. 우리는 자생적인 이론이 나타나기 어려운 풍토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제기된 하나의 주장이나 이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는 그의 이 말이 우리 4차 산업혁명의 현주소를 가장 잘 진단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내세울 만한 이론도 없고, 축적된 데이터나 기술도 없으니 남의 것을 일단 도입해 따라한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5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상의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은 더 이상 석유가 아니라 데이터”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미국 글로벌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로 들어가는 거대 관문을 차지한 플랫폼 기업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이용자들이 관문을 넘을 때마다 내놓는 데이터를 축적해 기술력의 원천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혁명’이라는 말을 내세우지 않는 그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앞서 나가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을 꺾고 올해 바둑 세계 1위 커제를 울게 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탄생 배경 역시 이 데이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촉발됐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정말 혁명이라면 우리에겐 지금보다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합니다. 위원회를 세우고 TF를 꾸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 그중에서도 플랫폼 관련 기술과 데이터에 대한 관심과 투자입니다. 남의 방법을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로 촉발된 국민적 관심이 구호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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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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