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난(海南) 사랑’이란 성인가요가 있습니다. ‘코발트빛 바다 늘어진 야자수 아래 아롱만(亞龍灣) 해변에서 처음 만난 남국(南國)의 아가씨’로 시작하는 걸쭉한 트로트입니다. 성인가요 덕분인지 한국에서 하이난다오(海南島)는 2, 3류 관광지란 인식이 강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이난다오가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부동산 개발 현장임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지난주 주간조선이 국내 최초로 소개한 세계 최대 인공섬 ‘하이화다오(海花島)’를 조성 중인 곳도 바로 하이난다오의 해안가입니다.

상하이에 있는 한 중국인 지인이 “하이난다오에 꽃을 닮은 인공섬이 있다”고 소개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가서 그 엄청난 규모를 접했을 때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코발트빛 바다 위에서 거대한 빌딩군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워낙 커서 현장에서는 인공섬이 어떤 모양인지 알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섬 옆 홍보관에서 공중 촬영한 항공사진을 확인하고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다 위에서 피어오른 한 떨기 모란꽃이었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이 있습니다. 하이화다오는 광둥성 선전에 본사를 둔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쉬자인(許家印) 헝다(恒大)그룹 회장의 머릿속에서 나온 구상입니다. 중국 최고의 명문 축구단인 ‘광저우헝다타오바오’의 구단주이기도 한 쉬자인 회장은 UAE 두바이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를 모방해 인공섬을 만들기로 마음먹습니다. 똑같이 따라하면 체면이 상하니 인공섬의 모양만 야자수에서 모란꽃으로 바꿉니다. 대신 크기는 세계 최대로 키우는 식입니다. 중국 기업가들의 사업 방식이 대개 이렇습니다.

하이난다오 동부 보아오(博鼇) 역시 이런 식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평범한 시골 어촌에 불과한 보아오는 장샤오쑹(蔣曉松)이란 기업가가 개발하면서 천지개벽했습니다. 한적한 어촌 마을에 호텔과 컨벤션센터가 자리 잡더니 최고급 휴양지로 탈바꿈했습니다. 2001년부터는 스위스의 ‘다보스포럼’을 모방한 ‘보아오포럼’이란 국제회의가 매년 이곳에서 개최됩니다. 중국의 국력이 일취월장하면서 매년 봄 보아오포럼이 열릴 때면 하이난다오를 찾는 세계 유명 기업가, 정치인들이 줄을 늘어섭니다. 장샤오쑹이란 기업인의 상상력이 바꿔놓은 모습입니다.

물론 이런 사업 방식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짝퉁’ ‘거품’ ‘과잉투자’라고 평가절하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성경의 말처럼 과거 한국이 고도성장할 때도 이런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소위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입니다. 현대의 정주영과 삼성의 이병철은 모두 그렇게 세계 굴지의 기업을 키워냈습니다. 요즘 중국을 찾을 때마다 중국 기업가들의 빠른 의사결정 속도와 통 큰 배포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중국 최남단 하이난다오에서까지 이런 생각을 떠올릴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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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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