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에 30년 넘게 있다가 정년퇴직한 전직 중학교 교사입니다. 김 기자 기사 읽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전화했습니다. 이 한마디입니다. 교육은 절대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요. 이 평범한 명언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지난주 커버스토리에서 다룬 ‘9개 쟁점으로 본 외고·자사고 폐지론’에 대한 얘기입니다. 70대 독자의 요구는 절박해 보였습니다. 이분은 포인트가 좀 달랐습니다. 어느 한 편에도 서지 않았습니다. 외고·자사고가 존치해야 한다,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폐지론에 대한 생각을 묻자 “물론 내 개인 견해는 있지만, 워낙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 함부로 말할 사안이 아니다”라고만 하더군요.

다른 독자들의 반응도 꽤 됐습니다. 첨예한 이슈답게 숨은 독자, 숨은 지인들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 각자 주장을 폈습니다. 폐지론자와 유지론자가 팽팽했고, 그 이유도 제각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70대 독자의 피드백이 가슴 깊이 꽂혔습니다. 전화를 하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고, 한마디 한마디 숙고를 거듭하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교육자라는 자리가 그런 것이겠지요.

독자 반응을 들으며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치사범과 경제사범은 있는데, 교육사범은 왜 없을까?’ 하는. 물론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사범’으로 분류키 어렵겠지만, 결과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잘못된 교육정책의 폐해는 정치사범과 경제사범의 그것을 능가합니다. 교육정책만큼 한 인간에게, 한 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분야가 또 있을까요? 하지만 잘못된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습니다. 교육부 장관의 임기는 짧고, 그마저 임기를 다 채우고 떠나는 이도 드뭅니다. 떠나버리면 그만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또 새로운 정치논리로 흐르기 십상이지요. 교육정책 역시 정치판에서 하는 대로 이전 정부 흔적 지우기 식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외고·자사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1974년 고교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다양성과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로 외고 등 특목고가 먼저 생겼고, 얼마 안 있어 자사고가 생겼습니다. 최초의 자사고는 2002년 설립된 민족사관고등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이니 자사고의 역사는 15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15년 사이에도 교육정책은 오락가락 춤을 췄습니다. 서울시가 대표적이지요. 보수(공정택)-진보(곽노현)-보수(문용린)-진보(조희연)가 신기할 만큼 교대로 선출되면서 외고·자사고도 확대·축소를 오갔지요.

외고·자사고는 분명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대감 속에 환영받으며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사교육 광풍의 주범이자 학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처럼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아이들과 학부모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형국입니다. 학생이 무슨 죄이며, 그 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무슨 죄인가요? 충분한 정책적 논의와 검증 없이 근시안적으로 교육정책을 집행한 교육행정가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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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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