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69호] 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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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人] 소문난 와인 매니아 배병우 작가의 스페인 사랑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낮술을 부르는 날씨였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고 후텁지근했다. 지난 7월 31일 정오께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사진작가 배병우(68)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소문난 와인 매니아이자 미식가이다. 자신이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남들 먹이는 것도 좋아한다. 그의 작업실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손님을 치를 때면 그의 고향인 여수와 제주에서 싱싱한 해산물이 상자째 올라온다. 무거운 카메라에 단련된 근육질 팔뚝으로 해산물을 해체하고 요리를 하는 것도 즐긴다.
   
   작업실을 찾는 손님들은 다양하다. 젊은 제자부터 명사들까지, 그의 음식은 나이·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음식 무제한, 술 무제한’이 그의 주방의 모토이다. 10~20명은 보통이다. 100명이 온 적도 있다. 그러니 이 집에서 소비되는 포도주는 셀 수도 없다. 독일 리즐링 등 직접 수입하기도 한다. 스페인 리호아의 와이너리에서 소나무 사진으로 라벨을 만들어 들여온 적도 있다. 이런 그가 선택한 포도주는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밥 먹으면서 합시다. 여기가 별 4개 레스토랑이에요.”
   
   작업실 2층엔 아예 널찍한 주방이 갖춰져 있었다. 큰 오븐과 두 대의 냉장고가 보였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방이 익숙하게 움직였다. 모두 그의 작업을 도와주는 조수들이지만 주방에선 셰프로 변신했다. 그도 직접 칼을 잡고 나섰다. 손님 초대에는 이골이 난 듯했다. 스시를 만들 만큼 요리 실력을 쌓고 나간 조수도 있다고 한다.
   
   책으로 둘러싸여 도서관 같던 공간이 금방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됐다. 오늘의 메뉴는 제주에서 공수해온 고등어구이, 양파를 곁들인 안심구이, 해물야채전, 샐러드, 다섯 가지 나물 요리에 청국장이었다. 물론 포도주가 빠질 리 없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스페인산 백포도주와 독일 리즐링으로 더위를 식히며 음주 인터뷰가 이어졌다.
   
   “여름엔 역시 백포도주죠. 샤르도네이도 좋고 소비뇽 블랑 품종도 좋지만 대서양의 기운을 담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알바리뇨 품종이 제가 좋아하는 해산물 요리에 잘 맞아요. 산미와 과일향이 풍부한 백포도주면 폭염에도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포도주와 음식을 꼽았다. 음식도 포도주도 화장 안 한 얼굴처럼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음식이 그렇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요즘 그는 스페인 포도주에 꽂혔다. 스페인은 그에게 행운의 나라이다. 유럽에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린 곳이 바로 스페인이다. 스페인 전시 이후 유럽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국내보다 유럽 활동이 왕성하다. 요즘엔 프랑스 칸시의 요청으로 칸에서 마르세유까지 지중해 연안을 필름에 담고 있다. 내년 4월께 사진집이 나올 예정이다.
   
   “2006년 스페인 티센미술관에서 전시 제의가 왔어요. 뭔지도 모르고 작품 보내놓고 가 보니 세계 3대 사진 페스티벌인 ‘포토 에스파냐’의 개막전인 겁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제 전시를 보고 알함브라궁전의 디렉터가 찾아와서 궁전을 찍어달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오케이를 했죠. 30대 때 스페인 여행을 갔다가 알함브라궁전을 보고 반해서 그곳을 찍는 것이 제 꿈이었거든요.”
   
   
   절멸 위기에서 살려낸 포도나무
   
   2008년까지 스페인을 오가며 알함브라궁전을 찍었다. 24시간 프리패스였다. 사람들은 건물만 주목했지만 그의 눈에는 나무가 먼저 들어왔다. 궁 뒤편 정원에서 가장 큰 나무는 소나무였다. 포도주와 도시락을 싸들고 궁에 들어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을 지켜봤다. 그 시간 동안은 그가 궁의 주인이었다. 2년 반 동안 작업을 하면서 스페인을 훑고 다녔다. 포도주와 음식은 최고였다. 특히 궁이 있는 그라나다 지역은 에피타이저 요리인 타파스로 유명한 곳이었다. 포도주를 시키면 타파스가 공짜였다.
   
   “20유로만 있어도 충분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어요. 그중에 단골집이 올리바라는 곳이었어요. 늘 현지인들로 가득 찼어요. 머리 큰 동양인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기억할 겁니다. 하하하.”
   
   그가 이번 여름을 즐겁게 만든 새로운 포도주를 발견했다면서 냉장고에서 새 병을 꺼내왔다. 알바리뇨와 함께 스페인 토착품종인 ‘카이뇨 블랑코’ 품종으로 만든 백포도주였다. 카이뇨 블랑코는 11세기까지만 해도 알바리뇨와 함께 갈리시아 지방의 대표였다. 그루당 생산량이 적고 병해충에 약하다 보니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절멸된 위기에 처한 나무를 살리기 위해 한 와이너리와 스페인 정부가 나섰다. 갈리시아 지방의 대표 와이너리 중 하나인 ‘테라스 가우다’와 스페인 국립연구회의(CSIC)가 1989년부터 나무 복원 작업을 진행한 끝에 2011년 처음으로 ‘라 마르’라는 라벨을 붙이고 6700병이 생산됐다. 드릴로 땅을 뚫어야 할 만큼 단단한 땅에서 자라고 재배도 까다롭다고 한다. 세계서 유일한 카이뇨 블랑코 와인이다. 현재는 2만병 정도가 생산되고 그중 국내에는 와인수입업체 ‘인터불고 루에다’를 통해 2000병 정도가 들어온다고 한다.
   
   “아주 독특해요. 수분을 머금은 대서양 바람을 맞아 미네랄이 풍부하고 자연에 가까워요. 땅과 햇빛이 만든 맛이에요. 독일의 백포도주도 사이다처럼 깨끗하지만 이 맛은 못 내요. 사실 포도주에 발효촉진제, 방부제 등 수십 가지 첨가물이 들어가요. 첨가물이 안 들어갈수록 순수한 맛이 납니다.”
   
   그가 ‘라 마르’를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힘들게 복원한 나무에서 만들어낸 ‘라 마르’는 제주 곶자왈 살리기도 함께한다. 포도주 판매 수익금 일부를 기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어휴! 제주도를 생각하면 화가 나요. 지하수층이 깨지면 제주도는 끝납니다. 곶자왈이 왜 중요한 줄 아세요? 용암이 만든 곶자왈은 지하수층이 아주 풍부해요. 그 물 때문에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거지. 습도를 유지한 덕분에 아열대부터 온대 식물이 동시에 살 수 있는 겁니다. 곶자왈을 보호한다는 것은 제주도의 물을 보존하고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이에요. 물장사한다고 저렇게 물을 뽑아내다가는 다 망가집니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죽어가는 포도나무 하나 살리는 데도 20년 공을 들이는 스페인을 보라고 말했다. 그도 27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는데 하루 종일 걸어도 포도밭이 이어지더란다. 2년여 전에는 산티아고길에서 멀지 않은 소리아 근처에서 소나무 숲을 만났다. 수령이 500년은 족히 돼 보이는 소나무가 죽죽 뻗어 있었다. 자연의 선물을 아무 노력 없이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소나무 작가 배병우’도 세계에 알려지기까지 30여년 인고의 세월이 있었다. 2시간에 걸쳐 그는 아주 천천히 점심을 즐기면서 포도주 한 병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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