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0호]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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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이원식당

태안 보물창고 갯벌서 건진 보양식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criscook@hanmail.net 

▲ 대표메뉴 박속밀국낙지탕
뜨거운 여름! 누군가에게 푸른 바다는 낭만의 휴가이며 어떤 이에게는 행복한 추억이다. 그런가 하면 충남 태안군 이원면 포지리의 안국화(59)씨에게 바다는 맛의 보물창고다. 날마다 물때에 맞춰 싱싱한 산낙지를 구하기 위해 인근 갯벌로 향하는 그녀의 손엔 어김없이 맛난 안주 보따리가 들려 있다. 썰물에 낙지 잡느라 애쓴 지역어촌계 주민들을 위해 그녀가 정으로 준비한 것이다.
   
   충남 태안반도의 북쪽 끝자락, 면 전체가 북쪽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이원면은 바다와 갯벌·염전으로 둘러싸인 지형으로 대하·우럭·꽃게·전복·주꾸미 등 풍요로운 먹거리를 자랑한다. 이 지역은 특히 해마다 늦봄에서 가을까지 낙지가 무한정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낙지만 잡아도 아이들 서너 명 대학은 무난히 보낼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니 태안 여행길에 나섰다면 이곳의 맛난 낙지 요리는 꼭 챙겨야 하지 않을까.
   
   이원면 주민들은 흔하게 잡히는 갯벌낙지를 이용해 다양한 음식을 즐겨왔는데 박속밀국낙지탕도 그중 하나다. 한여름 더위를 나기 위해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었던 친근한 음식, 박속밀국낙지탕은 박속을 넣고 시원하게 끓인 국물에 기름진 갯벌에서 잡은 낙지를 데쳐 먹은 뒤 칼국수와 수제비를 끓여 먹는 음식이다.
   
   “무도 시원하지만 박속의 깔끔한 맛엔 비교할 바가 못 되지요. 박속은 낙지와 천상의 궁합이라 오래전부터 탕으로 즐겨 먹었어요.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로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넣으면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지요.”
   
   
▲ 대표 안국화씨

   “신토불이 태안 지역의 재료만 사용”
   
   이원식당은 이곳의 향토음식인 박속밀국낙지탕을 처음 식당 상차림에 올렸다. 50여년 전 안국화씨의 시어머니 윤봉희씨(작고)가 자그마한 가정집을 개조해 문을 열었고, 며느리 안씨는 시어머니를 돕다가 1986년 대물림을 받았다. 그녀가 갯벌에서 갓 잡은 싱싱한 낙지를 받아와 끓여내는 박속밀국낙지탕은 전국의 미식가들을 불러모으는 원기회복 별미로 유명세가 대단하다. 길쭉한 이원반도의 꽤 안쪽에 자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 휴가철이면 160석 규모의 자리가 꽉꽉 들어차고 다른 계절에도 손님이 꾸준히 든다고 한다.
   
   오래전 창업했던 건물은 너무 낡아 수리하기도 어려워 13년 전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현재의 이원식당은 창밖으로 푸른 들판의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분위기도 깔끔한 편. 메뉴는 낙지볶음, 생선매운탕, 백반 등 다양하게 준비해 두고 있지만 식당 안의 손님들은 거의 박속밀국낙지탕을 즐기는 모습이다. 어르신들부터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손님들까지 커다란 냄비에 국물을 보글보글 끓이면서 낙지, 칼국수, 수제비를 무척 맛있게 먹는 모습에 군침이 절로 돈다.
   
   주문을 하면 박속밀국낙지탕을 끓일 큰 냄비를 불에 올려준다. 상차림은 간단한 편으로 오이지, 김치류, 나물, 그리고 낙지를 찍어 먹을 소스가 전부. “박속밀국낙지탕은 많은 반찬이 필요 없어요. 고추 썰어 넣은 집간장 소스와 새콤한 초고추장 소스에 입맛 따라 찍어 먹으면 산뜻하게 보양할 수 있지요.” 안씨는 따로 육수를 뽑지 않는다고 한다. 낙지와 박속 특유의 깨끗하고 담담한 맛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숭덩숭덩 자른 박속에 양파와 대파 등 채소만 더한다.
   
   채소 국물이 펄펄 끓으면 주인장이 수족관에서 싱싱한 산낙지를 건져와 넣어주면서 낙지는 오래 삶으면 질겨지니 빛깔이 발그스름해질 즈음 바로 건지라고 당부한다. 정말 빛깔이 변하자마자 건져 보니 낙지에 윤기가 좔좔! 갯벌낙지 특유의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매끈한 식감이 기가 막히다. 낙지 머리는 국물에 다시 넣고 좀 더 익혀 잘라 먹으면 낙지 특유의 향을 진하게 즐길 수 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낙지 데친 국물에 수제비와 칼국수를 넣어 익히면 밀가루의 시원한 맛이 더해져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칼국수는 부드럽게 후루룩, 수제비는 쫀득쫀득! 푸짐하고 개운한 이 한 냄비면 힘이 펄펄 나서 여름 더위쯤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원면의 낙지는 6월부터 알에서 부화되어 커가면서 겨울까지 큰 낙지로 자란다. 낙지의 크기가 커지면서 낙지 가격도 2주에서 한 달마다 변동되기 때문에 박속밀국낙지탕에 넣어주는 낙지의 마릿수도 달라진다. 낙지 크기가 작을 때는 마릿수를 넉넉히 넣어주고 가을에 다 자랐을 때는 1인분에 한 마리에서 한 마리 반을 넣어주는 식이다. 낙지의 크기가 커질수록 국물 맛은 시원해지지만 낙지 자체의 식감은 7~9월 사이가 가장 부드럽고 먹기 좋은 데다가 태안반도로 피서를 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여름 휴가철이면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한다. 6월에는 일부러 야들야들한 새끼 갯벌낙지를 먹으려는 낙지 매니아들이 줄을 잇기도 한다. “낙지가 조그마할 때는 1인분에 20마리씩도 드려요. 드시려는 분들은 많고 새끼 낙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예약이 필수지요.”
   
   낙지가 기력 증진에 좋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쓰러진 소에게 살아 있는 낙지 한두 마리만 먹이면 금세 일어선다는 얘기는 미식가들이 낙지 예찬론을 펼 때 흔히 동원하는 표현이다. 특히 갯벌에서 잡은 낙지는 갯벌의 온갖 영양소를 섭취한 게나 갯지렁이 등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특별하다.
   
   이 집 박속밀국낙지탕의 인기 비결은 원조집이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태안 지역의 신토불이 재료만을 엄선해 요리하는 데 있다. “우리 집은 꼭 인근에서 나는 산낙지만 사용해요.” 더러 낙지가 부족할 때면 음식을 못 팔더라도 이 지역의 진짜배기 산낙지만 사용하고 양파, 고춧가루, 박 등 밀가루를 제외한 모든 식재료를 충남 지역에서 재배하는 것만 사용해 충남로컬푸드 ‘미더유’로 선정되었다. 농가 담벼락에 넝쿨을 치고 올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박 역시 가난하던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던 흔한 농산물이었지만 이제는 귀해져서 일부러 재배를 해야 한다. 박은 가을에 단단하게 여물기 전에 한꺼번에 따서 씨를 빼고 부드러운 속 부분을 먹기 좋게 잘라 급랭해서 일 년 내내 사용한다.
   
   안씨는 일 년에 150근 정도의 고춧가루를 준비해 고추장도 직접 담근다, 여기에 식초와 설탕을 넣고 새콤매콤 초고추장을 만들어 소스로 상에 올린다. 국간장에 청양고추와 깨, 양파, 식초를 넣어 만든 간장소스도 짭조름하니 새콤한 맛이 특별해 낙지와 잘 어울린다. 수제비도 직접 반죽해 손으로 하나하나 떠서 준비하는 등 모든 음식 준비에 정성이 대단한 안국화씨. 그녀는 오늘도 맛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갯벌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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