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1호] 2017.08.21
관련 연재물

[문학] 하루키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 한국서 인기인 이유

유슬기  조선pub 기자 prima@chosun.com 

photo 문학동네·민음사
지난 7월 12일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3주 만에 50만부를 돌파했다. 하루키가 7년 만에 쓴 장편소설인 이 책은 예약판매 기간 동안 총 30만부를 제작했고, 4쇄 10만부, 5쇄 10만부를 추가했다. 하루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충성도가 높다. 2013년 나온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예약만 50만부가 팔렸다. 발매된 지 6일 만에 100만부를 돌파해 2013년 종합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49년생인 하루키의 나이는 올해 예순여덟이다. 서른이 되던 해인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아 등단했다. 본격적인 ‘하루키 열풍’이 시작된 건 1987년이다. 당시 쓴 ‘노르웨이의 숲’은 상·하권 통틀어 430만부가 팔렸다. 일본 내 소설 최대 발행부수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번역돼 ‘하루키스트(하루키 소설의 애독자)’를 대량 양산했다. 전통 문학의 엄숙함과 무거움을 탈피한 하루키 문학 특유의 권태롭고 무심한 분위기에 매료된 이들이 많아졌다.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요소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변곡점은 10년 뒤에 찾아왔다. 1997년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취재해 정리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가 기존에 써오던 글과 다른 결이었다. 사건의 진앙지였던 옴진리교 신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정리한 ‘약속된 장소’로 구와바라 다케오 문예상을 받은 하루키는 “예전의 내 소설은 ‘무심함’이 중요했다. 지금 내 소설에는 ‘책임감’과 ‘헌신’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가 안팎으로 논란이 되는 이유는 소설이 ‘난징대학살’의 한 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그린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는 미술을, 화가의 동생은 음악을 하던 젊은이였다. 형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나치 저항운동에, 동생은 군에 징집돼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동생이 동참한 행위 중에는 ‘난징에서 일어난 일’도 포함돼 있었다. 1937년 12월 13일 국민정부의 수도이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이듬해 2월까지 대량학살, 방화, 강간 등을 저지른다. 일본 사회는 이 사실을 부정해왔다. 이 때문에 자국의 인기작가인 하루키에 대한 ‘매국’의 비난과 원성이 이어졌다. 이런 비난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우리에 맞게 역사를 다시 써도, 결국 다치는 것은 우리일 뿐이다.”
   
   하루키 소설 속 남자들은 다르지만 닮았다. 예민한 촉수로 오감을 사용하지만 주변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관여하기보다는 관찰한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은 ‘현현하는 이데아’, 2권은 ‘전이하는 메타포’다. 현실과 관념을 넘나드는 하루키의 글쓰기는 이번에도 이 두 세계를 무람없이 넘나든다. 일본의 ‘북 아사히’는 이번 책을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모두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은 이전의 주인공보다 좀 더 나아간다. 좀 더 주도성과 역동성을 갖는다. 이런 변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 4월 책 출간 즈음 아사히신문과 나눈 인터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남긴 말이다.
   
   “장편소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다양한 SNS와 대치 중입니다. 단문이 소비되는 요즘,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야기라는 것은 즉각적인 효력은 없지만 시간의 도움을 얻어 반드시 인간에게 힘을 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좋은 힘을 주고 싶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자유로울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사단장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루키는 평소 이 음악을 즐겨 들었고, 그 인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주인공인 30대 남성이 이혼 후 거처를 찾다가 머물게 된 아틀리에에서 발견한 그림의 이름이다. 이후 주인공은 당시 화가가 살았던 오스트리아 빈과 그 시대를 유랑하게 된다. 유랑하는 주인공의 나이는 하루키가 첫 소설을 시작하던 때와 닮아 있고, 주인공이 만난 백발의 노인은 하루키의 지금과 닮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처음의 나는 소설 같은 건 얼마든지 앞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순여덟이 지나고 나니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그 간절함을 눌러 담은 것이 이번 작품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집필부터 탈고까지 1년 반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글이 써지면 쓰고, 다 쓸 때까지 다른 글은 쓰지 않았다. 하루키는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책에서도 ‘생각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글쓰기가 자유를 잃고 명백한 목적을 갖고 쓰이면, 이는 ‘문학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목적을 품되, 목적을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주인공에게 그림을 의뢰하는 백발의 신사 멘시키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에 달고 끝나지 않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 두 가지 가능성, 흑과 백 사이에 있는 회색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흑이나 백 한 가지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인터넷 사회에서는 이 두 진영의 싸움이 숨가쁘다. 때문에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본의 역사를 부정하는 우파 세력에 적지 않은 공격을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한다.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순수한 흑이냐 백이냐’라는 원리로 판단이 이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이 딱딱하게 굳어 죽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말을 마치 돌멩이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집니다. 이것은 매우 슬프고 위험한 일입니다.”
   
   때문에 하루키는 지금이야말로 소설이 ‘전투력을 갖추어야 할 때’라고 한다. 말을 돌멩이가 아니라 따뜻하고 살아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당부다. 예순여덟의 작가는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이야기는 문학이나 소설을 넘어선다. 이는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연히 나와서 흘러넘치는 것이다. 그 흐름을 정확한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하루키에게는 일생의 과업이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근원은 사람의 ‘선량한 힘’이라고 작가는 믿는다. 이를 ‘양심의 힘’이라고 바꾸어 써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상은 나에게 짐일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상을 수상할 것인가는 매 가을 문학계의 관심사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오면 하루키스트들은 하루키가 재즈바를 운영하던 하토노모리하치만에 모여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진 대중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가 가진 작품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충돌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 5월에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유종호 평론가는 “군중으로서의 독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군중들이 문학에 대해 평가하고 거기에 따라가게 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현기영 소설가는 “시장에서 팔리는 것은 대개 문학을 가장한 가벼운 소설이거나 그보다 심미적 수준은 높지만 마찬가지로 소비향락문화에 젖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작물 같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그것들의 한국적 아류들”이 ‘진지한’ 문학의 시장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이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작가이긴 하지만, 좀 가볍고 좀 많이 쓴다”고 평했다. 아직 노벨상을 받을 만큼 검증되지는 않았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한편 일본의 쇼지 가오리 평론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상을 못 받아도 괜찮아’라는 칼럼에서 “무라카미에게 영향을 준 미국 작가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존 어빙, 레이먼드 챈들러, J. D 샐린저, 레이먼드 카버 모두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라고 쓰기도 했다. 하루키도 여기에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노벨상은 나에게 과분하다. 모든 형태의 상은 나에게는 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행복은 ‘독자들이 나의 소설을 사랑한다’는 사실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독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각별히 사랑한다. 하루키 역시 이에 대해 ‘각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현재 이 책을 구매한 이들의 80% 정도는 3040세대다. 30대가 43.3%, 40대가 28.1%를 차지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담당 MD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청춘의 표상 같던 하루키의 책을 구매한 20대 독자들이 성장한 것”이라고 했다. 청춘의 상징이던 작가는 이제 60대 후반이 됐고, 여전히 내면의 북소리를 담은 책을 쓴다. 현재 하루키 열풍은 그 북소리에 대한 응답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

2475호

2475호 표지

지난호보기 정기구독
유료안내 잡지구매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호르반
미래에셋
CGV-시인의사랑
삼성전자 갤럭시 s8
조선토크 브로슈어 보기

주간조선 영상 more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