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5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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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문화] 로마에서 만난 거리예술가, 그들이 사는 법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포리 임페리알리 거리에서 본 인도인의 공중부양. 고수입이 보장되는 최고 인기 거리공연 중 하나다.
생각하기에 따라 자신만의 지구를 두세 개 더 가질 수 있다. 조건은 튼튼한 다리다. 같은 세상이지만, 매일 10시간 이상 걸을 수 있는 체력을 가지면 지구의 크기와 깊이를 확장할 수 있다. 이건 외국에서 여행할 때의 기본 자세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이나 지하철이 아니라 1보 70여㎝ 축척의 결과가 여행의 진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20대 청년과 그룹투어 참가자는 논외겠지만, 평소 운동을 통해 24시간 발품체제를 구축해둬야 꽉 찬 여행이 가능하다.
   
   아마도 로마는 ‘다리의 파워=여행의 맛’으로 연결될 수 있는 최적의 도시일 듯하다. 로마는 건강한 다리와 편한 운동화를 필요로 한다.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라는 점도 있지만,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고대 유물 유적을 살피기 위해서는 잘 걷고 잘 뛰어야 한다. 대중교통도 활용할 수 있겠지만, 헤매기보다 지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조목조목 살피는 것이 좋다. 로마는 판테온 신전을 중심으로 가로 세로 5㎞ 범주 안에 있다. 50대인 필자의 경우 1시간에 4㎞ 정도 걸을 수 있다. 동서남북 하루 10시간을 오가며 관찰할 경우 1주일 정도면 고대 로마 전체에 관한 역사가 그려진다는 의미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포리 임페리알리(Fori Imperiali)’ 거리는 로마로 통하는 모든 길이자, 이탈리아 도로 전부를 관통하는 심장에 해당한다.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에서부터 북서쪽 베네치아광장(Piazza Venezia)에 이르는 약 1㎞의 대로(大路)다. 고대 로마를 그린 영화는 물론, 오드리 햅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에서도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가 포리 임페리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대로는 직역하면 ‘황제의 광장’쯤에 해당하는데 왕복 8차선 도로 크기의 넓은 공간이다. 길이 아니라 광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도로 양쪽에 들어선 수많은 황제들의 유적에서 비롯된다. 종신 독재자로 있다가 암살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해 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 로마의 최고 전성기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 관련 유적이 양쪽에 길게 늘어서 있다.
   
   최근에 포리 임페리알리를 찾은 원래 이유는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의 유적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역사서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콜로수스 네로(Colossus Neronis)’, 즉 네로의 입상을 찾고자 했다. 높이 30m로, 그리스 건축가 제노도로스(Zenodoros)가 만든 철과 청동으로 된 입상이다. 콜로수스(Colossus)란 말은 거대한 입상이란 의미다. 현재의 콜로세움도 네로 입상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콜로세움은 네로 입상이 들어선 이후에 세워졌다. 30m 초대형 입상에 어울리는 건축물이 콜로세움이다. 서기 68년 6월 9일 네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콜로수스 네로는 태양의 신, ‘솔(Sol)’로 변신한다. 학계에서 아직 논의 중이지만, 콜로수스 네로는 이후 서기 7세기까지 부분적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는지, 당시 입상이 들어섰을 때의 풍경은 어떠했을지, 입상 주변에 세워진 다른 신전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등등이 궁금했다. 그에 관한 확인과 공부를 위해 포리 임페리알리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 집시 피를 가진 나폴리 출신 3인조 악단. 30여년간 거리 음악가로 일해왔다.

   포리 임페리알리의 공중부양
   
   ‘거리공연(Street Performance)’은 네로 입상의 흔적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풍경이다. 포리 임페리알리 양쪽 도보에 엄청 들어서 있다. 영어로 ‘버스킹(Busking)’으로도 불리는 거리공연은 음악, 춤, 동물 서커스, 그림에 관한 재능을 보여주면서 관람객들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다. 고상하게 말해서 거리예술가다. 유럽 어디에 가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고대 로마의 중심지 포리 임페리알리에서 만난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대략 30m 간격을 두고 한 명씩 눈에 띈다는 양적인 측면과 함께, 퍼포먼스 종류가 다채롭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도 엄청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공중부양이다. 노란색 인도풍 옷과 모자 차림을 한 사람이 작은 막대 하나에 의지한 채 공중에 떠 있다. 깊고도 깊은 인도 명상에서 차용된 동작이라고나 할까? 관광객 모두가 신기한 듯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공중부양은 3~4년 전부터 유럽에 등장한 최고 인기 퍼포먼스다. 인도가 갖는 신비하고 몽롱한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 이성을 마비시키는 퍼포먼스다. 사실 원리를 이해한다면 너무도 간단한 눈속임에 불과하다.(자세한 내용은 독자분들의 실망감을 고려해 밝히지 않는다.) 관람객 대부분은 머리를 굴리며 공중부양의 비밀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비행기 타고 로마까지 와서 이리저리 깊이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눈으로 보면서 깜짝 놀라고 황당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공중부양 인도인의 표정이다. 용을 쓰는 힘든 모습이 ‘전혀’ 없는, 평화 그 자체다. 로마는 최근 이슬람국이 공개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기독교 성지(聖地)다. 유럽 대도시가 그러하듯, 바티칸을 비롯한 로마 전역이 요즘 테러 비상체제에 들어서 있다. 특히 포리 임페리알리는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포함한 대(對)테러 특수부대를 만날 수 있는 적색지대다. 포리 임페리알리 주변은 이슬람국 테러의 영순위 타깃이다. 웃음기까지 띤 공중부양 인도인의 표정은 그 같은 어두운 이미지의 정반대편에 선, 이탈리아식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진다.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보려고 다가서자 명령에 가까운 인도풍 영어가 들려온다. “원 유로 플리즈!”
   
   거리의 미술가 레오(Leo)는 공중부양 반대편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다. 로마 5현제 중 한 명인 피우스(Pius) 황제 유적이 레오 작업장의 배경으로 들어서 있다. 짙은 갈색 머릿결의 누드 비너스가 바닥에 그려져 있다.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다. 얼마나 똑같이 잘 그리느냐가 그림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 느껴진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요염한 몸매와 푸른 두 눈에서 색기(色氣)가 느껴진다. 독특한 화풍이다. 팁을 주려는데 돈통이 안 보인다. 어디에 돈을 놓으면 되느냐고 묻자 그림 도구 속에 파묻힌 플라스틱통을 꺼낸다. 그림 그리느라 잊었다는 것이다.
   
   레오는 장수 섬으로 유명한 사르데냐 출신이다. 2년 전부터 로마 곳곳을 떠돌며 ‘창작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보기 드물게 영어가 유창하다. 전공을 물어보니까 중졸이 전부란다. 8남매 중 다섯째로 15살 때부터 나이를 속이고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초 공사현장 목수가 전문이다. 전후(戰後) 상황을 듣는 듯한 흑백필름 속의 스토리로 느껴지지만, 사르데냐 출신자들에게는 일상적 상황이라고 한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돈도 벌고 여자친구도 사귀었지만, 2009년 금융위기로 경제가 추락하면서 실업자로 전락했다고 한다. 목수로 일하던 중 길거리 예술가를 알게 돼 따라 배우다가 실직 후부터 예술가로 ‘창업’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다시 공사현장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돌아갈 마음이 없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돈벌이도 나쁘지 않다.”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다. “어디에서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수입 차이가 심하다. 포리 임페리알리는 최고의 수익을 보장받는 곳 중 하나다. 한 달에 5000유로는 번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 물어봤다. “주말에 친구들과 말도 타고 축구를 하면서 먹고 마시는 비용이 대부분이다. 집은 여자친구에게 신세를 지면서 해결한다.” 그림과 관련해 하루 창작활동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묻자, 오전 오후 각각 3시간씩이란 답이 돌아왔다. “파스텔로 그리지만 비가 와도 작업이 가능하다. 공사현장에서 안 지식을 통해 파스텔 위를 덮는 투명한 방수액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마 로마에서 나와 같은 테크닉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 비가 와도 방수액을 통해 길바닥의 파스텔 작품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레오.

   거리공연도 세금 내야
   
   레오를 통해 알게 됐지만, 2~3년 전부터 로마의 거리 퍼포먼스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한다. 시정부가 개입하면서 거리의 퍼포먼스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 때문이겠지만, 허가제로 바꾼 상태다. 퍼포먼스 응모자에 관한 신상과 증명자료를 전부 검토한 후 허락하는 식이다. 하루에 30유로 정도의 세금도 내야 하고, 위반 시 엄청난 벌금이 뒤따른다.” 레오는 “저녁에 돌아갈 때는 바닥의 그림을 전부 깨끗이 지워야 한다. 남길 경우 다음날 1000유로의 벌금 고지서가 날아온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인류 역사상 거리 퍼포먼스에 대한 법을 처음으로 만든 곳이 바로 로마다. 기원전 462년으로, 정부나 정치가에 대한 풍자극이나 노래를 금지한 법이다. 정부가 금지한다고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유럽의 낭만이 테러공포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베네치아광장 쪽으로 내려오면서 첼로와 기타 2대로 구성된 3인조 50대 음악가들을 만났다. ‘알레그리아 라티나(Allegria Latina)’라는 이름의 나폴리 출신 악단이다. 노랫소리가 큰 스피커를 통해 도로 전체로 퍼져나간다. 베사메 무초를 비롯해 귀에 익은 멜로디다. 저음의 첼로를 기반으로 한 현란한 손놀림의 기타 연주가 압권이다.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면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CD음악집도 펴냈는데 10유로에 팔고 있단다. 기념 삼아 하나 구입하자 3명 모두 부르던 노래를 중단하고 일어나 사인을 해준다. 정열적인 노래처럼, 나폴리 특유의 활기가 느껴진다. “남자 3명이 노래를 부르면 보통 집시로 착각한다. 집시인 것은 사실이다.(웃음) 다른 집시와 차이점은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 귀화했다는 점이다. 번쩍거리는 대머리 기타리스트는 “집시야말로 중세 이후 거리 퍼포먼스의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곧장 걸으면 10분 만에 주파 가능한 곳이 포리 임페리알리다. 그렇지만 30여개의 거리 퍼포먼스를 만끽하느라 6시간이 넘게 걸렸다. ‘체력=관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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