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5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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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소울푸드] 최정선 김&장 변호사의 콩나물김칫국

최정선  변호사  

8월 말의 게으른 더위가 내장산 산자락에 물안개로 내려앉아 자욱하다. 백양사로 오르는 이른 오후의 길은 한적했다. 물이 분 개천 바닥 이끼 낀 돌 위에 자라 한 마리가, 나오지도 않은 해를 찾아 일광욕 하러 목을 길게 뽑고 있다.
   
   콩나물김칫국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20년, 아니 4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에 나와 산 지 벌써 20여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어머니의 고향인 전라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으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찰음식을 배워 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전남의 백양사에서 그 맛을 찾아보고자 모험하는 기분으로 봇짐을 싸 초행길을 나섰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가 미국에서 자란 나와 내 동생들. 우리들에게 한국 음식이란 많은 이민 2, 3세들에게 그러하듯 부모님 세대와 나누는 일상, 또 향수를 느끼기에는 기억에 너무 희미하고 먼 나라와의 연결고리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이제 나의 아이들이 성년이 된 지금은 그 생각이 크게 틀렸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지금의 방송 음식 채널들이 유행하기 오래전, 미국에서 성장하며 쌓은 내 음식에 대한 개념은 아주 단순했다. 내 주위에는 풍부하고 다양한 먹거리나 세계 각국의 요리 스타일과 화려한 테크닉들이 많이 보였다. 거기에 매료되어 20~30대에는 웬만한 미국 대도시의 맛집, 유명하다는 요리학원들을 기웃거렸다. 그곳에서 나는 향신료, 새로운 재료, 조리기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 추억해 보면 유년기·성장기·청년기를 지나는 동안, 어느 도시에서 무얼하고 있더라도 캘리포니아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면 나를 반기는 ‘집 향기’가 있었다. 그것은 항상 김치가 들어간 찌개나 국, 그리고 어머니가 손수 담가 우리가 도착하는 날에 맞춰 익혀놓으신 총각김치였다. 특히 콩나물김칫국이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콩나물김칫국을 하도 좋아하니까 어머니가 직접 손으로 레시피를 적어주셨다. 그 레시피는 나를 통해 뉴욕의 내 아들과 딸에게 전해졌다. 특별할 것 없지만 무리해서 일을 했다 싶거나 환절기에 몸살 기운이 있을 때 끓여 먹으면 직효다.
   
   냄비를 예열해서 들기름이나 식용유를 두르고 잘 익은 김치를 적당히 썰고 국물을 어느 정도 짜서 예열된 냄비에 넣고 멸치가루나 새우가루를 같이 넣어 볶다가 쌀뜨물이나 멸치육수(다시마·멸치·표고버섯 등을 달인 국물)를 넣고 끓인다. 어느 정도 끓어서 맛이 어우러지면 대파를 엇비슷 썰어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이다가 씻어 건져 놓은 콩나물을 넣고 잠깐 끓이고 나서 싱거우면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그러다가 나는 한국에 나와 살게 되었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싱싱한 재료로 내 손으로 해먹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것도 그 콩나물김칫국의 기억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된장과 고추장을 양지 바른 옥상 장독대에 저장하고 햇마늘, 천일염, 태양초고추를 찾아 늦가을 김장김치를 담고 뒤뜰에 묻었다. 그냥 마트에 가서 사서 먹어도 되는데 일부러 수고를 한 이유도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음식에 관해 체득한 것이 있었다. 음식은 내게 단순히 몸을 지탱해주는 영양 섭취로서의 수단으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제대로 만든 음식은 영혼을 지켜주는 보살핌 그 자체라는 깨달음이었다. 특히 어머니 손끝에서 나오는 감칠맛으로 버무려진 나물무침들, 갈비찜, 생선조림, 각종 김치, 전과 만두 등이 그랬다. 너무 많은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란 나는 이제야 그 사랑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어머니는 이민여성들 대부분이 그랬듯 가사(家事)는 기본으로 하고 생업에서도 아버지와 함께했다. 미국에서 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은 식당이었다. 작게 시작해서 조금씩 식당을 키워 나가셨다. 어머니는 식당의 생명은 음식 맛이 좋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식당에서 쓰는 모든 주요 소스까지 직접 만들었고 메뉴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으셨다. 그러다 보니 메뉴마다 감칠맛을 인정받아 손님들이 많았다. 이를 보며 자란 우리 형제 셋은 각자 직업에 상관없이 요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부모님이 가장 뿌듯해하신 순간들은 아마도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에 모인 가족들이 각각 팔을 걷어붙이고 부엌에서 요리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신 부모님이 올해 이민 40주년을 맞아 현업에서 은퇴하신다. 30년을 운영하던 식당을 인수할 사람들이 나타나 그 계약서를 봐주러 나는 미국에 와 있고 시간을 내 이 원고를 쓰고 있다.
   
   미국 부모님 집의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김없이 반기는 향기는 따끈따끈한 콩나물김칫국. 갓 지은 밥을 말아 한 그릇 먹고 나니 여독이 시원히 풀린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가 찾고, 지향하는 삶에 대한 방향마저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내년이 미수(米壽)이신 아버지와 이제 막 돌을 맞는 늦둥이 친손주를 보시며 신기해 하시는 엄마와 같이 이번 추석에는 멀리 뉴욕에 사는 내 아이들까지 불러 서울서 송편도 빚고, 떡만둣국도 하면서 할머니표 요리를 시작해 보려 한다. 그 기록들을 시작으로 다음 세대와의 또 다른 연결고리,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들이 얼마가 되든 새롭게 나눌 정과 사랑의 청사진을 그려 보려 한다. 내가 찾는 진미(珍味), 몸과 마음을 보양하고 맑은 생각과 혜안으로 가는 길은 깊은 산속의 절만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도 이미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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