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어느날 JK필름 윤제균 감독이 지인(知人)을 통해 연락을 해왔다. 나를 만나 긴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윤 감독과는 초면이었지만 ‘해운대’ 등 여러 히트작을 낸 영화인으로 알고 있었다. 약속을 잡고 그를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윤 감독은 내게 ‘히말라야’ 영화제작을 제안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의 동의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전에도 몇몇 감독으로부터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받은 적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히말라야 고봉(高峯)을 등반하며 수없이 사선(死線)을 넘나들어야 했던 나와 동료의 지난 시절 이야기는 상처를 덧내는 것 같은 아픔이기도 했다.

윤 감독은 2005년 MBC가 제작한 ‘아, 에베레스트’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를 찾아온 듯했다. 이 다큐는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앙코르 방송된 적이 있다. 혹시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아, 에베레스트’는 2004년 5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뒤 하산길에 조난당한 계명대 산악부 박무택 대장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나선 일명 ‘휴먼원정대’의 행적을 담은 영상물이다.

무택이는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었다. 나는 무택이와 함께 카첸중가, K2, 시샤팡마,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그런데 2004년 5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무택이가 에베레스트 8750m 지점에서 설맹(雪盲)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조난됐다는 소식이었다. 그가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만약 무택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를 데리러 가겠다”고 무택이 가족과 산악인들에게 약속했다. 1년 뒤 나는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다시 짐을 꾸렸고 우리 팀의 명칭을 휴먼원정대로 지었다. 그때 MBC가 동행해 현장 모습을 담은 게 ‘아, 에베레스트’였다.

이후 윤 감독은 두 차례나 더 나를 설득했다. 결국 나는 윤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우리 사회는 성범죄, 흉악범죄 등이 잇따라 발생하며 인간애가 사라진 모습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분출되던 시기였다. 공동체 사회에서의 동료애, 희생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 휴머니즘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

2015년 12월에 개봉한 ‘히말라야’는 800만명에 가까운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나도 나름 일조했다. 무려 11번이나 이 영화를 봤으니까. 내가 주인공이라서기보다 지인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휴머니즘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해 보고 싶었다. 영화의 내용은 일부 각색됐다. 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숨쉬기조차 힘든 해발고도 8750m 지점에서 무택이를 찾았을 때다. 꽁꽁 언 무택이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어느덧 나는 악천후로 인해 끝내 무택이를 에베레스트에 묻어야 했을 때의 엄홍길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영화가 종료된 뒤에도 나는 좌석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수확의 계절인 추석이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히말라야’를 보는 건 어떨까. 눈물을 찍어가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속 뭉클함에서 피어나는 따스한 온기를 가족과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엄홍길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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