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 취향이 꽤 까다롭다. 근거 없는 폭력물도 싫어하고 공포물도 싫다. 그렇다고 로맨틱코미디도 그저 그렇다. 나의 까다로운 취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표피적이어도 매력을 못 느낀다.

“도대체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뭐야?” 남편이 내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내 인생의 영화’. 내게 이 말은 내 인생을 바꿀 만한 영화이거나 내 인생을 대변할 만한 영화이거나 하는 깊은 의미는 없다. 단순히 ‘내 맘에 드는 영화’라는 뜻이다. 내게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는 바로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이 영화는 시작되자마자 내 시선을 붙잡았다. 여 주인공인 미츠하와 남 주인공 타키가 꿈속에서 몸과 마음이 바뀌는 설정. 2시간에 한 번씩 기차가 오는 ‘시골 마을’과 도쿄라는 ‘도심’에 사는 고등학생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바뀐 삶을 가끔씩 살아가는 그들을 보는 우리도 흥미롭다.

‘너의 이름은’은 기존 애니메이션이 가진 인간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빛을 잘 살려 실사에 가까운 화려함과 웅장함까지도 살려냈다. 영상적인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영화의 장면 장면이 내 기억에 혜성처럼 떨어져 박혀버렸다. 빛이 아롱아롱거리는 맑은 하늘 아래 시골 마을 풍경, 도심의 고층 건물 유리창들이 반사하는 빛의 찬란함이라든가, 도심 지하철에서 바라본 쓸쓸한 풍경, 장엄한 자연의 풍경들과 석양이 지는 순간이 빚어낸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라든가, 혜성이 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을 도시의 옥상과 시골 마을에서 바라보는 서로 다른 느낌으로 참 잘 그려냈다.

이뿐이 아니었다. 원작자가 직접 만든 영화이기에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다양한 이야기의 층위를 가지고 있었다. 십대들에겐 그 설레는 사랑 이야기가 시공을 초월해 보일 것이고, 어른들에겐 전통과 현대, 도시와 시골 마을 등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인간에게 그리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됐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우리네 인생은 내가 가지지 못한 뭔가를 늘 찾고 그리워한다. 우리는 서로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이것을 인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일까. 감독은 이 영화에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찾고 있어’라는 부제를 달았다.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설렌다. 어디에 있는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어쩌면 이걸 위해 이렇게 늦은 밤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무스비(일본어로 ‘매듭’을 의미).” 이 세상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와 나도 한순간 강하게 연결되었고, 그는 영화를 통해 강하게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한 것일 게다. 우리는 아무리 혼자라고 해도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졌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자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무스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정용실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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