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이 예측했던 암울한 미래, 바로 1984년에 영화 ‘터미네이터(Terminator)’가 개봉되었다. 2029년 인공지능(AI)이 방아쇠를 당긴 핵전쟁이 발발한 후 인류는 기계, 즉 ‘스카이넷’이라 불리는 AI의 노예로 전락하고 스카이넷에 대항하는 저항군 지도자를 지키려는 노력과 AI 간의 시공을 넘나드는 전쟁이 ‘터미네이터’의 주제다. 쉼 없이 이어지는 액션과 AI가 장착된 살인기계(아널드 슈워제네거 분)의 위압적인 모습이 압권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상징성을 암시한다.

인간과 여타 생물을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는 ‘자기학습 능력’이다. 동물은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면 더 이상 학습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무한의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간만의 특징이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단번에 허물어지고 있다. AI는 지구가 생긴 이래 최초로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이다. 스스로 학습하기 때문에 진화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인간의 통제 밖에서 기계가 또 다른 기계를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갈망하는 혁신과 창조도 점차 AI의 몫이 될 것이다.

AI의 자기학습 능력 때문에 일본의 손정의 회장은 30년 내 AI의 지능(IQ)이 1만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김기남 사장은 20~25년 내에 인간의 모든 기억을 1장의 디스크에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저명한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그리고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인 일론 머스크 등은 AI가 궁극적으로 인류를 말살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미 바둑에서 검증되었듯이 AI가 더 발전하면 인간은 AI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AI가 새로운 AI를 만들고 1초쯤 지나면 AI의 무한 복제가 이루어져 인류는 멸종할 것이라는 섬뜩한 전망도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바로 이런 세상을 상징한다.

이 영화를 계기로 AI가 장착된 기계와의 전쟁이 많은 오락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기계가 감정을 가지는 ‘아이 로봇’, 범죄 예측 시스템을 주제로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사회과학 논문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매트릭스’ 등의 출발점은 ‘터미네이터’이다. 선악(善惡)의 대립에서 기계가 새로운 악(惡)으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미래를 꼭 행복하게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 ‘터미네이터’는 알려줬다.

이 영화는 1984년에 개봉되었다. 당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최초의 개인용 PC인 매킨토시를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해서 64k D램 생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스마트폰도 없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대단한 혜안이고 창조적인 생각이다. 혹시 이 영화를 보고 AI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영화 ‘터미네이터’는 나에게 미래사회에 대해 호기심을 유발시킨 영화였다. 그 호기심이 이어져서 나름 미래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I’ll be back’이라는 명대사처럼 우리는 AI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홍성국 전 대우증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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