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6호]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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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특집 Ⅴ | 세 번 넘게 봤다 나의 인/생/영/화] ‘연인’ ‘샤이닝’ ‘메멘토’

불면의 밤 ‘연인’ 매년 한 번 ‘샤이닝’ 좋은 영화 ‘메멘토’

강유정  영화평론가  

대중 강연을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최고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그럴 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내 인생 최초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말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영화가 있다. 인생의 영화가 영화적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니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사람은 첫사랑과 처음 함께 본 영화를 간직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 그때 본 영화를 기억할 수도 있다. 문제는 영화와 나 사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주 본 영화를 꼽으라면 우선 장 자크 아노의 ‘연인’을 꼽고 싶다. 고등학생 시절, 챙이 넓은 모자로 얼굴을 감추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빠져 나와 혼자 몰래 보았던 바로 그 영화 말이다. 처음엔 그저 위반과 일탈의 인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연인’을 읽고 나서, 그리고 스물다섯 살의 어느 날 다시 영화 ‘연인’을 보았을 때, 그건 그저 사춘기 소녀를 홀리던 야한 영화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거기엔 뒤늦은 깨달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엄마와의 애증이 있고, 식민지와 피식민지 사이의 도착적 지배 관계가 있었다. ‘연인’은 생각보다 크고, 추억보다 강렬하며, 이해보다 복잡했던 영화였다. 그래서, 나는 간혹 늦은 밤 잠을 못 이룰 때면 다시 ‘연인’을 꺼내 보며 사춘기 시절과 스무 살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땐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되물으며 말이다.
   
   다른 의미로 자주 보는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의 매년 한 번 이상은 본다. 강의 시간에 자주 선택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게 여러 번 봤음에도 볼 때마다 놀라고, 볼 때마다 두렵고, 볼 때마다 새롭다. 스탠리 큐브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밑바닥의 침전물까지 흔들어 놓는다. 잭 니콜슨의 미친 연기도 압권이지만, 하루이틀 점차 바뀌어 가는 오버룩호텔의 미장센도 너무나 훌륭하다.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진 아이와 아직 인정받지 못한 작가 아버지, 그 아버지의 욕망과 고립된 대형 호텔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교호작용을 이끌어낸다. ‘꿈에 나올까 두렵다’라는 말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바로 이 영화 ‘샤이닝’을 보면 된다. 난자된 시체와 칼부림으로 공포와 긴장을 만들어내는 하수들은 반드시 이 영화를 보고, 다시 긴장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시 배워도 될 듯싶다.
   
   마지막으로 자주 보는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이다. 아직 유명 감독이기보다는 재기 넘치는 신인 감독이던 시절,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후 보여주게 될 놀라운 상상력과 영화적 기술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회피하기 위해 끝없이 탐정 놀이를 하는 주인공은 희곡 ‘오이디푸스 왕’ 이후로 언제나 사랑받는 추리 서사의 주인공이다. 오이디푸스만큼이나 비극적이고 처절한 주인공의 여정은 놀란의 현란한 편집술과 서사 직조술을 통해 반전의 놀라움으로 증폭된다. 영화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탄을 다시 한 번 자아내게 하는, 그리고 역시 좋은 영화는 엄청난 기술력이 아니라 바로 두 귀 사이, 머리에서 빚어진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럼 내 인생 최초의 영화는? 그건, 따로 해줄 이야기니, 남겨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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