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477호]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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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영화 ‘대부’의 고향 팔레르모에 마피아는 없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시칠리아 사람처럼

서지연  성균관대 한국어학당 책임강사  

▲ 아그리젠토에 있는 ‘터키인의 계단’ 전경.
일주일간의 시칠리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후 2시45분, 폴리테아마극장 앞에서 탄 공항버스는 팔레르모 중심가를 벗어나 곧바로 해안도로로 들어섰다. 일주일 전 밤에 도착했을 때는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만 하는 여행자에게 아쉬운 시간이다. 로마행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래전부터 바랐던 시칠리아의 여행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나는 왜 시칠리아 여행을 꿈꿨었나.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남서부에 있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이 제주도의 13배쯤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자치주다. 역삼각형 모양의 섬은 각각의 면이 중동, 유럽, 그리스, 아프리카를 향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삶 곳곳에 각 대륙의 문화가 교차하며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여느 이탈리아 도시와는 다르게 시칠리아만의 문화, 시칠리아인만의 기질이 있다고들 한다.
   
   1786년 9월, 괴테는 갑자기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작가로서 명성을 떨친 그는 바이마르공국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오랜 정치생활로 무뎌진 작가적 감각을 되찾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당시에는 드물게 시칠리아섬까지 밟았다. 2008년에 소설가 김영하는 서울 생활을 접고 시칠리아 여행을 떠났다. 마흔에 작가, 교수, 방송인으로 숨 막히는 삶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222년의 간극을 두고 두 작가를 이끌 만큼 시칠리아에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처음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간다고 했을 때 모두들 다른 좋은 곳도 많은데 왜 굳이 마피아가 있는 위험한 곳에 가냐고 반문했다. 아름다운 해변과 유적, 맛있는 요리가 많다고 했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대부, 마피아 말고는 한국인에게 시칠리아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팔레르모에서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마피아를 만난 적도, 위협을 느낀 적도 없다. 시칠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현지인, 그곳에서 3년째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에게 물어봤을 때도 대답은 같았다. 반대로 한국에 사는 사람들 중 조폭을 만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도심 한복판에서의 칼부림, 난투극 등과 같은 범죄는 시칠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지 있다. 물론 팔레르모공항의 정식 명칭이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으로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마피아의 그늘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의 삶을 살며 보통의 여행을 하는 일반인들이 그런 범죄조직과 만날 일은 매우 드물다고 봐야 한다. 개봉한 지 40년 된 ‘대부’가 여전히 회자될 정도로 걸작인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 때문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칠리아를 마피아의 근거지라고만 생각한다면 시칠리아 사람들이 억울해하지 않을까.
   
   시칠리아의 주도(州都)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본토와 섬을 잇는 주요 관문이다. 한국에서 팔레르모까지는 직항이 없어 보통 로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탄다. 로마에서 팔레르모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지난 8월 18일 비행기가 밤 11시쯤 팔레르모공항에 도착했다. 로마에서 출발한 팔레르모행 탑승객 대부분은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시칠리아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현지인들에게도 여름 휴가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하자 기내에 있던 승객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안도와 기쁨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솔직하다. 이런 상황은 돌아오는 날, 팔레르모를 출발한 비행기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 팔레르모 대성당 지붕 전망대. 입장료가 5유로다.

   압도적 분위기 팔레르모 대성당
   
   도착 당일은 공항버스 정류장 앞 호텔에 묵고 이튿날 사전에 예약한 B&B에 체크인 했다. 숙소가 있는 건물은 주요 거리인 마퀘다거리에 있는데 400년 전에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건물 앞에서 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차장 같은 작은 공터가 있고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집 내부는 400년 전에 지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도착하자 주인이 커피를 마시겠냐며 모카포트로 커피를 끓인다. 곧이어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과 티스푼, 설탕통, 물 한 잔을 들고 나왔다. 작고 두꺼운 잔에 담긴 커피는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이탈리아에는 집마다 두 개의 주전자가 상하에 연결된 모양의 에스프레소 커피를 끓이는 모카포트가 있는데 모카포트가 오래될수록 커피 맛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나는 다음날 아침부터 혼자 커피를 끓여 마셨다. 모카포트를 열고 물을 붓고, 커피를 채워 불 위에 올린다. 모카포트 상부에 커피가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커피잔에 커피를 따른다. 아침을 시작하는 이 과정은 서울이 아닌 시칠리아에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의식이었다.
   
   두오모, 첨탑 등의 건축물을 말할 때 사람들은 피렌체와 로마를 떠올린다. 실제로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 로마에 가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로마 같다’고 했다. 팔레르모 구시가를 반나절쯤 걷다 보면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성당과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칠리아에서 꼭 가봐야 할 성당을 세 개 꼽으라면 팔레르모 구시가 중심에 있는 ‘팔레르모 대성당’과 몬레알레의 ‘몬레알레 대성당’, 체팔루의 ‘체팔루 대성당’이라고 대답하겠다. 굳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이슬람, 게르만 세력의 지배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로서 충분히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팔레르모 대성당은 규모와 분위기 면에서 압도적이다. 성당에 입장하는 것은 무료지만 왕족의 무덤, 보물실과 시칠리아 수호 성녀인 산타 로사리아의 유골함이 있는 예배당, 대성당 지붕에 가려면 통합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5유로짜리 입장권만 구입해 대성당 지붕에만 오르는 관람객도 많다. 대성당 지붕은 협소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한 번에 10여명만 제한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관람객 몇 명이 낡은 철문을 열고 나오자 직원이 대기하던 관람객에게 다시 철문을 열어줬다. 철문을 열자 어두컴컴하고 좁은 나선형 돌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세월의 흔적으로 반들반들해져 바닥이 밋밋한 신발을 신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다. 앞사람을 따라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대성당 지붕 위에 도착한다. 마침내 성당 지붕에 올라서는 순간, 지중해의 짙은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팔레르모 구시가지 풍경에 할 말을 잊는다.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성당 외벽의 질감과 도시를 둘러싼 산의 능선 굴곡까지 자세히 보인다. 함께 오른 이들의 벅찬 표정에 비로소 내가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 (좌) 팔레르모 구시가지를 동서남북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는 콰트로 칸티. (우) 신전계곡의 헤라신전.

   신전계곡과 터키인의 계단이 있는 아그리젠토
   
   팔레르모 중앙역에서 기차로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아그리젠토는 팔레르모와는 정반대편, 시칠리아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향해 있는 도시다. 팔레르모에서는 당일치기로 여행이 가능하다. 팔레르모에서 출발한 기차가 시칠리아섬을 가로질러 내려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시칠리아 중부의 평원과 산이 펼쳐진다. 아그리젠토 역에서 그리스 유적이 있는 신전계곡까지는 차로 20분쯤, 해안절벽인 ‘터키인의 계단’까지는 신전계곡에서 20분쯤 더 걸린다. 아그리젠토 역에서 일반버스와 템플투어버스가 있으나 자주 다니지 않아 미리 웹사이트를 통해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 템플투어버스는 5월부터 9월까지 한시적으로만 운행한다. 투어버스를 타고 광활하게 펼쳐진 마른 흙빛의 구릉지를 지나면 신전계곡 입구에 도착한다. 매표소를 지나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신전이 헤라신전이다. 헤라신전을 시작으로 반경 6㎞에 펼쳐진 그리스신전 유적을 막상 가까이에서 보면 엄청난 규모에 놀라게 된다. 시칠리아를 소개하는 책자에서 한 번쯤 봤을 그리스신전 유적이 콘코르디아신전이다. 신전계곡에 있는 유적 중 대표적인 신전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촬영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신전이 침략과 세월의 흔적으로 천장과 외벽이 떨어져나가 거대한 골격만 남아 있으나 오히려 그 단순함이 무게감 있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아그리젠토에는 신전계곡과 함께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의 피서지로 ‘터키인의 계단’이 유명하다. 터키인의 계단이라는 이름은 과거에 계단처럼 생긴 절벽에 터키 해적들이 자주 출몰해 붙여진 이름이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새하얀 석회암 언덕과 그 아래로 펼쳐진 맑은 코발트색 바다를 보는 순간 기대하지 못한 아름다움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석회암 언덕 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마치 선베드처럼 생긴 둥근 바위지대가 있어 일찍 자리를 잡으면 편안한 자세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해변처럼 별도의 샤워실이나 탈의실 같은 편의시설은 없지만 이곳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유롭게 자연을 즐긴다. 노인부터 아기까지 대부분 가족 단위로 바다에서 물놀이를 한다. 여자들은 할머니까지 거의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남자들은 할아버지까지 삼각 수영복을 입는다. 배가 나왔든 안 나왔든 어느 누구도 몸의 일부를 가리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없다. 햇볕에 그을린 몸은 마치 잘 로스팅된 커피콩처럼 갈색에 윤기가 돌아 건강미를 더하고 거기에 당당하고 행복한 표정이 그대로 패션이 된다.
   
   팔레르모에서 가장 놀란 것은 늦은 밤에도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다. 새벽까지 문을 여는 식당도 많다. 밤 10시에 저녁을 먹는 가족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큰 거리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여서 언제든 나가도 안전하고 심심하지 않다. 하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여행자에게 최적화된 도시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밤,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밤 산책을 나갔다. 해변공원에서 아마추어 밴드가 공연을 하고 푸드트럭에서는 음식과 술을 팔고 있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입장료도 없고 음료를 굳이 살 필요도 없다. 낮에 시장이 열리는 부치리아시장 자리에 밤에는 간이식당과 술집이 열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과 의자에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 불 위에서 바로 구워낸 돼지곱창과 해산물, 튀김과 각종 신선한 샐러드와 과일까지 없는 게 없다. 튀김 한 접시와 삶은 문어 한 접시가 모두 우리 돈으로 만원쯤 한다. 튀김은 바삭하지는 않지만 고소했고, 삶은 문어에는 올리브 오일과 소금, 레몬즙을 뿌려 쫄깃한 식감에 상큼한 향이 좋았다.
   
   
▲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야외 영화상영 장면을 촬영한 체팔루 해변.

▲ 부치리아시장의 밤 풍경.

   팔레르모의 밤은 낮보다 더 뜨겁다
   
   주변 술집에서는 스피커를 밖으로 꺼내 클럽 음악을 틀며 흥을 돋운다. 새벽 1시가 지나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골목 안 술집들도 음악을 틀기 시작했고 갑자기 동네 일대가 일제히 클럽으로 변신한다. 한낮의 열기가 밤까지 이어져 잠 못 드는 밤, 아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어울려 길에서 춤을 춘다. 이런 광경이 익숙하지 않지만 비로소 도시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하지만 느릿하게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였다. 동양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현지인과 유럽 관광객들의 눈길이 쏠리고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아주 먼 곳, 낯선 도시를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만 같아 더 설렜다. 팔레르모의 밤은 낮보다 뜨거웠다.
   
   오래전부터 기대하고 기다렸던 여행이었기에 팔레르모를 온전히 알기 위해 팔레르모에만, 한 숙소에만 머물렀다. 마치 팔레르모에 사는 사람처럼 하루 종일 크지도 않은 도시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어다녔고, 숙소 주인 부부가 자주 가는 동네 피자집, 해산물 요리 전문점에 가서 특별한 서비스를 기대하며 넉살을 부려 보기도 했다.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다 다시 젖은 수영복 위에 옷을 입고 돌아오기도 했다.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조급하지 않았다.
   
   내가 상상했던 이탈리아의 모든 것이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있었다. 물론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범죄도 있고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불편함도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불편함보다, 삶에 기쁨을 주는 작은 것들을 그대로 즐겁게 받아들이는 자세인 것 같다. 서울에서는 매일, 매순간 하지 못한 일과 해야 할 일을 걱정하곤 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조급하게 다른 도시로 이동해 더 많은 것을 보거나 하지 않고 내가 현재 머물러 있는 곳에 집중하기로 결심하니 몸도 마음도 편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여행의 소감을 묻는 친구에게 ‘건달’처럼 살고 싶어졌다고 했다. 일하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에 집중하며 살고 싶다고 말이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시칠리아 사람처럼 살아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쯤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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