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타히티’의 화가 폴 고갱은 원래 증권맨이었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본업은 의사.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은 고고학을 좋아하는 상인이었다. 최초로 증기선을 만든 로버트 풀턴은 본래 화가다. 취미활동으로 일가를 이룬 그들은, 때론 역사의 흐름을 바꾸며 자신들만 새길 수 있는 독특한 무늬로 인류사를 수놓았다. 그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본업과 취미를 병행하며 대가(大家)의 반열에 올랐거나 오르고 있는 네 명을 만났다.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결국 관건은 ‘하루’. 매일 아침 출근길 풍경을 사진에 담은 호텔리어, 퇴근 후면 문향(聞香)에 심취해 30년을 보낸 은행원, 천체망원경 장인이 된 국사 선생님, 예술하는 직장인으로 사는 법을 전파하는 방송사 직원. 충실하게 보낸 ‘오늘 하루’가 그들을 만든 동력원이었다.

‘사람들은 다 별을 바라보지만 그건 같은 별들이 아니야.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별을 찾을 수 있게 하려고 별들이 반짝이는 게 아닐까.’(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

지난 10월 23일 한승환(42)씨를 만나러 경기도 성남으로 갔다. 일러준 주소로 찾은 인적 드문 상가 사무실 앞, 문득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소행성 B612 출신의 그 왕자 말이다. 통유리벽 건너는 암막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간판은 없다. 천 위엔 흩어져 있는 노란 별들이 보일 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체를 쉽게 파악하기 힘든 설비들과 보관함들이 늘어서 있다. “‘별점 보는 곳이에요?’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한씨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몇 번 둘러보니 망원경 두 대가 눈에 들어온다. 천체망원경이다. 둘 중 큰 건 대략 어른 가슴까지 온다. “둘 다 직접 만들었다. 작은 망원경은 이름이 ‘안달’이다. 첫 작품이라 안달복달하며 만들었다.”

한씨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자 천체망원경 제작자다. 본업은 한국사 강사. 대학에서 국사를 전공했다. 대학교 시간강사도 하다, 요즘엔 보습학원에서 가르친다. 남는 시간에 취미로 망원경을 만든다. 그런데 그 수준이 간단치 않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의 정성훈 홍보국장의 말이다.

“시중에 흔한 중국산 기성 망원경은 기계로 반사경을 깎는다. 제품 간 편차가 심하다. 장인이 손으로 만든 반사경과 비교할 수 없다. 한씨는 장인들 중에서도 최고수다.”

한국엔 ‘망원경 깎는 장인’이 현역으로 3명 남아 있다. 그중 한씨가 가장 어리다.

천문 관측의 세계를 짧게 설명하면 이렇다. 천문 관측은 크게 안시(眼視) 관측과 천문 사진 촬영으로 나뉜다. 망원경에 눈을 대고 직접 관찰하는 것과 망원경에 카메라를 연결해 사진을 찍는 것으로 나뉜다는 얘기다. 두 분야 모두 그렇지만, 특히 천문 사진 촬영의 경우 장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 빠져들수록 점점 더 장비 욕심을 내게 된다. 흔한 말로 ‘개미지옥’이다.

천체망원경은 크게 독일산, 일본산, 중국산으로 나뉜다. 독일은 1990년대 중반 개인용 망원경 제작을 중단했다. 천문대용 망원경만 만든다. 개인용 망원경으론 일본산을 알아준다. 성능이 괜찮다 싶으면 한 대에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장비 욕심의 종착역은 ‘개인 천문대’다. 주로 지방의 고도 높은 곳에 마련한다. 얼마면 될까. 땅값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아기자기’하게 세우면 1억원, 돈을 좀 들이면 5억원에서 10억원이 든단다. 주말이면 개인 천문대로 달려가 마음 맞는 천문인들과 밤새 고기도 구워 먹고 별도 본다. 이런 ‘천문 덕후’들이 전국에 약 100명. 아마추어 천문인구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다. 정 국장은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천문인구는 2000~3000명 정도”라고 말했다.

한씨도 처음엔 그저 하늘과 별과 시를 좋아하는 문학청년이었다. 중학생 시절 과학캠프에서 들은 말이 어느 날 떠올랐다. ‘망원경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천체망원경 제작동호회를 찾아갔다.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땐 점잖게 내쫓겼다. ‘비용 때문이라면, 그냥 사는 게 더 싸다.’ 두 번째 시도에야 동호회 가입을 허락받았다. 8년 전 일이다. 그때부터 망원경 만드는 법을 배웠다. 도제식이었다. 잡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보다 하나둘씩 배웠다. 한씨의 설명이다.

지난해 8월 8일 촬영한 토성 사진이다. 행성 촬영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행성용 망원경’으로 촬영했다. 한승환씨가 연마한 반사경과 주경이 장착된 망원경이다. ⓒphoto 이건호
지난해 8월 8일 촬영한 토성 사진이다. 행성 촬영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행성용 망원경’으로 촬영했다. 한승환씨가 연마한 반사경과 주경이 장착된 망원경이다. ⓒphoto 이건호

“예전엔 망원경 가격이 비쌌다. 한 대 가격이 대기업 한 달 월급보다 높았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본 장인에게서 배워온 분들이 기술을 지도했다. 반사망원경의 핵심 부품은 반사경이다. 쉽게 말해 거울이다. 거울을 손으로 만드는 거다.”

보통 망원경을 직접 제작한다 해도 반사경은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외국산 완제품을 사오는 식이다. 한씨의 특기는 바로 반사경 제작이다. “유리 덩어리를 깎아 반사경을 만든다. 열에 강한 특수유리를 쓴다. 독일 쇼트사에서 만드는 제로듀어, 미국 코닝에서 생산하는 파이렉스가 대표적이다. 나노미터 단위로 표면을 연마하며 완성한다. 한 번 손으로 밀 때마다 얼마큼 깎이는지 그 감을 체득하는 게 내공이다. 적어도 3개월은 매달려야 반사경 하나를 완성한다. 이후에도 계속 수정하며 정밀도를 높인다. 한 개 완성에 4년을 들인 사람도 있다. 특수유리는 상당히 비싸다. 정식 수입루트를 통해 사면 1000만원도 넘는다. 다른 경로가 있다. 외국 연구소나 반도체 공장에서 쓰던 걸 이베이에서 낙찰받기도 한다.”

기술 얘기로 흐르자, 한씨의 목소리가 활기를 띤다. 점점 알아듣기 힘들어졌지만, 엄청 신나하며 설명하는지라 일단 들어봤다. 말을 멈춘 한씨가 주섬주섬 상자 하나를 꺼내왔다. 라면상자 두 배 크기의 상자를 소중히 연다. 상기된 표정이다. 제법 큰 제로듀어 덩어리가 들어 있다. 지름이 손바닥 두 뼘 정도다. “고물상에서 ‘반도체 공장 쓰레기에서 뭐가 나왔는데 와서 좀 봐라’고 연락이 왔다. 가보니 제로듀어더라. 70만원에 사왔다.”

반사경의 크기가 커지면 망원경 성능도 올라간다. 큰 반사경을 제작하기 위해선 내공과 연륜이 쌓여야 한단다. 이 정도 크기의 반사경으로 만든 망원경은, 기성품으로 치면 수천만원짜리다. 함께 제로듀어를 한참 들여다봤다. 물었다. “아예 전업 제작자로 나서면 어떤가.” 난처해하는 표정이 돌아왔다. “내수시장이 없다. 수천만원짜리 망원경을 살 수 있는 천문인구가 100명쯤이다. 이 사람들은 이미 다 갖고 있다. 한 해에 두 대 파는 것도 힘들 수 있다.”

일본은 사정이 다르단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세 집 중 한 집이 천체망원경을 갖고 있다. 열심히 하는 매니아층은 1000명 이상이다. 1986년 핼리혜성이 왔다. 일본 경제가 한창 좋을 때였다. 이때 중장년층이 대거 천문 매니아로 진입해왔다. 망원경 장인도 여러 명 있다. 오는 11월 중순에 일본 기타시타라군을 방문한다. 별도 보고 망원경 장인들과 교류도 할 예정이다.”

한국의 천문인구는 왜 일본보다 적을까. 한씨의 생각은 이렇다. “보통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서면 천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경제가 좋을 때 IMF 사태를 맞았다. 게다가 천체 관측 분야엔 진입장벽이 있다. 그냥 아무 때나 하늘만 본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한 달에 보름만 볼 수 있다. 공전주기에 따라 달이 클 때는 별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면 주말 외엔 시간이 안 되지 않나. 결국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이다. 겨울엔 또 얼마나 춥나. 극지용 방한화와 방한복도 갖춰야 한다. 호기심으로 한번 왔다가 다신 안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씨는 별에서 뭘 찾았을까.

“수만 광년 너머에서 날아온 빛 입자가 그 순간 내 안구로 들어온 것 아닌가. 이젠 사라지고 없을 별의 잔해와 마주칠 때마다 감동을 느낀다.”

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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